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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풍문으로 들었소

양성희
논설위원
누군가 2010년 이후 가장 중요한 작가를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이들의 이름을 댈 것이다. TV 드라마는 물론이고 영화, 심지어 문학까지를 아울러서도 이들만 한 문제의식과 성취가 잘 떠오르지 않아서다. JTBC 드라마 ‘아내의 자격’(2012)과 ‘밀회’(2014), 방송 중인 ‘풍문으로 들었소’(SBS)까지 ‘갑을 3부작’으로 주목받은 정성주 작가·안판석 PD 콤비 얘기다. 이른바 ‘갑’들의 허위의식, 물고 물리는 권력관계, 돈과 욕망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신랄한 세태 풍자와 인간 탐구에 더해 유려한 연출, 앙상블 연기 등 스타일의 품격으로도 화제다. 무엇보다 ‘갑을관계’라면 최근 우리 사회의 핫 이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응축해 보여주는 주제이기도 하다.

 ‘아내의 자격’은 사교육을 위해 강남에 입성한 중산층 부부의 얘기였다. 486 출신 방송 기자인 남편은 “세상엔 갑 아니면 을이다. 내 아들만큼은 갑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바로 이 마음, 내 자식만은 갑이 되길 바라는, 누구도 쉽게 부정하기 힘든 부모의 마음이 결국 ‘갑을’ 시스템을 유지하는 동력임을 보여줬다.

 ‘밀회’에서는 갑의 내부를 더 깊이 파고들었다. 재벌가 예술재단의 충직한 ‘금고지기’로 일해온 40대 여성이 새로운 사랑을 통해 삶을 돌아보게 되는 얘기다. 여자는 갑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부도덕을 수습하면서 스스로 갑의 일부라 착각했지만 알고 보면 갑의 부스러기, ‘고급 노비’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서민 가정의 딸이 10대 출산으로 명문가의 며느리가 되면서 생겨나는 소동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갑은 악, 을은 선이라는 선악 구도에서 벗어나 갑의 허위의식뿐 아니라 을의 욕망도 신랄하게 풍자했다. 까다로운 ‘의전’으로 권위를 유지하는 갑의 행태만큼 쉽게 권력에 도취되는 을의 모습이 실소를 자아낸다.

 이 드라마에서는 ‘갑의 변화’에 주목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갑을관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재벌 3세 격인 극 중 아들은 아버지의 부도덕을 알고 어린 아내와 함께 맞선다. 과연 3세대 갑의 자아비판이 진정한 갑의 변화를 이끌어낼지, 아니면 한때의 치기에 그칠지는 아직 미지수다. ‘땅콩 회항’으로 상징되는 현실 속 재벌 3세 ‘갑질’의 기억이 강렬한 가운데 드라마의 결론이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드라마의 제목처럼 들려오는 풍문으로라도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갑의 탄생이 가능할지.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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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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