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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나의 동경…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피아니스트 레이프레이프 오베 안스네스와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미국 카네기 홀에서 협연한 ‘The Beethoven Journey’


음반을 한번 들으면 대단한 감동이 아니어도 좋은 인상으로 머리 속에 각인되는 연주가가 있다. 노르웨이 출신의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Leif Ove Andsnes,45)가 그런 사람이다. 그다지 중요한 곡을 들은 것도 없고 특별한 솜씨를 보인 것도 아닌데 이름이 머리 속에 오래 맴돌았다. 노르웨이 해변풍경에서 명칭을 빌린 소품 모음집 ‘Horizons’. 2006년 출시된 것이니 벌써 9년 전 일이다. 며칠 전 그가 5월에 서울에서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진행해 온 ‘The Beethoven Journey(베토벤 협주곡 연주여행)’ 무대를 갖는다는 기사를 읽고 무척 반가왔다.

그 음반의 특징이라면 앵콜곡 정도로 가볍게 취급되는 소품들을 자기 존재를 빨리 세상에 알려야 하는 신진이 과감하게 들고 나온 것, 그리고 구성도 대중 선호가 강한 흔한 곡 보다 스크랴빈의 ‘즉흥곡’, 카탈루냐 작곡가 페테리코 몸포우의 ‘칸시온과 춤곡’ 등 이색적 곡들을 다수 동원하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지금 돌아보면 이건 신예 연주가로 대단한 자신감의 표현이고 아주 현명한 선택이기도 했다. 소품들은 그 작곡가에게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통로이며 듣는 쪽도 그렇다. 대체로 소품에 작곡가의 본질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안스네스는 음악학교 초기부터 스승에게서 소품의 중요성을 배웠고 그것들을 늘 가까이 했다는데 이 음반은 그의 초기 음악자전적 성격도 띠고 있다.

그러나 소품에 오래 집착하는 청중은 없다. 나도 리뷰 때문에 잠시 들었을 뿐 이후 다시 ‘Horizons’을 듣지는 않았다. 가끔 노르웨이 해변을 거니는 한 창백한 청년 연주가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촉망받는 신예라고 하나 그의 전도가 그다지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유럽 변방 소국 출신에 큰 콩쿨의 훈장 같은 것도 없는 이 젊은이는 모국에서나 인정받는 정도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당시 내 생각이었다.

그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 청년 연주가는 한적한 해변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와서 베를린과 비엔나와 뉴욕의 큰 무대를 차례로 섭렵하고 지금은 음악연주의 한 경향을 리드하는 영향력 있는 연주자로 키가 훌쩍 커버렸다. 안스네스는 노련하고 준비가 철저하게 되어있는, 관록마저 엿보이는 중후한 프로 연주가다. 나는 최근 그가 수년간 동행한 말러 체임버와 함께 연주한 베토벤 협주곡 1,5번 그리고 모차르트 협주곡 등을 듣고 그의 능숙한 리드와 완벽한 하머니에 매우 놀랐다. 지휘와 독주를 겸하는 경우 독주자의 팔 동작이 어색하고 미세한 시간차의 간극으로 흐름이 자주 끊기기도 하는데 이 경우는 서로 한 몸처럼 호흡이 척척 맞는다. 너무 호흡이 잘 맞아 흥에 겨운 나머지 약간 빠른 템포로 흐르는 경향이 있긴 하다.

안스네스의 피아노 소품집
안스네스의 피아노 소리는 감각적이며 경쾌한데 신중하게 계산된 조심스런 건반 터치가 몸에 배어 있으며 이것이 그의 기본자산이다. 그는 음악을 참 맛있게 연주한다. 아마 청중도 맛 좋은 음식을 대하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마치 1급 요리사가 조력자를 거느리고 능숙하게 요리과정을 이끌어가듯 그는 능숙하게 악단을 이끌어간다. 그 황량한 해변에서 습득한 비책일까. 그는 청중을 음악 속에 끌어들이는 마력 같은 걸 지닌 듯 하다. 너무 귀에 익어 별로 새롭지 않은 곡도 그의 손을 거치면 갑자기 새롭고 신선한 음악으로 변한다. 베토벤 5번 황제협주곡을 듣고 ‘이렇게 처연하고 아름다운 5번이 있었던가?’ 하고 자문했다.

역시 말러 체임버와 손을 맞춘 모차르트 협주곡 18번은 탄성을 자아낼만큼 하머니의 일치가 극점에 달했다. 여백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평을 할 수 있으나 청중은 빈틈이 보이지 않는 연주에 박수 대신 요란한 탄성으로 응답한다. 그에게는 별도의 지휘자가 거추장스런 훼방꾼일 것 같다는 생각마저 했다. 실제로 지휘자와 협연한 그리그 협주곡이나 다른 곡에서는 그가 말러 체임버와 함께 보여주던 일치감은 느끼지 못했다. 어딘지 느슨해지고 긴장감이 떨어져 전혀 다른 연주자를 보는 것 같았다. 앞으로 지휘자 없는 협주곡의 시대를 예고하는 현상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에서 안스네스는 만능 독주자의 면모를 보여줬다. 쇼팽 특유의 보라색 색채를 화려하고 간결하게 살려내는 솜씨에서 ‘쇼팽까지 이렇게 잘 치나?’ 하는 푸념 아닌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안스네스는 협연이건 독주건 철저하게 준비된 프로 연주가이다. 그에게서 현대 청중 취향에 맞게 진화된 새 유형의 연주가를 본다. 템포를 조금씩 빨리 진행하는 것, 작은 무대 연주를 즐기는 것도 그렇다. 그는 시즌의 첫 독주무대를 뉴욕의 ‘녹색공간’이란 작은 홀에서 갖기도 했다. 사람 몇 명만 모이면 언제라도 그는 건반 앞에 앉을 준비와 자세가 되어있는 연주가로 보인다. 그에게 무대에 나서는 연주가의 긴장감, 비장감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늘 준비되어 있고 음악 속에 깊이 빠져 살고있기 때문이다.

“내가 자란 노르웨이 서해안 카르뫼이 섬, 그곳 수평선을 돌아볼 때마다 바람이 불고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모양이 떠오른다. 그 모양은 언제나 다르다.” 안스네스의 음악을 대하는 내면의 한가닥을 암시하는 고백이다.

송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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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