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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김영희 묻고 콜린 파월 답하다

삼극위원회에 참석한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오른쪽)이 김영희 대기자와 마주 앉아 가난 속에서 자란 개인사와 합참의장으로 걸프 전쟁의 영웅이 된 사연, 국무장관으로 대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는 실망뿐이었다는 솔직한 설명을 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콜린 파월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의 산증인이다. 뉴욕의 흑인 빈민촌 할렘에서 나고 자란 그는 군의 최고위직인 합참의장과 외교의 수장인 국무장관을 지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의 출세 배경은 많은 사람의 관심거리다. 지난 25일 서울에서 열린 삼극위원회(Trilateral Commission)에 참석하러 온 그를 만나 그의 개인사와 동북아와 북한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AIIB는 좋은 구상인데 미국이 성급하게 비난했다


김영희=장군께서는 자서전 『나의 미국여행(My American Journey)』에서 “나는 후회가 없다”고 말하고, 그래도 도전의 시간도 있었다고 쓰셨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를 통해서 가장 좋았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파월=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고민합니다. 어느 한순간을 꼽으면 다른 좋았던 순간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요(웃음). ‘가장 힘든 순간’은 임관 후 베트남전쟁에 참전했을 때였어요. 총알이 머리 위를 날아가고 눈앞에서 부하들이 죽어가는 걸 목격했습니다.

 김=많은 사람이 파월 장군을 롤모델로 우러러봅니다.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장군의 롤모델은 누구일까 궁금해합니다.

 파월=내 인생의 롤모델은 아주 많아 한두 명만 꼽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한 명을 꼽으라면 내 부모님입니다. 나는 어린 시절 가난하게 자랐어요. 부모님은 돈을 많이 벌지 못했고, 내 주위 이웃들도 가난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은 ‘넌 잘 살아야 한다’며 나를 격려했어요.

 김=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켰네요.

 파월=예. 나는 가난한 가족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학교에 들어간 뒤 똑똑해지고 직업을 가질 수 있었어요. 나는 여러 가지 직업을 거치면서 지위가 높은 사람, 지위가 낮은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났어요. 그리고 그중에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상사도 많았지만 난 그들 모두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닮으면 안 되는 롤모델(negative role model)’을 반면교사 삼아 많이 배웠어요. 나는 내 직업이 좋든 싫든, 상사가 마음에 들든 안 들든 항상 최선을 다하는 걸 배웠어요.

 김=장군의 성공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파월=‘개처럼’ 열심히 일한 겁니다. 항상 내 일과 자리에 준비된 상태로 임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언제나 상사에게 완벽한 충성심을 보이고 부하들에겐 항상 그들이 하는 일에 고마워하고 그들을 믿는다는 걸 인지시켰습니다. 내가 리더십에 대한 강의를 할 때마다 하는 말은 ‘리더는 사심이 없어야(selfless) 한다’는 겁니다. 절대로 이기적이어서는 안 되고, 내가 아니라 조직이 잘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해요. 나는 성공에 대해 생각하면서 매일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려면 자기 자신부터 만족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누군가는 그런 당신을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나에게 좋은 과제가 맡겨진 것, 좋은 상사를 만난 것, 내가 열심히 한 것이 성공의 동력이었습니다.

 김=그러자니 항상 긴장된 생활이었겠습니다.

 파월=군인인 만큼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었지요.

 김=이젠 좀 딱딱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최근 미국의 고위 관리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격려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아베의 역사수정주의 폭주를 장려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미국은 한국인들의 과거사에 대한 민감성(sensitivity)에 둔감한 것 아닙니까?

 파월=나는 과거사가 얼마나 민감한 건지 잘 압니다. 특히 위안부 문제가 그래요. 그러나 나는 아베 총리가 일본에서 어떤 말을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도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가 미국 의회 연설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 우선 지켜봅시다.

 김=미국에 ‘한국 피로감’(Korea Fatigue) 같은 게 있는 건 아닙니까?

 파월=‘한국 피로감’은 없다고 생각해요. “이 정도면 됐어. 우리는 더 이상 한국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할 미국 정치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김=미국과 일본은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해 미·일 군사동맹을 강화·격상합니다. 중국 견제를 위한 것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미국이 일본에 안보 역할을 지나치게 아웃소싱 하는 것 아닙니까?

 파월=좀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은 그간 자위권 행사를 막는 헌법과 국민적인 감정 등을 이유로 대외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을 꺼려왔지만 아베 총리가 가려는 방향이 ‘일본의 방어를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는 맞는 방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강력한 병력까지 갖추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맡겠다는데 안 될 이유가 있겠습니까. 우린 일본에 아웃소싱 하는 게 없습니다. 안보 파트너로 함께 가자는 것뿐입니다.

 김=한·일 관계는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체제의 중요한 고리지만 위안부를 포함한 과거사에 발이 묶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타협(Modus vivendi) 하도록 미국이 작용할 여지는 없습니까?

 파월=그건 한국과 일본이 해결할 문제입니다.

 김= 그래도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관계개선을 압박할 정도의 영향력이 있지 않습니까?

 파월=그건 미묘하고도 민감한 외교적 문제라 미국이 나설 수가 없어요. 그건 부부싸움에 개입하는 것과 비슷해요. 남편 편을 들면 아내가 화를 내고, 아내 편을 들면 남편이 화를 냅니다. 중간에 서는 게 쉽지 않아요. 물론 가끔 중간 입장에서 도움을 줄 순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두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김=북·미 관계가 오랜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오바마 정부가 핵을 포함한 북한 문제에 흥미를 잃은 겁니까?

 파월=오바마 정부가 북한 문제에 흥미를 잃은 건 아니라고 봅니다. 북한의 ‘어린 지도자’를 이성적으로 대하는 게 간단치가 않습니다. 6자회담의 프레임을 만든 내 경험으로 말하면 북한은 정말 다루기 힘든 나라입니다. 우린 항상 무언가를 제안하고 주려고 했지만 북한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고 받으려고만 했어요.

 김=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가 정책이랄 수 있습니까?

 파월=나는 전략적 인내가 종종 제 몫을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전략적 조급증’(Strategic impatience)은 도움이 안 될 때가 많아요. 김정은이 무언가를 할 때마다 우리가 당황하여 병력을 움직인다면 김정은은 그걸 즐길 겁니다. 내가 지금 정부 요직에 있다면 나는 ‘다들 침착하라’고 말할 겁니다. 김정은이 뭘 해도 당황하지 말고 즉시 반응하지 말자고요.

 김=이란 핵협상 타결이 북핵문제 해결에 긍정적 작용을 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파월=이란 핵 합의에 북한은 별 감흥이 없는 듯합니다. 북한은 ‘우리에게 핵무기가 없으면 아무도 우리 전화조차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북한에 핵 말고는 내세울 게 없는 게 문제입니다.

 김= 그래도 대화는 해야 할 것 아닙니까?

 파월=해야지요. 나는 국무장관 시절 처음 몇 달은 북한과 대화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2002년 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 브루나이에서 열린 APEC 회의에서 북한 외무상을 만나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어떤 두려움도 증오도 없었어요. 부시 정부는 북한 주민의 생활을 걱정해 그들을 돕는 차원에서 6자회담을 시작했지만 북한에서 돌아온 건 실망뿐이었어요.

 김=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신실크로드 프로젝트라는 웅장한 프로젝트를 출범시켰습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의 꿈’은 무엇이라고 이해합니까?

 파월=AIIB는 좋은 구상인데 미국이 너무 성급하게 AIIB와 거기에 가입하는 나라들을 비난했어요. AIIB가 대체 왜 문제가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막강한 부를 가진 중국이 아시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부인합니까. 미국 정부는 AIIB 비판을 중단해야 해요. 중국이 파키스탄과 중국을 연결하는 프로젝트에 450억 달러(약 48조43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지 않습니까. 중국은 철도·전기·통신 등 모든 분야에 돈을 쏟아 부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비난할 수 있단 말입니까.

 김=중국 중심의 질서가 걱정되지 않습니까?

 파월=중국은 항상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를 봐도 그들은 쉽게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어요. 한국전쟁 때도 연합군이 북·중 국경까지 밀고 올라갈 때까지는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향을 봐도 중국이 중국 중심의 질서를 쉽게 만들 수가 없다고 봅니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이 ‘우리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우기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김=한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사드가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걸 중국에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요?

 파월=사드는 중국과 러시아로 날리는 탄도미사일이 아니라 북한의 탄도미사일 요격용입니다. 냉전 때 레이건 대통령을 수행해 소련을 방문했는데 그들은 소련이 세계 한복판에 그려진 지도를 꺼내놓고 미국이 소련을 포위하고 있다고 주장했어요. 12개의 다른 시간대를 가진 방대한 소련을 무슨 수로 포위합니까. 중국도 지금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김=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정리=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콜린 파월은 …

흑인 최초이자 미국 최연소 합동참모본부의장(합참의장), 흑인 최초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은 미국 뉴욕 할렘에서 자메이카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C 학점 학생’이었지만 뉴욕시립대 학도군사훈련단(ROTC) 장교로 임관하며 인생이 바뀌었다. 베트남전(戰)에 참전해 병사 두 명을 구하는 공도 세웠다.

 1973~74년 동두천 주한 미군부대에서 대대장으로 일했고 89~93년 합참의장으로, 91년 걸프전쟁 승리로 국민적 영웅이 됐다. 전쟁신중론자이지만 전쟁을 한다면 압도적 군사력을 투입해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승리한다는 ‘파월독트린’의 주인공이다. 35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93년 퇴역한 뒤 2001년 국무장관에 취임했다. 레이건, 아버지 부시, 클린턴, 아들 부시 등 대통령 네 명을 보좌하는 기록을 세웠다. 저서로는 『나의 미국여행』 『콜린 파월의 실전 리더십』이 있다. 그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중학교·리더십센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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