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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스타일은 발품에서 나온다

올 것이 오고 말았다. 바야흐로 통바지의 유행이 도래하는 중이다.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스키니의 시대가 저물어 간다.

예견이야 진즉부터 있었다. 지난가을 루이 비통, 셀린, 구찌 등 유수의 해외 컬렉션에서 와이드 팬츠의 유행을 알렸다. 하지만 믿지 않았다. 학습 효과다. 2011년에도, 그 이후에도 비슷한 전례가 있었다. 당시 컬렉션마다 와이드 팬츠가 등장했고 일부 패션 피플들도 입고 나왔지만 그게 다였다. 민심은 여전히 스키니였다.

왜? 그만큼 와이드 팬츠란 어려운 옷이라서다. 키 작은 이들에겐 짧아보이는 치명적인 옷이요, 키가 커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다리를 길게 보이려 밑위 길이를 올려 배를 가리면 아랫배가 불룩해 보일 수 있다. 엉덩이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위험 부담이 큰 실루엣이기도 하다.

하여 이번에도 잡지나 외신에서 와이드 팬츠를 봄 트렌드 일 순위로 꼽으며 ‘이번엔 진짜’(‘true comeback’ ‘for real this time’) 같은 문구를 썼을 때도 양치기 소년이려니 했다. 지난 3월 서울패션위크 쇼장 밖의 통바지 옷차림은 ‘감각 있는 애들이니까’ 정도로 치부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미 자라나 H&M 같은 SPA 브랜드는 물론이고 백화점 매장까지 어느새 통바지로 물갈이됐다. 반응도 완판을 내세울 만큼 뜨겁다. 지난 주말 30~40대 여자 10여 명이 모인 자리에 나가 보니 세 명이 와이드 팬츠를 입고 나왔다. 오판임을 깨달았다.

이쯤이면 준비해야 한다. 시기의 차이일 뿐 결국 우리는 대세를 따르게 될 것이다. 내복 같아서 절대 안 입겠다던 레깅스를 어느 순간 스스럼없이 걸쳤던 것처럼, 군복처럼 후줄근해 보였던 야상 점퍼를 봄·가을 필수 아이템으로 사들였던 것처럼 말이다.

이미 여기저기서 와이드 팬츠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코디법이 쏟아지고 있다. 요지인즉슨, 플레어 팬츠(일명 나팔바지)도 좋고 팔라초팬츠(치마처럼 보이는 통바지)도 좋지만 발목이 보이는 크롭트 팬츠가 가장 추천할 만한 유형이라는 것. 거기에 하얀 운동화나 통굽 샌들, 그리고 형태가 잡히는 짧은 길이의 상의-가령, 크롭트 스웨트 셔츠 같은-를 짝지으라고 했다. ‘멋 내는 것 따윈 관심없어’ 하는 듯한 딱 그 모습이요, 요즘 회자되는 ‘놈코어(normal과 hardcore의 합성어)’의 전형이기도 하다. 표본이 되는 스타일링 화보만 봐도 그야말로 편안해 보인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지 않나. 그런 게 더 어렵다는 걸. 마치 흰 티셔츠에 청바지로 멋져보이는 것과 같은 난이도다. 스타일링 공식도 단지 참고 사항이다(잡지 속 사진들은 이미 모델들이 입고 있다!).

해결책은 단 하나. 결국 내 체형에 맞는 와이드 팬츠란 성의를 다해 찾고 또 찾을 수밖에 없다. 백지 상태에서 소재·재단·길이 등등의 조합을 찾을 때까지. 장기전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도저히 용기를 못 내던 레깅스도 엉덩이에 주머니를 달거나 청바지에 신축성을 더한 제깅스의 형태를 찾으면서 즐겨 입게 됐고, 논 매러 가냐는 소리를 들을까 겁내던 레인부츠도 발목까지 오는 디자인으로 ‘적정선’을 맞췄다. ‘패션은 자신감’이라는 조언, 거울 앞에 서면 공허하다. 유행을 따르면서 나만의 스타일을 찾기엔 발품만이, 노력만이 구원이다. 인생 대소사가 대개 그렇듯 말이다.


글 이도은 기자dangdol@joongang.co.kr, 사진 엠포리오 아르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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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