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마켓앤마케팅] ⑬'No 로고' '조용한 매장'...침묵의 마케팅, 디브랜딩 전략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S6의 일본 내 광고. 제품 어디에도 삼성이라는 로고를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삼성전자가 일본시장에 출시한 갤럭시6에서는 ‘SAMSUNG’ 로고를 찾을 수 없다. 스마트폰 본체는 물론 무선충전기 등 액세서리에도 제품명 ‘GALAXY’나 통신사 이름만 새겨져 있다. 일본에는 자국 기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미국·유럽을 제외한 외산 제품 구매를 꺼리는 소비자가 많다.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이웃나라 기업의 최첨단기기를 들고 다니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무선 충전 패드도 일본 판매 제품엔 `갤럭시`만, 그 외 지역 판매품엔 `삼성`로고가 씌어 있다.


역사적, 문화적 갈등이 증폭되는 사회 분위기도 한국기업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수십 년간 쌓아온 브랜드 명성과 한국 대표기업이라는 상징성이 역효과를 부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2014년 일본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4%대에 그쳤던 삼성전자는 ‘기업명 제거 전략’으로 입지를 넓히려는 모습이다.
앞쪽 상단엔 삼성 대신 일본 통신사업자 `도코모` 로고가, 뒷면에는 `갤럭시`라는 제품명만 새겨져 있다.


버드와이저·코로나 등을 보유한 세계 최대 맥주기업 안호이저-부시 인베브(AB 인베브)의 행보도 유사하다. 최근 미국에서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닌 수제맥주가 인기를 끌자 이 회사는 시카고 ‘구스 아일랜드’, 뉴욕 ‘블루 포인트 브루잉’ 등 소규모 맥주 업체를 적극적으로 인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맥주 라벨에 ‘AB 인베브’라는 이름을 절대 넣지 않는다. 개성 있는 맥주를 찾는 소비자에게 버드와이저 같은 대중적인 맥주와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한 체험을 기대하는 고객의 욕망을 깨지 않기 위한 전략이다.

Who 아닌 What을 부각시켜야

기업은 때때로 자신의 이름을 숨기거나 최소한으로 노출시키는 ‘디브랜딩(de-branding)’ 전략을 취한다. 최대한 많이 드러내고 소비자의 마음에 강하게 각인시키고자 하는 일반적인 마케팅과 상반된다. 유명 브랜드는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연상되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 제품 특성이나 경영방식 등에 관한 고정관념이 형성되기 쉽다. 소비자들의 선입관이 상품 가치 평가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높은 인지도와 명성에 따르는 성공의 달콤함만큼 제한도 커지는 것이다. 이 때 디브랜딩은 ‘누가(who)’가 아닌 ‘무엇(what)’을 부각시켜 기업이 아닌 제품이나 서비스, 메시지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브랜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반감을 지닌 고객의 태도를 바꾸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려면 직설적인 주장보다 우회적인 화법이 효과적이다. 부정적 신념이 확고한 소비자는 기업의 메시지에 주의조차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대영박물관은 박물관에 호감을 갖지 않는 시민들에게 박물관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그리고 ‘누가’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박물관 로고를 제거한 광고를 제작하기로 했다. 지하철역 광고는 베스트셀러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빗대 ‘성공한 과대망상증 환자들의 7가지 습관’이란 제목을 붙여 만들었다. 공중화장실의 배설물을 가져가는 양모가공업자에게 ‘소변 세금’을 매긴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부터 줄리어스 시저, 윈스턴 처칠의 알려지지 않은 습관에 관한 긴 글을 흥미롭게 읽다보면 맨 마지막 문장에서야 더 많은 스토리가 대영박물관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보는 이의 몰입도를 높여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한 후 이야기의 화자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식이다. 대영박물관에 관심이 없던 소비자들도 광고를 접한 후 방문 의향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조용한 매장' 성공이 주는 교훈

디브랜딩은 ‘침묵의 마케팅’이기도 하다. 수많은 브랜드가 주목을 끌기 위해 경쟁하는 혼잡한 시장에서 한발 뒤로 물러서 조용히 기다린다는 의미에서다. 과도한 마케팅으로 인한 낭비와 피로를 깨닫고 절제와 평온함의 가치를 되새겨보자는 취지에서 디브랜딩이 활용되기도 한다.
침묵 마케팅의 역사는 1909년 영국의 셀프리지(Selfridges) 백화점이 시도한 ‘No Noise’ 프로젝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자 해리 고든 셀프리지는 매장 한편에 ‘침묵의 방(Silence Room)’이라는 공간을 마련했다. 방문객들이 혼란스러운 쇼핑의 소용돌이를 벗어나 고요 속에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도록 만든 방이었다.

고객들이 매장의 소음과 북적거림에서 벗어나 쉴 수 있도록 셀프리지 백화점이 설치한 `침묵의 방`
2013년 셀프리지 백화점은 지금이야말로 ‘No Noise’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침묵의 방을 부활시켰다. 매장의 소음과 북적거림은 물론 21세기 문명의 방해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신발·휴대폰 등을 라커에 두고 입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동시에 미니멀리즘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조용한 매장(Quiet Shop)’을 선보였다. 리바이스, 하인즈 등 유명 브랜드들이 참여한 디브랜디드(de-branded) 제품 컬렉션이 소개되었는데, 이 제품들은 지금도 수집가들 사이에서 온라인 경매에 붙여지곤 한다.

`스타벅스 이브닝`에서 간단한 식사를 즐기는 고객들 모습
뚜렷한 정체성을 지닌 기업이 변신을 시도할 때에도 디브랜딩은 효과적이다. 2009년 스타벅스는 커피 이외의 음료로 사업 다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주류(酒類) 시장 진입을 고려하게 되었다. 커피 사업이 낮 시간에 집중했다면 알콜 음료로 고객들의 밤 시간을 채워줄 수 있다는 논리였다. 시애틀 캐피톨힐에 ‘15번가 카페(15th Avenue Coffee & Tea)’라는 가게를 열고 맥주와 와인, 가벼운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이 매장에서는 초록색의 스타벅스 로고를 찾아볼 수 없었다.

스타벅스가 `15번가 카페`(위) 매대 모습
밤이면 시를 낭송하거나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스타벅스는 이런 ‘인디’ 컨셉트의 매장을 하나 더 개장했고, 두 곳을 ‘학습실(learning lab)’이라 불렀다. 낮에는 에스프레소를, 밤에는 맥주를 판매하는 실험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학습한다는 의미였다. 지금 스타벅스는 맥주, 와인과 간단한 식사를 제공하는 ‘스타벅스 이브닝(Starbucks Evenings)’ 사업을 미국 20여개 매장에서 실행하다 올해부터는 영국으로 확장했다. 물론 지금은 스타벅스 로고를 사용한다.

기업이 자신을 내려놓으면 고객이 주인공이 되어 스토리를 만들어갈 수 있다. 고객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면 제품 활용성이 높아지고 애착 관계가 형성된다. 코카콜라는 2014년 콜라병에 ‘코카콜라’ 대신 크리스(Chris), 제시카(Jessica) 등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는 250개의 퍼스트네임을 새겨 판매하는 ‘Share a Coke’ 캠페인을 벌였다. 자신은 물론 친구, 가족의 이름이 새겨진 콜라를 선물하며 즐거움을 나누자는 취지였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SNS를 통해 ‘나의 콜라’와 함께 한 사진을 퍼뜨렸고, 원하는 이름을 찾느라 수십 개의 매장을 돌아다니는 소비자들도 나타났다. 2000년대 들어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는 미국 탄산음료 시장에서 코카콜라는 2014년 매출이 전년대비 19%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자신만의 상품을 소유하고 자신을 표현하기 원하는 젊은 소비층의 욕구를 만족시킨 결과였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새겨넣은 코카콜라 국내 판매 제품과 고객의 이름을 새겨넣은 미국 판매 제품
오는 5월부터는 이름을 1000개로 확장한 캠페인을 시작한다. 독특한 이름을 지닌 소비자는 온라인으로 ‘맞춤 콜라’를 주문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이름 대신 ‘우리 가족’, ‘친구야’, ‘사랑해’, 잘 될거야’ 등의 단어를 사용해 소비자가 상황에 맞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실행됐다. ‘Share a Coke’는 최근 수년간 코카콜라는 물론 소비재 기업들이 진행한 마케팅 캠페인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사례로 꼽힌다.

위선적으로 비춰지지 않게 주의해야

디브랜딩 전략을 고려할 때는 이중적이거나 위선적으로 보일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영국에서는 커피 장인이 운영한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인기를 끈 카페 체인 ‘해리스+훌(Harris+Hoole)’이 실상은 거대 유통업체 테스코(TESCO)의 소유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많은 소비자들이 ‘충격적이고 배신감을 느낀다’며 강한 실망감을 표했다. 미국 맥주양조협회는 AB 인베브가 소규모 업체가 만든 것처럼 속인 ‘가짜 수제맥주’를 판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진정성이 결여된 실력은 불신을 낳게 된다.

대형 브랜드에 대한 규제와 반감이 강한 한국 시장에서는 더 민감한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디브랜딩은 단순한 눈속임 전략이 아닌, 상품이나 사업의 본질적 가치를 평가하고 소비자 참여를 유도하는 투명한 목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스타벅스는 ‘15번가 카페’를 오픈하면서 창문에 ‘스타벅스로부터 영감을 얻은(inspired by Starbucks)’이라는 문구를 써넣었다. 많은 소비자들이 카페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를 알았고 회의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수년간 신사업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실험에 충실한 결과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진정한 디브랜딩은 브랜드 가치와 철학, 품질에 대한 확신이 뒷받침된 자신감의 표현이다.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인 셈이다. 그만큼 파워 브랜드의 계급장을 떼어내고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소통하려는 겸손한 마음가짐이 전제되어야 한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 경영학과 교수

최순화는 소비자학을 공부했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석사학위를, 퍼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근무했다. 현재 국내외 소비시장 트렌드 분석, 브랜드 관리 전략 등을 연구하고 있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