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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피리를 불면 춤을 춰야지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지난주, 우연히 정현종(76) 시인의 등단 50주년 축하연에 끼어들게 됐다. 출판계 지인을 만나러 간 자리가 알고 보니 문학과지성사에서 연 시인의 50주년 기념 시집 출간파티였다는 그런 사연이다. 황동규 시인, 소설가 복거일, 김원일 선생 등 처음 보는 쟁쟁한 문인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당황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섬’)라는 시를 좋아했다는 것 말고는 시인과 개인적인 연이 없었기에 한정식집 한쪽에 조용히 앉아 고기만 꾸역꾸역 먹어대던 참이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이 다름 아닌 ‘문인들’이란 사실을 실감하게 된 건 자리에 몇 차례 술이 돌고 행사가 마지막을 향해 치닫던 때였다. “지금부터 축하 공연이 있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소설가 복거일 선생이 하모니카를 들고 무대(?)에 등장한다. 조용한 식당 안, 필자는 제목을 알 수 없는 옛 노래의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처연하고도 경쾌한 하모니카 소리. 자리에 앉아 있던 평론가 오생근 서울대 명예교수가 무대로 등장해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그 곡이 시작됐다. ‘봄날은 간다’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이번엔 주인공 정현종 시인이 흥을 참지 못하고 뛰어나왔다. 노래를 흥얼흥얼 어깨를 둥실둥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문인들이 함께 음악에 빠진 순간, 진짜 봄이었다.



 뒤풀이에서 정현종 시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까 너무 멋졌습니다.” 시인이 이렇게 답한다. “나는 피리를 불면 춤을 추는 사람이야. 요즘 사람들은 피리 소리가 들려도 춤을 안 추더라고.” 단순히 즐기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들리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시인의 열 번째 시집 『그림자에 불타다』를 읽었다. ‘인사’라는 시다. ‘실은/시가/세상일들과/사물과/마음들에/인사를 건네는 것이라면/모든 시는 인사이다’. 그리고 시집 뒤편에 실린 이런 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시를 자기 과시용 수단으로 사용하는 시인들입니다. (…) 그런 사람은 가짜 시인입니다.”



 정현종 시인이 말하는 진짜 시인은 세상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줄 아는 이다. 옆에 웃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웃는다. 울고 있는 이가 있으면 함께 운다. 너무 당연한 인간적인 소통이 특별한 재능처럼 여겨지는 요즘이라서일까. 재해로 고통받는 나라를 돕자는 이야기에 “나 살기도 힘는데 무슨”이라 말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어서일까. 시인의 말이 자꾸 맴돈다. 옆에서 피리를 불면 춤을 춰야지.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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