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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 피플[89] 트래비스 캘러닉 우버 창업자 겸 CEO - 혁신적 공유경제의 상징으로 부상

[이코노미스트] 모바일앱 이용한 우버 서비스 개발해 억만장자 대열에 ... 세계적 불법 논란도
트래비스 캘러닉 우버 창업자 겸 CEO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매년 3월이면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억만장자 명단을 발표한다. 그러면서 그 해이 명단에 새롭게 들어간 인물을 별도로 정리한다. 신규 진입자는 대중과 산업계의 뜨거운 관심 대상이다. 신규 진입자를 살펴보면 단순히 재산이 늘어난 개인만이 아니라 요즘 성장하고 있는 유망 사업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신규 진입자 중 재산 1위는 미국인 트래비스 캘러닉(39)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벤처 사업가인 캘러닉은 재산 53억 달러로 290위에 올랐다. 캘러닉은 교통네트워크 기업인 ‘우버(Uber)’의 창업자이자 CEO다. 그는 혁신과 논란을 동시에 일으키는 ‘악동 비즈니스맨’으로 이름이 높다. 자신이 고안한 우버 서비스와 이를 운영하는 기업인 우버가 진출하는 도시마다 격렬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캐나다 출신 동료 벤처사업가 가레트 캠프와 함께 우버를 창업한 캘러닉은 같은 이름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출시했다. 창업 당시의 이름은 우버캡(UberCab)이다. 우버 택시라는 뜻이다. 하지만 택시라는 단어가 논란을 불러 일으키자 이를 제외했다. 우버는 자동차 운전자와 이를 이용하고 싶은 사람을 연결해주는 혁신적인 모바일 앱이다. 자동차 함께 타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끼리 연결해주는 의미를 넘어선다. 이 앱은 ‘공유경제(Sharing Economy)’라는 신개념을 모바일 앱을 활용해 실제 사회에 적용했다는 데서 사회적으로 의미가 크다.

혁신과 논란의 중심에 선 ‘악동 비즈니스맨’

우버 앱으로 쉽게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공유경제는 한번 생산된 제품을 여러 사람이 공유해서 나눠 쓰는 ‘협력소비’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 방식을 가리킨다. 상품을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빌려 쓰고 빌려 주는 개념으로 인식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다. 자신이 쓰지 않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는 ‘공유소비’의 개념이다. 2008년 로런스 레식 미국 하버드대 법학대학원 교수가 처음 제안한 개념이다. 공유 경제는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최대의 특징으로 하는 20세기 자본주의 경제에 대비해서 생긴 것이다. 물품은 물론, 생산설비나 서비스 등을 개인이 반드시 소유할 필요 없이 필요한 만큼 서로 빌려 쓰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경기 침체와 환경오염에 대한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는 사회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자동차를 나눠 쓰는 개념인 우버는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공유경제는 과도한 자원 사용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협받는 지금 시대에 적합한 경제 형태로 논의되고 있다. 우버는 바로 공유경제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캘러닉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우버는 미국 전역으로 급속히 퍼져 나갔다. 이 서비스가 공식 서비스에 들어간 것은 2010년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다. 바로 그 해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 그리도 윈도우폰을 위한 모바일 앱을 출시했다. 시작부터 모바일 앱과 함께했다. 이 서비스는 삽시간에 미국 전역에 퍼져 100개 도시에서 영업에 들어갔다. 우버 앱이 편리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서다. 스마트폰 앱 하나로 지금 당장 이용 가능한 우버택시를 검색하는 것은 물론 요금결제까지 한꺼번에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이용 가능한 차를 찾고 곧바로 예약하기 때문에 승차거부를 당할 염려가 전혀 없다. 수많은 대도시의 러시아워에 승차거부를 당해본 사람들은 우버 앱의 서비스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앱을 이용하면 차를 기다릴 필요도 거의 없다. 우버는 ‘터치한 지 5분 안에 도착한다’는 서비스 원칙을 정해뒀는데 대부분의 경우 이 원칙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기민한 IT 네트워크 덕분이다. 승객은 우버에 등록된 운전자의 정보를 미리 확인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를 수도 있다. 그야말로 이용자 중심의 시장이요, 네트워크인 셈이다. 제공되는 차량도 일반 택시보다 훨씬 고급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우버 앱 이용자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우버는 이 과정에서 이용 수수료를 받는다.

우버 서비스에 대해 기존 택시사업자는 택시업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동이라며 항의했다. 택시기사 면허시험과 택시사업 허가제도가 있는 지역에서는 우버가 불법 택시영업을 하는 것이나 진배없다고 지적했다. 택시 면허도 없는 사람이 택시를 모는 것은 승객의 위험을 자처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세금도 내지 않는 것이라며 불법과 탈세의 합작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에 따라 우버에 대해 영업정지 명령을 내린 지역 행정 당국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소송으로 맞선 캘러닉은 상당수 경우에서 승소하고 영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우버는 자동차를 공유해서 쓰도록 연결해주는 것이지 택시영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이 만나 자동차를 공유하는 것을 중계하고 이에 따른 수수료를 받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우버를 통해 서로 중계된 자동차 이용자와 운행자가 서비스 이용료를 서로 주고 받는 것은 개인간의 거래이지 우버 회사와는 관계가 없다는 설명이 법정에서 먹힌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실정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영업이 금지되고 있다. 우버는 2014년 10월 한국에 들어왔다. 서울에서 첫 서비스에 들어갔다. 우버는 서비스가 정착될 때까지 기사들에게 2000원의 유류 보조금을 지원하고 승객들에게는 콜 수수료를 면제하는 등의 서비스로 관심을 모았다. 서울 지역에서 리무진 차량을 중계하는 ‘우버블랙’ 서비스와 주변 사람과 차량을 공유하는 ‘우버엑스’ 서비스를 내놓고 공세적인 영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금세 실정법 위반 논란에 휘말리며 사업에 차질을 빚었다. 국토교통부는 우버의 서비스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이라고 규정했다. 서울시는 우버 운전자를 단속해 벌금을 물렸다. 심지어 2015년 1월 2일부터 서울 시내에서 우버택시가 영업하는 것을 신고하면 최고 1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방송통신위원회에 우버 앱을 차단해달라는 요청까지 했다. 방통위는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며 판단을 보류하고 있다. 서울시가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법령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우버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상 ‘유상운송 금지’ 조항을 위반하기 때문에 이에 반대한다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운전기사 신분이 불확실해 이용자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교통사고 때 보험 보장이 불확실하다는 점도 문제라고 본다.

국토교통부·서울시 ‘우버 서비스는 실정법 위반’

이렇듯 우버는 전 세계에서 ‘모바일 IT를 적극 활용한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칭찬과 ‘불법 행위를 조장하는 앱 사업자’라는 비난을 함께 받고 있다. 사실상 그 사이에서 아직 정확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기존 택시사업자와 행정당국의 생각과 시장의 판단은 사뭇 다르다. 우버는 지금 182억 달러의 가치를 평가 받았기 때문이다. 2010년 8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첫 영업에 들어간 이후 불과 5년 만에 전 세계 45개국 218개 도시에서 운행 중이다.

캘러닉은 경제잡지 포춘에서 선정한 ‘40세 이하 젊은 비즈니스 리더’에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 등과 함께 유망 경영인으로 등장했다. 200억 달러에 가까운 투자도 유치했다. 기존의 유명 렌터카 회사보다 더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시장에서는 우버를 미래형 유망산업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주목할 점은 캘러닉이 유대계 벤처사업가라는 점이다. 그의 아버지는 슬라브계 엔지니어이고 어머니는 유대인이다. 유대인은 정체성을 모계로 구분하기 때문에 어머니가 유대인인 그는 유대인으로 분류된다. 어머니의 이름은 보니 르네 호위츠다. 호위츠는 동유럽계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성이다.

1976년 생인 캘러닉은 캘리포니아 토박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컴퓨터공학과 비즈니스 경제학을 공부했다. 나이를 보면 아직 세상 물정을 아직 잘 모르는 철없는 젊은 기업인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의 이력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역전의 기업인이다. 그는 1997년 같은 과 급우들이 창업한 멀티미디어 서치엔진 업체 스카워에 합류했다. 스카워 익스체인지라는 이름의 P2P 동영상 공유 업체를 함께 운영하면서 사업은 순풍에 돛을 단 듯했다. 인터넷을 통해 서로의 영화·음악 파일을 공유하는 일은 젊은이들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 벤처에서 일을 하기 위해 그는 학교를 중퇴했다. 이 때부터 그는 공유경제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2000년 재앙이 닥쳤다. 미국영화협회, 미국 레코딩협회(RIAA), 전국음악출판인협회(NMPA)가 손을 잡고 스카워를 저작권 침해라고 소송을 건 것이다. 소송가액은 25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소송에서 지면 거리로 내몰릴 판이었다. 스카워는 이 소송을 피하기 위해 자진 파산을 선택했다. 엄청난 아이디어와 기술을 갖춘 비즈니스가 대형 기업과 협회의 소송전 앞에 주저앉은 셈이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는 실패하면 다시는 사업을 할 수 없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풍토다. 실패를 경험이라는 자산으로 인정하고 패자부활의 기회를 주는 것이 실리콘밸리 방식이다.

잠시 공백기를 가진 캘러닉은 스카워의 검색엔진팀과 손을 잡고 레드 스워시라는 이름의 또 다른 P2P 동영상 파일공유 업체를 세웠다. 재도전이었다. 레드 스워시는 음악이나 비디오 파일을 포함한 대용량 파일을 손쉽게 이용자끼리 서로 교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비즈니스 모델을 키웠다. 이번에는 법률적인 검토를 철저히 거쳐 합법성을 확보했다. 캘러닉은 2007년 이 회사를 네트워크 컴퓨팅 기업 아카마이 테크놀러지스에 1900만 달러를 받고 팔았다. 이 거래를 통해 백만장자가 됐다. 그 뒤 아카마이에서 약 1년간 P2P 서비스 담당자로 일했다.

동영상 공유 업체 운영 경험

그 뒤 2009년 마침내 우버를 창업했다. 그 즈음 우디 앨런(80)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은 2008년 로맨틱 코미디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보면서 “저런 노인도 여전히 아름다운 예술을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새로운 사업에 나설 힘을 얻었다고 한다. 우버 창업 동업자인 개릿 캠프도 이미 벤처 창업으로 상당한 재산을 손에 쥔 인물이었다. 캠프는 캐나다 캘거리대 대학원에 다니던 2001년 동료들과 함께 스텀블어폰이라는 업체를 창업했다. 웹사이트를 찾아 추천해주는 디스커버리 엔진으로 소셜 네트워킹 기법을 이용해 사용자의 입맛에 맞는 웹 페이지나 사진, 동영상을 찾아주는 서비스를 하는 기업이다. 이 회사는 2007년 이베이에 7500만 달러에 팔렸고 캠프는 거액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2009년 우버가 순항하자 이 회사를 다시 사들였다. 두 사람 모두 벤처를 통해 상당한 돈을 벌었다고 사업을 그만두지 않고 오히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에 뛰어드는 신세대 벤처인의 모습이다.

캘러닉은 집요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비슷한 사업모델을 지닌 리프트라는 업체가 등장하자 손님으로 가장해 이 회사가 중계한 자동차를 탄 뒤 리프트의 운전자를 우버로 스카웃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런 캘러닉이 우버를 통해 공유경제라는 개념을 21세기 지구촌에 널리 퍼뜨릴지, 아니면 수많은 택시기사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반사회적인 기업인으로 평가받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느 쪽이든 그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공유경제의 미래가 그의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글=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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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