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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에 1억원 … 빈민가 두 태양 링에 뜨는 값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左), 매니 파퀴아오(右)
세기의 대결이다. 당대 최고의 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와 매니 파퀴아오(37·필리핀)가 드디어 맞붙는다.



대전료 2700억원, 메이웨더 vs 파퀴아오 5월 3일 낮 12시 라스베이거스서 격돌

 둘은 다음달 3일 낮 12시(한국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아레나에서 한판 대결을 벌인다. 세계복싱평의회(WBC)·세계복싱협회(WBA)·국제복싱기구(WBO) 웰터급(66.68㎏) 통합 타이틀전이다.



 세계가 기다려 온 복싱 영웅의 대결은 6년을 끌어오다 마침내 성사됐다. 복싱의 흥행 기록을 죄다 갈아치울 판이다.



 메이웨더와 파퀴아오는 살아온 인생부터 복싱 스타일까지 정반대에 가깝다. 메이웨더는 돈다발을 뿌리며 자신을 뽐낸다. 오죽하면 별명이 ‘머니(money)’일까. 최근엔 “무함마드 알리나 슈거레이 로빈슨보다 내가 더 뛰어나다”는 자랑을 늘어놨다. 파퀴아오는 서민들의 영웅이다. 내전 중인 필리핀 정부군과 반군도 파퀴아오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전투를 하지 않는다. 두 선수 모두 복싱으로 가난을 이겨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현재 모습은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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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악동이 된 메이웨더=그는 복서가 될 운명을 타고났다. 아버지 메이웨더 시니어(63)는 35전28승1무6패를 기록한 일류 복서였다. 현재 트레이너를 맡고 있는 삼촌 로저(54)는 WBA 수퍼페더급과 WBC 라이트웰터급 챔피언을 지냈다. 막내삼촌 제프(51)도 마이너 기구인 국제권투기구(IBO) 수퍼페더급 챔프 출신이다.







 메이웨더의 성장환경은 몹시 불우했다. 단칸방에서 살았고, 어머니는 마약 중독자였다. 집에서 총을 쏠 정도로 가정 불화도 심했다. 16세 때는 아버지가 코카인을 거래하다 구속돼 홀로 남겨졌다. 그러나 메이웨더에겐 헌신적인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복싱을 그만두려던 메이웨더를 설득해 운동을 계속하게 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뒤 프로로 전향한 메이웨더는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수비 위주의 복싱 스타일 탓에 인기는 높지 않았다. 그가 스타로 떠오른 건 2007년 오스카 델라 호야(42)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뒤다. 멕시코계 미국인 호야는 신사적인 이미지와 수려한 외모로 백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메이웨더는 의도적으로 호야의 대척점에 서며 ‘스토리’를 만들었다. 뛰어난 입담으로 상대를 도발하는 등 악역을 맡았다. 많은 팬들이 메이웨더의 패배를 기대하며 경기를 지켜봤다. 그러나 메이웨더는 한 수 위의 실력으로 호야에 판정승을 거뒀다.



 아직도 메이웨더는 ‘얄미운 졸부 흑인’ 캐릭터를 갖고 있다.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비싼 자동차나 시계 등을 자랑하면서 허세를 부린다. 때로는 직설적인 말로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모은다. 그러나 복싱에 있어서는 철저하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경기가 다가오면 새벽 훈련까지 한다. “나만큼 열심히 해 봤느냐”며 자신의 부를 당당하게 드러낸다.



 ◆신부(神父)가 되려 했던 파퀴아오=파퀴아오의 유년기는 메이웨더보다 더 암울했다. 빈민가 출신인 파퀴아오는 13세까지 길거리에서 빵을 팔았다. 파퀴아오는 자서전에서 ‘도넛을 5센트에 사서 10센트에 팔았다. 도넛을 먹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어릴 때부터 절제를 배웠다’고 밝혔다. 가톨릭 교도가 85%가 넘는 필리핀에서 태어난 파퀴아오는 신앙심 깊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신부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집에서 학비를 댈 수 없어 복싱선수의 꿈을 키웠다.



 소년 파퀴아오는 늘 조용했다. 그러나 정의감이 있고 싸움실력이 뛰어나 동생을 괴롭히는 녀석들을 가만 두지 않았다. 1990년 마이크 타이슨과 제임스 더글러스의 경기를 본 파퀴아오는 프로 복서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14세 때 집을 떠난 파퀴아오는 길거리 복싱을 시작했다. 당시 받은 대전료는 1달러였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파퀴아오는 프로에 데뷔해 마구잡이 주먹을 휘둘렀다. 그의 야성은 명코치 프레디 로치를 만난 뒤 길들여졌다. 왼손잡이 특유의 까다로운 스타일인 파퀴아오는 지옥훈련을 통해 속사포 펀치를 장착했다. 호야와 리키 해튼 등 최정상급 선수들을 차례로 쓰러뜨린 파퀴아오는 세계 최초로 8체급을 석권하면서 2009년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파퀴아오는 2010년 필리핀 하원 의원이 됐다. 음반을 냈고, 프로 농구단을 운영하며 농구 이벤트 대회에도 출전했다. 파퀴아오는 지난 2013년 필리핀을 덮친 태풍 하이옌의 피해자들을 위해 대전료 191억원을 모두 기부했다. 이번 대결에서도 나눔은 이어진다. 메이웨더와 파퀴아오는 체중을 재는 계체 이벤트에 입장료 10달러를 받기로 했다. 이미 1만 명 이상이 입장권을 구매했는데 수익금은 두 선수가 후원하는 의료 재단에 전달한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영상 유튜브 gorillaproductions03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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