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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고립 자초하는 외교전략을 언제까지 고집하려는가

2일 마무리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방미에 힘입어 미국과 일본이 ‘신밀월 관계’로 접어들었다. 아베 정권의 과거사 부정으로 대화를 거부해온 중국마저 최근 양국 정상회담에 나서는 등 화해를 도모 중이다. 세계의 중심축과 동아시아 질서의 큰 틀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주목할 대목은 한국 외교가 자칫 주변국들로부터 따돌림 당할 처지에 놓였다는 거다. 그런데도 위기를 절감해야 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일 외교·안보 당정협의회에서 “한 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변했다. “한·미·일 3각 관계를 중시하는 미국의 국가안보 전략 등을 볼 때 고립은 과도한 해석”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야말로 현 상황을 아전인수식으로 보는 과도한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정책위 의장이 주재할 당정협의회를 여당 원내대표가 나서서 챙겼겠는가.

 아베 총리의 방미를 앞두고 미국이 일본 편들기를 할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 쏟아졌었다. 지난달 초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이 “정치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건 어렵지 않은 일로, 이런 도발은 발전 아닌 마비를 초래한다”고 발언했다. 누가 봐도 위안부 문제를 우선시하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 무렵 “미래 이익이 과거의 긴장과 현재의 정치보다 중요하다”는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의 이야기도 나왔다.

 물론 한·미, 미·일 간 관계가 제로섬 게임은 아니다. 외교부 주장대로 미·일 동맹 강화가 곧바로 한·미 동맹 약화를 의미하진 않는다. 탄탄한 미·일 간 안보협력 강화가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튼튼한 방패막이가 될 거라는 주장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우려되는 건 미·일 간 밀착을 이용해 아베 정권이 과거사,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한 충분한 사과와 보상을 건너뛴 채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는 사실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현 외교라인은 판세를 잘못 읽어 그릇된 전략을 구사했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미국으로서는 한·미·일 삼각동맹이 절실하다. 한·일 간 불협화음은 미국으로서는 여간 불편한게 아니어서 어떻게든 양국 간 화해를 원하는 게 사실이다. 박근혜 외교라인은 이를 지렛대 삼아 한·일의 불화 원인이 아베 정권의 과거사 왜곡인 만큼 미국이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외교 당국은 특히 아베 총리의 미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한국 측 입장이 반영되도록 외교력을 쏟았다. 지난달 초 낸시 펠로시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 등 의원 대표단이 방한했을 때에는 윤 장관이 직접 아베 총리가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아베 총리는 하버드대 강연과 합동연설 등 때마다 교묘한 표현으로 사과 압박을 피해나갔다. 심지어 미·일 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양국 관계가 굳건한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전환하기까지는 과거의 경험이 미래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믿음 속에서 일했기 때문”이라는 표현까지 들어갔다. 이처럼 오바마 정권이 일본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가 된 건 미국 내에 쌓인 ‘한국 피로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동안 한·일 간에 마찰이 생기면 워싱턴으로 달려가 일본을 압박해 주도록 요청하는 게 우리 대일 외교 전략의 큰 줄기였다. 따라서 이대로라면 8월 15일 발표될 종전 70주년 담화(일명 아베 담화)에서도 진심 어린 사과를 기대하긴 무리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우선 해결’ 원칙을 고수해 왔다. 이 탓에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정상회담은커녕 양국 정부 간의 의미 있는 협력조차 거의 없었던 게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대일 불통외교가 빚어졌다는 것은 현 정부가 마주해야 할 불편한 진실이다.

 고립을 자초할 수 있는, 다분히 민족주의에 편승한 외교정책은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지금은 날카로운 감각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한 현실주의 외교가 절실하다. 과거사 정립이란 명분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서 외교적 실리마저 죄다 놓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일부에선 남북 관계에서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룸으로써 외교적 활로를 찾자는 주장이 나온다. 다른 쪽에선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우리가 주도함으로써 잃었던 존재감을 되찾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이들의 공통분모에는 외교라인의 인적쇄신을 포함해 대대적인 외교 전략의 재검토가 절실한 시점이라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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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