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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자연사이야기] <26> 중생대 공룡의 짝짓기 - 브라키오사우르스는 호수에서 사랑을 나눈다

오스트리아 자연사박물관은 파격적으로 짝짓기하는 티라노사우루스의 장면을 연출해 전시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자세가 틀렸다. 저런 불안전한 자세로는 짝짓기를 할 수 없다.


“적어도 동물에게 수컷은 왔다가 사라지는 존재이다. 수컷의 95%는 암컷 근처에도 못 가보고 쭉정이로 살다가 갈 뿐이다.”
국립생태원 최재천 원장의 말이다. 신문 칼럼에서 이 대목을 접하고서 나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 무한히 감사했다. 나는 이미 무수히 많은 짝짓기 행동을 했으며 후손을 둘이나 남겼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 내가 인간이 아니라 중생대 공룡으로 살았으면 어땠을까?

수컷 95%, 암컷 근처도 못 가고 사라져

나는 스테고사우루스다. 약 1억 5000만 년 전 쥐라기 후기에 북아메리카 서부와 유럽에 살았다. 가끔 인간들이 나, 스테고사우루스와 저 흉악한 티라노사우루스가 같이 살고 있는 모습을 그리는데, 나와 티라노사우루스의 시대는 티라노사우루스와 인간의 시대 차이보다 훨씬 멀다. 그러니 나와 티라노사우루스를 같이 그리는 짓은 제발 멈춰주기 바란다. 내가 살던 시대에는 알로사우루스란 놈이 살고 있었다.

나는 인간 어린이에게 인기가 아주 높다. 공룡에 대한 어린이의 기대에 걸맞는 육중한 체격, 뒷다리보다 앞다리가 조금 짧아서 둥글게 휘어진 등, 그리고 꼬리에 달린 4개의 골침과 등에 두 줄로 붙어 있는 40개의 골판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인간 어린이들은 내 골침과 골판에 관심이 많지만, 이것들은 인간이 보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골침은 나를 노리는 육식공룡에 대한 위협 수단이다.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걷노라면 육식공룡들은 가까이 올 엄두를 못낸다. 가끔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겁 없이 혼자 덤비는 놈들이 있는데 한 방이면 저승으로 보낼 수 있다.

내 생애의 목표는 후손을 남기는 것. 번식이야말로 모든 생명의 지고지순한 목표 아니던가! 후손을 남기려면 짝짓기를 해야 한다. 동물들은 대개 암컷과 수컷이 다르게 생겼다. 인간들은 굳이 이것을 ‘성적이형성(性的異形性)’이라는 어려운 말로 표현한다. 우리 스테고사우루스의 골판은 암수에 따라 모양이 다르다. 인간들은 이걸 2015년에야 겨우 알아차렸다. 암컷에게는 길고 날카로운 골판이 있으며, 수컷들은 넓고 둥글어 표면적이 45% 정도 더 큰 골판이 있다. 이걸 어떻게 알아냈냐고? 인간들의 커다란 두뇌에는 ‘직관’이라는 멋진 기능이 장착되어 있다. 핸디캡 가설이라는 게 있다. 수컷은 자신이 진화적으로 더 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것을 몸에 달고 다닌다는 가설이다. 길고 뾰족한 골판은 포식자에게 위협이라도 되지만 넓은 골판은 몸을 크게 보이려는 장식에 불과하다. 그러니 넓은 골판이 있는 개체가 수컷이라는 것이다.

고백컨대 나는 머리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 몸통에 비해 머리가 지나치게 작지 않은가! 내 몸통은 대략 작은 버스만 하지만 내 두뇌는 조금 작다. 우리를 중상모략하는 이들은 우리 스테고사우루스의 뇌가 호두만 하다고 말하는데, 우리 몸집이 커서 작게 보일 뿐이지 개의 뇌와 같은 크기다. 4.5t의 몸통에 뇌는 80g에 불과하지만 느릿느릿 단순하게 사는 데는 충분하다. 괜히 두뇌를 키우느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가만히 서 있는 나무만 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간혹 내가 풀을 먹고 살았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있는데, 내가 살 때는 풀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풀은 나중에 아주 나중에 생긴다. 골판이라는 누가 보더라도 확실한 특징이 우리에게 없었다면 어떤 놈이 우리와 같은 종족인지, 또 어떤 놈이 내가 쫓아가야 할 암컷인지 구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오늘도 짝짓기를 못했다. 나는 아마 95%의 수컷에 속하나 보다.


초식공룡 스테고사우루스, 암수 따라 골판 모양 달라

나는 브라키오사우루스다. 쥐라기 말기에서 백악기 초기까지 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북부, 유럽에 산 목긴 공룡이다. 어려운 말로 용각류라고 한다. 나는 전 세계 공룡 팬들의 로망이며 대한민국 만화 ‘아기공룡 둘리’에 둘리의 엄마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웃기게도 둘리는 우리 브라키오사우루스를 하나도 닮지 않았다. 목이 길기는커녕 있는지 없는지 구분도 안 된다. 아무리 봐도 둘리는 우리 브라키오사우루스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

거대한 목긴공룡(용각류)이 짝짓기를 하려면 물 속에서 부력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내 긴 목을 보고서 자꾸 높이 있는 건물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으로 그리는데, 사실 난 목을 앞으로 길게 빼고 걸었다. 목을 곧추세우고 걷는다고 생각해보라. 머리끝까지 피를 올려 보내느라 심장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또 우리 목관절은 아래쪽으로 잘 움직이게 되어 있다. ‘쥐라기 공원’이란 영화에서는 내가 두 발로 서기도 하더라. 하지만 난 앞다리가 뒷다리보다 훨씬 더 길고 무게중심도 앞다리 쪽에 있다. 짧고 약한 뒷다리로 서기도 어렵고 굳이 설 필요도 없다.

나는 암컷을 만나 짝짓기를 하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공룡의 짝짓기 분야에서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비버리 할스테드(Beverly Halstead, 1933~1991) 박사가 제안한 ‘공룡 스타일’을 따라할까? 저기 암컷이 보인다. 암컷과 나란히 걸으면서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암컷이 멈추면 등에 올라탄다.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내 생식기가 접근하기 좋게 엉덩이를 들어 올리고 꼬리를 휘어서 옆으로 치워줄 것이다. 실패다! 너무 불안정한 자세다. ‘공룡 수마트라’도 아니고….

문제는 40t이나 나가는 몸무게다. 우리처럼 육중한 공룡에게 짝짓기는 불가능할까? 시카고 대학의 스튜어트 랜드리(Stuart Landry) 박사는 중요한 힌트를 주었다. 물이다. 물의 부력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나는 암컷을 호수로 유인해야 했다. 여기에 실패한 나는 결국 95%의 수컷 가운데 하나가 되고 말았다.


암컷은 꼬리를 한쪽으로 치워 수컷 접근 도와

해부학적 조사를 통해 복원한 스테고사우루스 므조시(Stegosaurus mjosi) 수컷(왼쪽)과 암컷(오른쪽)의 형태. 골판을 비롯한 초식공룡의 각종 장식은 암수를 구분하는 역할을 했다.
나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룡일 것이다. 불과 6800만~6600만 년 전에 북아메리카 서쪽에 살았다. 거의 마지막 공룡이라고 보면 된다. 내가 날랜 사냥꾼이라느니 굼뜬 시체청소부이라느니 말이 많지만 나는 거기에 관심이 없다. 어떻게든 배를 채우고 암컷을 찾아 짝짓기를 하고 후손을 남기는 게 삶의 유일한 목표다.

암컷을 어떻게 찾을까? 스테고사우루스나 트리케타톱스처럼 장식이 특이해 자기 짝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초식공룡과 달리 우리 육식공룡은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겐 기다란 관 모양의 큰 뇌가 있어 제법 똑똑하다. 동물의 암컷과 수컷을 구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색깔이다. 새를 보자. 보통 암컷보다 수컷은 색깔이 화려하다. 장식도 중요한 요소다. 가지진 뿔은 수컷 사슴에게만 있다. 크기 역시 중요한 요소다. 예외가 많기는 하지만 주로 수컷이 암컷보다 크다. 행동도 다르다. 새 가운데에서도 수컷이 특이한 울음소리로 노래를 한다. 색깔·크기·장식·행동은 암수를 구분하는 데 쓰이면서 동시에 짝짓기를 하는 데 강력한 경쟁 요소가 된다.

그런데 이런 요소들로 인간들은 우리 육식공룡의 암수를 가르지는 못한다. 첫째, 우리는 뼈와 이빨만 남겼을 뿐 피부와 깃털을 남기지 않았다. 우리의 피부와 깃털이 어떤 색깔과 문양을 가졌는지 인간들은 모른다. 크기도 실마리가 되지 않는다. 우리 파충류는 평생 자란다. 지금까지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는 30㎏에서 5.4t에 이르기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가장 작은 개체의 나이는 2살, 가장 큰 개체는 28살로 추정된다. 공룡은 크기로 나이를 짐작할 수 있을 뿐 암수를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도 알을 낳기 때문에 인간들에게 해부학적인 힌트를 주는 친절을 베풀 수는 있다. 우리 티라노사우루스는 골밀도가 높은 ‘강건한(robust)’ 형태와 골밀도가 낮은 ‘연약한(gracile)’ 형태로 나뉜다.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강건한 형태가 암컷이다. 왜냐하면 ‘강건한’ 표본의 골반이 더 넓었다. 골반이 더 넓으면 알이 쉽게 통과했을 것이다. 또 암컷 악어의 첫 번째 꼬리 척추골에 있는 ∧ 모양의 구조가 강건한 형태의 티라노사우루스 첫 번째 꼬리 척추골에서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를 비교해보면 확실히 암컷이 수컷보다 컸다.

인간이 우리 티라노사우루스의 암수를 해부학적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우리가 상대방을 미리 해부해 보고 짝짓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몸에는 털이 덮여 있고 행동도 다르다. 우리 육식공룡들은 충분히 짝을 구분할 수 있었다. 어떻게 구분했냐고? 안 알려준다. 그것을 알아내는 일은 당신들의 일이다. 힌트는 새에게 있다. 새는 살아 있는 공룡이다. 우리의 짝짓기 행동은 새의 짝짓기 행동과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우리는 대개 같은 체위로 짝짓기를 했다. 암컷이 쭈그리고 앉으면 수컷은 뒤에서 올라타서 암컷의 어깨에 앞발을 얹는다. 그러면 암컷은 꼬리를 한쪽으로 치워줘 수컷 페니스가 접근하기 좋게 해준다. 개가 짝짓기 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된다. 거의 같다. 대신 우리는 페니스가 어쩔 수 없이 무척 커야 했다. 3~4미터쯤 되었다. 그래야 겨우 짝짓기가 가능했다. 평소에는 이걸 몸속에 감추고 다녀야 했으니 얼마나 불편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짝짓기에 성공했냐고? 이젠 그게 쉬운 일이 아니란 것쯤은 잘 아실 텐데…. 나도 95%의 수컷에 속한다. 우리 공룡들은 수컷 인간들이 한없이 부럽다. 그대들은 모두 상위 5%에 속한다. 부디 번성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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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