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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스쿼시 강사, 의사, 배우 지망생 … 유튜브에 10인10색 북 '인기처녀'

북한 ‘인기처녀’ 영상물의 주인공들. 위부터 서현아(스쿼시 강사), 김은정(영어교수), 류정혜(교통경찰관), 배은이(배우 지망생), 김진아(에어로빅 강사), 문경심(수퍼마켓 판매원), 김경혜(유치원 선생님), 황경미(소아과 의사). [유튜브 캡처]
스쿼시 강사인 서현아(26)씨는 책임감이 강하고 개성 넘치는 스타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애인을 찾고 있지만 학생들은 대부분 자기보다 어리기 때문에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어떤 남자가 좋으냐고 묻자 입을 손으로 가리고 수줍은 듯 웃더니 이렇게 말한다. “축구하는 사람이 좋습네다.”

 서씨가 일하는 곳은 북한 평양의 금릉운동관. 조선체육대학에서 정구(테니스)를 전공했지만 북한 최초로 개장한 스쿼시장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애인이 생기면 함께 체육활동을 하는 게 꿈이다. 그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가 제작한 북한의 ‘인기처녀’ 동영상 시리즈 1호 주인공이다.

 서씨를 인터뷰한 3분 남짓 되는 영상은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유튜브 한국 사이트에 접속해 검색창에 ‘인기처녀’라고만 치면 된다. 0.1초 만에 관련 영상이 줄줄이 뜬다. 조선신보가 이런 식으로 촬영한 ‘인기처녀’ 동영상은 지난달 16일자로 10개에 이른다. 직업도 교통경찰·교수·의사·방직공·발명가 등 다양하다. 나이는 모두 20대로 ‘최고령’은 29세인 평양컴퓨터기술대학 영어 교수 김은정씨다.

 영상은 한국의 여느 예능 프로그램 못지않게 세련됐다. 한국과 미국 등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을 따로따로 인터뷰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왔다. 질문은 화면 좌측 혹은 우측에 세로 자막으로 처리했다. 질문을 던지는 제작진의 목소리도 간간이 들린다.

 각 회마다 조금씩 변화도 줬다. 교통보안원(경찰) 류정혜씨를 소개하는 영상에선 카메라가 먼저 평양 시내를 파노라마로 훑은 뒤 도로 한복판에서 교통정리 중인 류씨를 천천히 줌인한다. 평양연극영화대학 재학생인 배은이씨를 소개한 영상에선 그가 사회를 맡은 14회 평양국제영화축전 영상과 스틸컷으로 시작해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금릉운동관의 에어로빅 강사인 김진아씨를 소개하면서는 짐볼(공기를 채운 물렁물렁한 큰 공)로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과 율동을 하는 장면 등을 적절히 섞어 보는 사람이 지루하지 않도록 연출했다. 광복지구 수퍼마켓에서 일회용품을 판매하는 문경심 봉사원을 다루면서는 그가 손님들에게 빵을 판매하는 모습을 파파라치 식으로 촬영한다.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거나 물건을 채워넣거나 하는 모습을 카메라가 멀리에서 촬영하는 방식이다. 중간중간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를 삽입해 클로즈업 스틸컷까지 넣는 기교도 부린다.

 ‘인기처녀’를 소개한다는 콘셉트에 맞게 제작진은 다소 짓궂은 질문도 던진다. “애인이 있습니까”에서부터 “어떤 남성을 좋아합니까”라는 질문은 필수다. 답변은 “시원시원한 남자가 좋습네다”(문경심씨)부터 “남자가 남자다워야 좋아합네다”(김진아씨)까지 다양하다. 출연진은 수줍게 웃다가도 자신과 근무지를 홍보하기 위한 멘트를 잊지 않는다. “몸까기(다이어트의 북한말)를 위해서도 율동운동이 좋습네다”(김진아씨), “스쿼시가 정구보다 칼로리 소모가 두 배는 높습네다”(서현아씨) 등이 대표적이다.

 각 영상 간의 연관성을 위해 릴레이 형식을 취한 것도 눈에 띈다. 각 영상의 주인공이 다음 영상 출연자를 소개하는 방식이다.



 금릉운동관의 서씨가 동료 김씨를 소개하며 “인물이 곱고 인기가 대단히 많다”고 예고하고, 광복지구에서 근무하는 문씨는 다음 영상 주인공인 평양컴퓨터기술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김은정씨를 소개하며 “실력이 높고 학생들에게 신망이 좋다”고 치켜세우며 “한번 만나보시라”고 권한다.

 북한이 이처럼 개인을 앞세워 선전선동 영상을 만든 것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체제하의 새로운 변화다. 서강대 김영수(북한정치) 교수는 “북한도 집단주의만을 강요해서는 어려운 시대라는 점을 깨달았다”며 “김 위원장이 권력을 잡은 후 북한 선전 매체들이 개인의 특성을 부각하고 기존 방식인 책이 아닌 영상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이전엔 조선중앙TV에 지도부 외의 개인의 이름이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모란봉전자악단의 공연 중 솔로 무대가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 예술가의 이름은 명시되지 않았다.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기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정권을 잡은 후에 변화가 생겼다. 각 개인의 이름을 자막으로 처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 교수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이는 꽤 유의미한 변화”라며 “유학파인 김 위원장이 세련된 영상미를 중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북한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것이 ‘인기처녀’ 시리즈다. 지난 1일 현재 이 영상의 클릭 수는 많게는 5230회를 기록했다. 가장 저조한 성적도 클릭 수 3000을 넘겼다. 북한 조선신보가 올린 영상이 대개 500여 개의 클릭 수를 기록한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인기처녀’는 상당한 인기를 끈, 북한으로선 ‘대박’ 영상인 셈이다. ‘인기총각’ 시리즈는 없지만 ‘인기처녀’ 시리즈는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것으로 점쳐진다.

 당찬 여성들은 개성도 강하고 직업도 제각각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체제를 찬양하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과 그 일가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맹세한다는 점이다.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유치원의 김경혜 교사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를 두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아이들을 길러내고 싶어서”라고 말하고, 광복지구 문경심 판매원은 좋아하는 노래를 묻자 서슴지 않고 ‘장군님 생각’이라고 말한 뒤 가사까지 읊는다. 체제 선전을 위한 도구로 20대 여성들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영어 교수인 김은정씨가 등장하는 영상에서는 학생들이 미국 원어민에 가까운 수준의 능숙한 발음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모습이 10초 이상 계속되기도 한다. ‘인기처녀’ 시리즈를 영어 실력을 뽐내는 계기로도 활용한 셈이다.

 10회에 달하는 모든 영상이 평양에서만 촬영된 배경에도 체제 선전을 위한 의도가 숨어 있다. 영상은 평양 시내의 발전상만을 잡아낸다. 교통경찰의 뒤로는 검은색 고급 승용차들이 쌩쌩 지나가고, 옥류아동병원의 소아과 의사 황경미씨가 진찰을 하는 병실은 깨끗하고도 화려한 분홍색 커튼과 아이들을 위한 각종 장난감들이 배치돼 있다. 정밀하게 계산된 카메라 앵글과 기술이 평양의 체제를 선전하기 위한 의도를 드러낸다.

 북한 전문가인 조봉현 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철저히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영상”이라며 “김 위원장은 아버지 김정일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체제 선전을 꾀하고 있으며 그 핵심엔 북한의 핵심 인재군 중 하나로 꼽히는 정보기술(IT)과 영상 기술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공공기관 및 기업뿐 아니라 김 위원장 암살을 다룬 영화 ‘더 인터뷰’의 제작사 미국 소니엔터테인먼트를 해킹한 배후로 북한이 지목될 정도로 북한의 IT 기술은 수준급이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도 지난달 29일 국회 정보위에서 “북한에서 IT 인력은 고급인력으로 컴퓨터 관련 회사에 취업하면 중국·베트남·라오스 등 외국에서 근무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선호되는 직장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튜브 영상 제작을 통한 체제 선전은 북한의 21세기 신무기로 자리 잡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서강대 김 교수는 “시대 흐름에 맞추어 북한도 이미지를 창출하는 방식을 점점 진화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S BOX] ‘사랑받는 체육인’ 시리즈도 제작 … 한국서도 볼 수 있어

북한은 유튜브 같은 플랫폼을 유용한 선전 도구로 삼고 있다. ‘인기처녀’ 시리즈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비슷한 영상물 시리즈를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이 작업은 주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기관지인 조선신보가 담당한다. 일본의 인터넷 상황 등이 비교적 양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기처녀’의 일부 회차의 경우 1일 현재 조회 수가 5000회를 넘기면서 조선신보의 대표적인 히트작으로 자리매김했다. IBK경제연구소 조봉현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참신하고 젊은 리더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유튜브 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신보는 이외에도 ‘사랑받는 체육인’ 시리즈 등을 제작해 체제 선전에 나서고 있다. 이 시리즈엔 여자 체조에서부터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여자축구 등 다양한 종목을 다루고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스포츠 사랑이 작용했다고 북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은 마식령 스키장을 건설하고 올 들어 체육인 육성을 강조하는 등 체육 중시 정책을 펴 왔다.

 그러나 ‘사랑받는 체육인’ 시리즈의 클릭 수는 지난 2월에 업로드 된 4회분이 1일 현재 약 440회의 조회수만 기록했다. 조선신보는 일본의 북한 국적 학생들이 다니는 조선학교의 입학식 영상까지 올렸다. 하지만 체제 선전 의도가 쉽게 파악되는 이런 동영상은 351회의 상대적으로 낮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해당 영상들은 모두 한국 유튜브 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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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