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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외모·눈빛…존재감 확실히 각인

지난달 23일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개봉 당시 한국 관객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영화 속 서울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그리고 배우 수현(30)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인가.

마블스튜디오 히어로가 총출동하는 작품이니 당연히 재미야 있겠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과연 우리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더 컸다. 개봉 첫날 100만, 일주일 만에 431만이라는 역대 외화 최단 기록을 세우고 이를 계속 갱신하고 있는 것 역시 이 같은 연유에서 기원할 터다.

뚜껑을 열어보니 서울은 예상보다 허름하게 그려졌지만 수현이 맡은 닥터 헬렌 조는 기대 이상이었다. 세계적인 유전공학자의 포스를 풍기고 덕분에 사상 최대의 적인 울트론의 진화 과정에도 일조한다. 닥터 조의 연구실인 세빛둥둥섬은 아이언맨의 스타크 타워와 연결된 주요한 장소로 등장한다.

수현은 자신을 ‘마블의 신데렐라’로 이끈 요인을 영어와 외모로 꼽았다. 대기업 주재원이던 아버지를 따라 5살 때부터 6년간 미국에서 자랐기에 언어는 큰 장벽이 되지 않았다. 거기다 ‘이대 나온 여자’다. 그것도 국제학을 전공한. 덕분에 어려운 과학 용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언어 실력과 쟁쟁한 영웅들 사이에도 밀리지 않을 만큼의 존재감은 갖췄다.

큰 키(177cm)와 당찬 눈빛도 한 몫 했다. 조스 웨던 감독은 “눈빛에서 울트론을 두려워하면서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 한번쯤은 뭔가를 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그래서일까. 닥터 조는 전투에 직접 나서지 않지만 등장할 때마다 주도적으로 자신이 설 공간을 만들어냈다. 극 중 슬쩍 던진 “토르도 파티에 오나요”라는 한 마디와 표정 연기는 강렬했다. 어느새 두 사람의 로맨스를 기대하게 됐을 정도다. 내친김에 수현의 ‘어벤져스3’의 출연 여부까지 궁금해 한다. 존재감을 제대로 각인시켰다는 증거다.

사실 캐스팅 사실이 전해졌을 때까지만 해도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2005년 한중슈퍼모델 선발대회로 데뷔해 10년간 6편의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그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할도 주로 ‘차도녀’로 제한적이었다.

“매번 비슷한 역할만 들어오니까 잠시 안 하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같은 소속사에 있는 대니얼 헤니가 해외 오디션을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죠.”

그렇게 찍은 쉼표는 약이 되어 돌아왔다. 첫 오디션을 본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세븐’에는 떨어졌지만 현장에 있던 캐스팅 디렉터는 그녀를 넷플릭스가 제작하는 드라마 ‘마르코 폴로’로 안내했다. 그 사이 KBS 드라마 ‘도망자 플랜비’의 영어 연기를 눈여겨본 ‘어벤져스’ 제작진은 2013년 겨울 한국을 찾았다. “만약 한국에서 똑같은 역할을 계속하거나 분노의 질주를 했다면 지금의 기회는 얻지 못했겠죠.” 반보의 후퇴가 2보, 아니 10보의 전진을 이끌어낸 셈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배우로서 수현의 도전이 지금부터임을 말해주기도 한다. 그녀도 그걸 아는지 “이제 첫 영화를 잘 시작했으니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할 일이 많다”고 말한다. 연극 무대에도 서 보고 독립 영화에도 출연하고 싶단다. (큰 키를 숨기기 위해) 무릎을 굽혀서라도 사극을 찍고 싶다고 할 정도다.

바쁜 한국 일정을 마치고 ‘마르코 폴로’ 시즌 2 촬영을 위해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녀. 앞으로의 행보에는 물음표보다 느낌표가 많아지길. 그래야 신데렐라에 머무르지 않고 퀸으로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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