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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삶의 향기' 연재를 마치며 떠오른 생각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
조금이라도 ‘공적(公的)’인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예컨대 신문 칼럼니스트는 ‘이런 멍청이가 다 있나’라는 반응을 접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나도 그런 비난을 받게 되면 상심했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졌다. 비판은 오히려 나를 격려하는 수단이 됐다.



 내게 항상 흥미로웠던 유형의 비판은 이런 식의 말로 요약된다. ‘영국이 한국보다 낫다는 얘기야?’ 한국에서 발생한 어떤 일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썼을 때, 내 의도는 늙은 제국주의 국가 영국의 입장에서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었다. 불행히도 그런 식의 인신공격은 절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지만 내 의도는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영국으로 돌아왔다. 영국뿐만 아니라 다른 서구의 나라들이 경험하고 있는 어떤 문제들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이 문제다. 많은 사람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론에 대한 제약을 불평한다. 영국 같은 나라는 언론 환경이 나을 것이라고 전제한다. 옛날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다.



 막강한 매체들은 노골적으로 정당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 어느 정당이 매체를 덜 규제할 것인지, 어느 정당이 이겨야 탈세 목적으로 국외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세금을 강제로 거둬들일 것인지가 관심사다(오는 7일 선거를 앞두고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셀레브리티 기사 중심의 저질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이 판치고 있다.



 한국인 친구와 나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런던에 독립 저널리즘 벤처를 만들고 있다. 돈키호테적인 희망으로 뭔가 다른 매체를 선보이기 위해서다. 본부는 영국에 있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100% 한국인들이 수행하고 있다. 나는 보통 한국식 교육보다 영국식 교육을 선호하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한국이 한 수 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은 비판적 사고나 창의성으로 넘치는 나라이긴 하지만, 놀라운 웹사이트를 엄청난 속도로 만들 수 있는 인력은 한국보다 숫자가 적다.



 다시 내 글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라는 주제로 돌아가겠다. ‘우리 한국인들은 왜 서양 사람들이 하는 말에 경청하는 걸까’라는 질문과 연관된 문제다. 물론 나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를 지나칠 수 없었다. 내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옳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한국에는 서양의 언론인·기업인이나 소위 전문가들이 하는 말들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지나친 판단이다.



 최근 예비군 훈련을 다녀온 친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내 책을 인용해 한국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나라’인지 교육했다는 것이다. ‘외국인들’도 한국을 칭찬하니 한국은 훌륭한 나라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한국이 훌륭한 이유는 한국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한국이 훌륭하다고 말해서가 아니다. 예비군 훈련장의 교육 담당은 내 책 제목의 의미를 왜곡했다. 내 책의 제목은 『기적 이룬 나라』가 아니라 『기적 이룬 나라, 기쁨 잃은 나라』다.



 서구인은, 특히 백인은, 한국에서 그가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명해지는 게 가능하다. 한국말로 몇 마디를 할 수 있는 능력 외에 특별한 능력도 필요 없다.



 내 글에 대한 분에 넘치는 신뢰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흥미롭고 틀에 박히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 항상 노력했다. 기대에 부응했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그런 시도를 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것처럼 나는 최근 런던에 정착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대한 감각이 점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한국 문화, 한국말,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나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 그래서 한국 현안들에 대한 논의에 내가 참가해 뭔가 가치 있는 것을 첨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지난해 나는 한국 정치에 대한 책을 탈고했다. 원고를 읽어보니 ‘지금은 이렇게 쓸 능력이 내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오늘 이 칼럼은 일종의 사직서다. 내게 주어졌던 지면을 메울 자격이 생길 때까지 받아줬으면 하는 휴직계이기도 하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원더풀한 여름을 보내세요. 우리가 다시 만나길 희망합니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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