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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가 쓰는 셰프이야기]<3> 미국인 첫 미슐랭 별 셋 셰프 '더 프렌치' 토마스 켈러

토마스켈러(59) 현재 프렌치 론드리(미슐랭3스타), 퍼 세이(미슐랭3스타), 부숑(미슐랭1스타) 오너셰프. 레스토랑 오너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일찍 요리에 입문. 프랑스의 미슐랭 스타보유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1984년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헤드셰프를 했다. 94년 나파벨리로 건너가 프렌치 론드리를 세웠고, 2006년 이후 매년 미슐랭 3스타를 유지하고 있다.


토마스 켈러라는 셰프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20대 초반 대학생 시절이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프랑스 세탁소 요리책(The French Laundry Cookbook)』이라는, 조금은 당황스러운 이름을 가진 요리책을 접하면서부터였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넓은 넓이에 깔끔하게 접힌 넵킨이 표지사진으로 들어가있던, 지금은 교과서가 되어버린 책이다. 하지만 당시 그저 요리에 관심있는 학생 눈에는 예쁜 표지를 가진 인상적인 이름의 요리책일 뿐이었다. 솔직히 요리를 공부한다고는 했지만 외국 요리사들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모든 게 달라졌다. 내 요리철학, 그리고 목표점까지 말이다.

토마스 켈러는 미국 요리사의 대표 아이콘이다. 미국 요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는, 실로 위대한 셰프다. 어릴 적 설거지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다른 많은 요리사들이 거쳐간 길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가 1994년 캘리포니아 나파벨리에 문을 연 더 프렌치 론드리(The French Laundry)를 기점으로 그는 '다른' 요리사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됐다.

켈러는 더 프렌치 론드리를 통해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최초의 미국 태생 요리사가 됐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미슐랭 3스타를 유지하는 레스토랑을 둘이나 갖고 있는 역시 유일한 미국 요리사다. 또 세계적 요리대회인 보큐즈 도르(Bocuse d’Or)의 유일한 비(非) 프랑스인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이 말은 프렌치 요리를 하는 요리사가 얻을 수 있는 모든 명예는 다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살아있는 전설의 반열에 오른 이유다.

물론 이런 명예가 우연히 따라온 건 아니다. 그의 징그러울 정도로 독한 완벽에의 추구 성향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완벽한 결과를 위한 완벽한 과정, 그리고 완벽한 과정을 만들기 위한 완벽한 준비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초창기엔 바로 이런 성격 때문에 직원은 물론 손님에게까지 외면 받았던 적이 있다. 하지만 잠시였다. 뉴욕에서 쓴맛을 보기도 했으나 더 프렌치 론드리, 그리고 이로부터 딱 10년 후 뉴욕에 문을 연 퍼 세이(Per se)를 통해 뉴욕으로 금의환향할 수 있었다.

대학 졸업후 떠난 유학길에서 켈러의 이 모든 명성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요리학교(CIA)는 퍼 세이가 있는 맨하탄에서 기차로 2시간정도 떨어진 허드슨벨리에 있었다. 입학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 주말마다 맨하탄으로 내려가 퍼 세이에 스타지(무료 견습생) 이력서를 넣었다. 당시 내가 챙긴 짐이라곤 옷가지와 칼, 그리고 『더 프렌치 론드리 쿡북(The French Laundry Cookbook)』뿐이었다.

2010년 퍼 세이에서 열린 암환자 기금마련 행사 후 토마스 켈러 셰프 등 퍼 세이의 전현직 셰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력서를 넣기 위해 수없이 많은 레스토랑에 방문했지만 실제 주방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상상 속 켈러의 주방은 책에서 얼핏 옅본 사진이 전부였다. 정리가 아주 잘된 주방이었다. 이걸 보고 혼자 짐작했다. 사진 찍으려고 평소보다 더 깔끔하게 정돈을 했겠지, 라고. 하지만 나의 첫 출근날 그 편견이 보기좋게 깨졌다.

과연 이곳이 주방?

아주 조금의 과장도 보태지 않고 내 눈 앞에 펼쳐진 퍼 세이의 주방은 딱 모델하우스 같았다. 깔끔하고 완벽하게 정리정돈된, 마치 예술작품과도 같은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약간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는 순백, 그리고 스테인레스의 은은한 무광만 존재하는 무결점의 공간.
말로만 듣던 그의 결벽성과 완벽성을 체험한 첫 순간이었다. 그를 직접 보지 못했고, 그의 음식을 직접 먹어보지도 못했지만, 주방을 본 것 만으로도 그의 음식 철학을 알 수 있었다. 또 어떻게 지금 같은 위대한 셰프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 역시 모두 설명이 되는 듯 했다.

그렇다. 켈러 셰프의 완벽성은 주방에서부터 시작된다.

시그니처 디쉬인 달걀 요리
중앙 컴퓨터에서 온도를 관리하는 식자재별 냉장고, 극소량의 냉동실, 재료별 박스, 연두색 라벨링테이프, 토마스 켈러의 레스토랑임을 상징하는 파란 앞치마, 그리고 벽시계 밑에 쓰여져있는 ‘절대 시간엄수(Sense of urgency)’라는 문구. 주방의 모든 요소들은 식재료를 보존할 수 있는 최상의 시설과 그 재료를 다듬기 위한 최적의 공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하는 요리사에 대한 압박과 배려를 담고 있었다. 그 공간에 몸담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셰프의 철학을 따라가게 된다. 실제로 이 공간 안에서는 모든 일에 시간을 잰다. 모든 것을 자로 잰다. 마치 운동경기를 하듯 기록을 깨려는 요리사와 자를 대고 완벽하게 사이즈를 맞춰가며 재료를 다듬는 요리사의 앙상블이 여기서는 놀라운 게 아니라 당연한 모습이다.
켈러 셰프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레스토랑에서는 라벨링 테이프로는 무조건 연두색만 쓴다. 또 직원 앞치마는 파란색으로 통일한다. 그는 이런 일관된 완벽성의 추구가 직원들 간의 유대감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일관성의 정점은 아마 미국 동부 끝의 퍼 세이와 서부 끝의 더 프렌치 론드리를 연결해 실시간으로 서로의 주방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일일 것이다.

신선한 재료에 대한 집착

메추리 뱃속에 프아그라(거위 간)를 채운 요리
레스토랑에 매일 있다보면 항상 사용하는 식재료에 대해 무뎌질 때가 있다. 하지만 잠시 한발자국 뒤에서 바라보면 사용하는 재료 하나하나가 모두 최고라는 사실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단순히 신선한 상태라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레스토랑에서 원하는 사이즈로 원하는 수확시기에 오는 건 기본이다. 켈러가 원해 따로 정형 후 포장되어 오는 소고기, 그리고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변변한 포장도 없는 버터…. 더 프렌치 론드리와 퍼 세이로 오는 식재료 대부분은 그 분야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재료들이다. 특히 더 프렌치 론드리는 채소 대부분을 직접 농사지어 사용할 정도다. 최고의 재료를 향한 집착과 그 재료의 생산자에 대한 존경과 배려가 합쳐지면서 켈러의 레스토랑과 공급자간의 상호신뢰는 그 누구도 못 건드릴 정도로 탄탄하다. 퍼 세이에서 일하던 당시 켈러가 전 직원에게 어떤 재료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꾸준히 교육하는 것을 수시로 목격했다. 그런 교육의 결과인지 모든 요리사는 식재료를 아주 조심스레 다룬다. 채소 하나를 보관하거나 손질할 때 조금이라도 흠이 가지 않게 작업하려고 노력한다는 얘기다.

존중과 배려

이준(32) 현재 스와니예 오너 셰프. 2008년 경희대 조리과학과 졸업. 2010년 미 유명 요리학교 CIA( 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졸업 2009-2010년 퍼 세이 견습생
솔직히 퍼 세이에서 일 배울 당시 켈러가 주방에 머문 날은 많지 않았다. 그의 스케쥴이 워낙 바쁜 탓도 있었지만 뉴욕의 퍼 세이보다는 캘리포니아의 더 프렌치 론드리를 그가 주무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자주 오지는 않았지만 그가 올 때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스타지에 불과했던 나에게 조차 셰프라고 깎듯하게 불러준 것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이룬, 그리고 모두의 존경을 받는 전설적인 요리사가 말단 견습생에게까지 셰프라고 존중을 표하는 장면은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켈러가 같이 일하는 셰프를 존중하는 모습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주방에서 일할 때는 켈러 역시 똑같은 파란 앞치마를 둘러 ‘함께 일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줬다. 또 매년 연말이면 토마스 켈러 레스토랑 그룹의 전 직원에게 자신의 책 앞표지에 셰프들 각자의 이름을 맨 앞에 적은 본인의 친필사인을 해 선물했다.

나를 가장 감동시킨 건 견습생 생활 종료 후 식사 자리에서 받은 켈러의 친필 편지였다. 비록 그가 직접 전해주지는 않았지만 저 멀리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의 말단 견습생에게 보낸 따뜻한 격려와 감사의 편지를 보니 울컥 했다. 그가 말단 견습생에게 보여준 존중과 배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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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