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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돌멩이가 주는 책상의 휴식

독일 뮌헨의 BMW 본사 건물은 유명세에 걸맞을 만큼 멋졌다. 4기통 엔진 실린더를 형상화한 건물은 예술적 위용을 드러낸다. BMW는 자동차를 넘어 현대문화를 이끄는 역할이 되길 바랐을 게다.

경탄은 계속된다. 본 건물과 이어진 대규모 갤러리의 조형성 때문이다. 서울의 DDP를 연상시키는 곡면 건물은 내부 인테리어의 조화로 세련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난해 여기서 벌어진 IF 디자인 상 시상식에 참석한 적 있다. 자동차 회사와 디자인 시상 장소. 얼핏 별 연관이 없어 보인다. 아니다. 디자인이란 생활의 도구를 감각적 아름다움으로 바꾸려는 노력 아니던가. 도대체 써먹을 일 없어 보이는 시시콜콜한 물건조차 디자인을 입히면 달라 보인다. 일상과 가장 밀접한 물건이 자동차다. 매일의 시간을 채워줄 필요한 도구와 자잘한 물건들이란 얼마나 많은가. 생활 디자인의 필요를 자동차 회사가 먼저 주목한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수상작들은 의외의 다양성으로 넘쳤다. 생활 영역 모두를 감각의 대상으로 본다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무용과 유용의 구분은 머릿속 판정일 뿐이다. 아름다움으로 포장된 물건들은 갖고 싶은 욕망을 부추긴다.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디자인 상품들은 일상의 시간을 촉각을 통해 즐거움으로 바꾸어 놓는다. 디자이너는 사소한 선택을 아름다움으로 바꾸어놓는 마법사 같았다.

“어차피 필요하다면 제대로 아름답게”
디자인상 단골 수상 브랜드 가운데 트로이카(Troika)가 있다. 독일에 근거를 둔 트로이카는 생활 소품과 비즈니스 액세서리가 전문영역이다. 열쇠고리에서부터 수첩. 지갑, 필기구, 와인 따개, 문진, 줄자, 브루투스 스피커까지. 일상과 업무에 필요한 자잘한 소품들의 종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트로이카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들에 특별한 애정을 보이는 듯하다. 폼 나 보이는 삶의 이면은 언제나 자질구레한 일들로 차있다. 있을 땐 느끼지 못하지만 없으면 불편한 자잘한 일상의 도구는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어차피 필요하다면 제대로 아름답게 만들자.” 생각보다 멋진 트로이카의 결의다.

꽤 오래전부터 트로이카의 제품들을 사용했다. 가죽 손잡이의 듬직한 열쇠고리가 첫 출발이다. 들어갈 땐 쉽게 들어가지만 잘 빠지지 않는다.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열쇠고리에 담긴 기능과 간결한 디자인 덕분에 다른 열쇠고리를 다 버렸다.

손톱 깎기와 면도기 칫솔이 한 통에 담긴 여행용품도 트로이카 제품이다. 편지 개봉 칼과 볼펜을 겸한 묵직한 금속 헬리콥터 문진도 있다. 이제 편지 개봉 칼의 용도는 하나도 반갑지 않은 카드대금 명세서를 뜯을 때 쓴다.

해외 여행할 때 꼭 필요한 가방 걸이도 있다. 유럽의 좁은 식당 테이블에 앉아본 이들은 안다. 가방 올려놓을 곳 없어 쩔쩔맨 경험을 떠올려보라. 테이블 끝에 고리를 걸쳐놓고 가방을 걸면 된다. 우스워 보이는 쇠고리는 크롬 광택으로 멋을 내고 문양을 박았다. 의외의 순간에 기지를 발휘하는 센스 만점의 대처는 동석한 여인네들을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트로이카의 제품들은 하나같이 일상의 필수품이 아니다. 크고 대단한 것만을 관심의 대상으로 삼는 위인들이라면 트로이카의 찌질함이 거슬려 보일 수도 있겠다. 트로이카는 나 같은 좀스런 사람들이나 팬시 상품에 관심 많은 여자들이 좋아한다. 거창한 구호와 다짐은 금방 시들게 마련이다.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 용기가 아닌 것처럼. 일상의 소소함을 단단하게 유지하는 각자의 취향과 스타일이 외려 오래 남는다. 수시로 쓰는 물건을 감각의 대상으로 여기는 일은 결코 우습지 않다.

사소한 물건일수록 더 아름답고 더 매끄럽게 만들어야 할 이유는 넘치고 넘친다. 수시로 보고 만지고 써야하기 때문이다. 주에 대응되는 종의 물건에 더 많은 감각적 기대를 품어도 이상할 게 없다. 시간을 확인할 일 없는 손목시계에 끝없이 새로운 디자인과 정교함이 더해지는 것처럼. 인간이 쓰는 모든 물건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져야 옳다.

제멋대로 변형 … 레드 닷이 반한 아이디어
최근 트로이카가 내놓은 이상한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자석이 들어있는 돌멩이 다섯 개와 둥근 철판이 전부인 용도 불명의 디자인 상품이다. 굳이 용도를 찾자면 명함꽂이나 클립을 끼워둘 수도 있겠다. 아무리 봐도 써먹을 데가 들어오지 않는다. 디자인의 대상이 구체적 용도를 잃어버리면 예술에 가까워진다. 감상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효용성을 묻지 않는 설치 미술이나 오브제 마냥. 만든 이는 “쓸데 없음의 쓸데 있음”을 주장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 물건은 IF와 쌍벽을 이루는 레드 닷에서 디자인상을 받았다. 세상은 필요를 기막히게 읽어낸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눈 밝은 심사위원들은 바보가 아니다. 자석이 든 돌덩이들은 기특했다. 극성의 이끌림과 반발로 제멋대로 들러붙는다. 돌멩이의 조합은 똑같은 모습을 만들지 않았다. 목을 뺀 오리 형상 같기도 하고 제주도 할망바위 같기도 하다. 접촉점만으로 위태롭게 붙어있는 돌멩이의 균형은 긴장감마저 준다. 떨어져 또 쌓으면 전혀 다른 형상으로 바뀐다.

이 물건은 놀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장난감이다. 컴퓨터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글쟁이나 디자이너뿐일까. 거의 모든 직종의 업무는 컴퓨터와 씨름하는 일이 대부분이다.트로이카는 책상에서 뭉그적거리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너무도 정확히 읽었다. 머릿속을 환기시켜야 할 필요는 당연하다. 놀이와 휴식을 위해 몸이 움직여야 할 때다. 단순반복의 행동만으로 재미를 느끼는 아이들처럼 놀면 된다. 아무나 손 붙잡고 놀 수는 없다. 어른들의 장난감은 이 슬픈 시간을 재미와 여유로 바꾸어 놓는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체험을 디자인으로 녹여냈다. 스치는 바람으로 생각의 환기가 이루어진다. 짜증나는 지하철역의 혼잡이 외려 갈 곳을 명확하게 해주지 않던가. 하릴없이 만지작거리는 돌멩이에서 엉뚱한 상상이 떠오른다. 쓸데 있는 것은 쓸데없는 것을 통해 조립되고 방향을 찾게 된다. 무용함의 여유와 공백은 유용함의 긴장과 빡빡함을 녹이는 힘이 있다.

이런 물건을 왜 만들었는지, 왜 사들이는지의 이유는 분명해진다. 세심하게 읽어낸 일상은 디자인의 힘을 더해 공감의 지점을 넓혀간다. 또 다른 누구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줄 수 있는 디자인에 상을 준 일은 잘 한 일이다.

트로이카의 디자인은 모두에게 말을 붙인다. “반복되는 일상의 시간에 즐겁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자”라고. 제 삶의 가치가 아름다움의 기대와 연결될 때 디자인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여준다. 공평하게 나누어져야 할 모두의 아름다움을 위해 내용의 디테일을 채우는 세상의 디자이너들에게 축복을!


윤광준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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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