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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모은 재산을 날린 한인들, 흑인 폭동에 한숨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폭동 사태가 벌어진 볼티모어 시내다. 28일 아침 밤새 한바탕 커다란 전쟁이 벌어진 것처럼 불에 탄 자동차, 유리창이 깨진 상점 등 격렬한 폭동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메릴랜드 식품주류협회(회장 송기봉)는 27일 폭동으로 지금까지 피해를 본 한인 업소들이 22곳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22곳은 무차별 약탈로 대부분 폐허처럼 변했다. 특히 이 중 노스 애비뉴 선상의 김진석, 최한복 씨 가게는 방화로 불에 탔다. 게이 스트리트 선상의 노백 그로서리도 불탔다. 피해사례 접수가 본격화되면 약탈된 한인업체의 수는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오전 10시를 조금 넘어 폭동의 진원지에서 남쪽으로 8㎞ 거리에 있는 루트 40 인근 웨스트 랜밸 스트리트. 주택가 뒤편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 잡은 박영민 씨의 주류 판매점이다. 문앞에 깨진 유리들이 널브러져 있다. 차를 세워 문을 열고 내리려는 순간 커다란 가방을 둘러멘 흑인 남성이 불쑥 가게에서 나온다. 깜짝 놀라 다시 차량 안에 주저앉았다.



박 씨에게 전화를 거니 “나도 폭도들 때문에 가게에 가지 못했다. 경찰력이 아직 미치지 못하니 빨리 자리를 피하라”는 긴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위가 어느 정도 잦아졌다고는 하지만 외곽 지역은 아침까지도 약탈의 여진이 남아 있다.



박 씨는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목숨이 날아가는 것 같다. 아메리칸 드림의 생활 터전인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차를 돌려 북쪽으로 폭동의 중심지인 노스 애비뉴 선상으로 올라갔다. 일부 도로는 여전히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노스 애비뉴와 펜실베이니아 애비뉴가 만나는 부근 원더 랜드 주류 판매점을 찾았다. 가장 격렬하게 폭동이 있었던 지역이다. 20년째 한 자리에서 주류 판매점을 운영하는 윤석원 씨 가게가 이곳에 있다. 가게 앞에는 이미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봉투에 쌓여 있다.



지역 주민들과 자원봉사자 들이 아침 일찍부터 폭동의 흔적을 지워내고 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텅 빈 진열대, 텅 빈 창고가 눈에 들어온다. 밤새 모두 털렸다. 금액으로만 10만 달러(약 1억1000만원)가 넘는다. 윤 씨는 “이곳에서만 20년이고 볼티모어에서 34년 장사하는데 이런 날은 처음”이라며 “아침 6시에 나와보니 난장판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윤씨는 그러나 폭동이 일어난 27일 밤은 한 달에 두 번 쉬는 날 중의 하나였다며 마음은 아프지만 그나마 인명 피해가 없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폭동이 시작된 몬다민 몰에서 조금 떨어진 킴스 주류 판매점. 작장 생활을 그만두고 2년 전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장만한 이한엽 씨의 가게다. 가게 내부는 처참할 정도다.



자물쇠를 절단하고 들어간 시위대는 방탄 유리창을 뜯어내고, 이어 ATM기로 계산대 앞 방탄유리를 깬 뒤 조그마한 통로를 통해 안으로 진입했다. 폭도들은 CCTV 회로 등을 절단하고 약탈을 시작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집에서 매장 내부를 보는 줄은 몰랐다. 이씨는 내 삶의 전부가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참을 수가 없어 밤 11시에 차를 몰고 군중 속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시위대를 말리고 집으로 돌아간 그는 야간통행금지에도 불구하고 새벽 4시까지 이어지는 약탈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다.



시위대는 어린아이까지 가족 단위로 들락거리며 물건을 실어 날랐다.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담당 경찰도 한숨만 쉬며 출동할 상황이 못 된다고 답변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결국 다시 한 번 차를 몬 그는 새벽 4시 30분 가게를 또 들렀다. 하지만 이미 다 털린 상태였다. “2년 동안 도둑은 두 번 들었지만 이런 약탈은 생각지도 못했다. 전쟁터 같은데 전쟁보다도 못한 상황을 보면서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고 허탈해했다.



볼티모어=허태준 워싱턴중앙일보 기자 heo.taej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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