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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스피치의 기술

[일러스트=심수휘 기자]


자기 표현의 시대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말을 한다는 것, 그것도 잘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긴장하지 않고 말하기란 어렵다. 책임지지 못할 말, 부적절한 언행은 언젠간 부메랑이 돼서 자신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는 사회 속에서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서 성공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어떻게 하면 신뢰감을 주는 말하기,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말하기가 될 수 있을까.









비유 들어 설명하고 청중의 눈을 바라봐라







직위나 상황에 따라 스피치 잘하는 법 달라

시킬 땐 구체적으로, 보고할 땐 결론부터

결국 목표는 설득, 쉬운 말로 정확하게 전달






지난 13일 오후 7시 서울 송파구 신천역 인근 A스피치학원. 2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직장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수업의 주제는 ‘설명 스피치’. 학창 시절 자신의 은사를 간결하고 효과적으로 소개해 보기로 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영어 교사인 ○○○씨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 생각이 잘 안 나는데요. 다른 과목(수학)까지 가르칠 정도로 수업에 열정적이셨습니다. 수소문을 해보니 한 중학교 교장으로 지낸다고 하십니다. 몇 년 전 e메일로 연락드리니 저를 기억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퇴직하셨겠지만 지금이라도 찾아뵙고 싶습니다.” 정장 차림의 50대 직장인 채모씨의 말이었다.



강사는 수강생들의 발표 장면을 녹화한 후 화면에 그 영상을 띄워 놓고 개선점을 알려줬다. 채씨에게는 “불필요한 내용을 줄이고,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할 때 비유를 들어 설명해보라”고 조언했다. 시선 처리도 지적했다. “시선을 내리지 말고 청중들의 눈을 쳐다보라. 사람의 눈을 쳐다보는 게 자신 있는 의사소통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채씨가 이곳을 찾은 건 사람들 앞에만 서면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긴장하고 당황하는 자신의 단점을 고쳐보기 위해서다. “직장에서 사내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데 교육생들에게 강사를 소개하다가 긴장해서 말문이 막혀버리곤 한다”며 “직장에서 인정받고 싶은데 그러려면 떨지 않고 표현하는 능력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세무 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고모(33)씨는 “부하 직원을 설득해야 하는 일도 많은데 능력 부족을 느낀다. 효과적인 소통 방법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제조업체에서 품질관리를 맡고 있다는 엄모(41)씨는 “윗분들한테 보고할 때 횡설수설하면 능력 없는 사람이 돼 버린다. 일을 열심히 하는 걸 떠나서 보고를 잘 하는 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 내 말하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크게 상사와 부하 직원의 태도로 나눠서 설명한다. 핀스피치학원 김경희 원장은 “상사는 부하 직원에게 최대한 구체적으로 지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 꼭 다뤄야 하는 내용은 무엇이고, 언제까지 제출해야 하는지, 왜 이 보고서를 써야 하는지를 상세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를 잘 쓰라’는 식의 두루뭉술한 지시는 혼선을 만들어 업무에 차질을 빚고 결국 부하 직원과 상사의 관계를 악화시킨다.



상사에게 보고하는 부하 직원은 결론부터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결론-상황 설명-이유-결론을 다시 설명’이라는 4단계에 따라 보고하는 게 좋다. 빠른 시간에 여러가지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사의 입장을 배려한 소통법이다. 공식적인 회의에서는 결론을 먼저 말하는 두괄식 대화를 하는 게 좋다. 상사는 편한 아랫사람이라 해도 사적인 내용보다 공적인 내용에 초점을 둬야 한다.







직장인들이 프레젠테이션을 연습하고 있다.




스피치 학원 다니는 직장인들



직급이 올라갈수록 말하기는 더욱 중요해진다. 책임질 일이 늘어나고 보는 눈이 많아짐에 따라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의사 결정’으로 비춰질 때가 많다. 말뿐 아니라 제스처 하나까지 아랫사람들은 중요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신경을 써야 한다. 또 공식적인 자리에서 인사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회사 주요 정책을 제시할 일이 늘어난다. 그래서 기업체 고위 임원들은 발음과 발성, 건배사, 인사말, 유머, 유연한 대화법 등 다양한 내용을 익힌다. 서울 교대역 인근 B학원은 매달 2~3명의 대기업 임원에게 스피치 강의를 실시한다. 비용은 한 사람당 2개월에 120만원대. 1:1 개인 지도의 경우 회당 20만~30만원이다. 이 학원 관계자는 “최근 대기업 계열 증권사와 전자회사 임원들이 수업을 들었다”고 전했다. 강남의 C스피치 아카데미 관계자는 “대기업 50대 이상 임원들은 수업 중에 예민한 회사 기밀이 나올 수 있어서 비공개로 수업을 진행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창업한 30대 최고경영자(CEO)들 가운데 스피치 강의를 듣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최고경영자들이나 고위직 관리들의 말하기 능력은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SNS나 동영상을 활용해서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 경우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모두 꼼꼼히 신경써야 한다.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며, 과거 발언이 노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미지 효과가 크고 오래간다. CEO나 고위 임원의 일거수일투족은 기업 이미지를 좌우한다.



전문가들은 고위직 임원들은 스피치에서 아랫사람에 대한 배려가 드러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영석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CEO의 말하기도 결국은 설득이다. 내가 생각하는 바를 쉬운 말로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질책을 할 때도 상대방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발언을 하면 안된다. 결국 직원들의 반발감을 불러일으켜 역효과를 내게 된다는 것이다. 또 경영자의 말 한마디가 직원들의 사기로 이어지기 때문에 개인적인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말해야 하며,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선 손짓 등 적당한 제스처를 활용하면 신뢰감을 높일 수 있다.





초등학생들이 발표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연애 스피치, 첫째도 둘째도 용기



지난 18일 한 스피치 학원에서는 말하기를 배우려는 초등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날 수업의 주제는 ‘스포츠 캐스터처럼 박진감 있게 말하기’. 이들은 2명이 한 팀이 돼서 볼링을 하고 있었다. 볼링핀 10여 개를 고무공으로 쓰러뜨리는 게임을 한 뒤 스포츠 뉴스의 대본을 참고로 게임을 중계하는 글을 작성한 후 발표하는 방식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스포츠 뉴스의 양○○입니다. 오늘 초등 2~3학년 반에서 볼링 경기가 진행되었습니다. 경기는 남자와 여자팀으로 나눠 진행됐습니다. 경기는 25 대 11로 남자팀이 승리하였습니다.”



강사는 “더 큰 소리로 말해보라”거나 “발음을 분명하게 하라”는 등의 조언을 했다. 이 학원 강사는 “말하기를 무조건 두려워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이런 아이들에게는 큰소리로 또박또박 말하는 경험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나는 ○○가 싫어’라는 말보다 ”나는 △△가 더 좋아‘처럼 긍정적인 표현을 배우면 교우 관계도 개선된다. 말하기 수업을 듣고 있던 양모(양전초2년)군은 “말 잘하는 방법을 배워서 사이가 안 좋은 친구와 이야기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세륜초등학교 2학년 이모군도 “전에는 목소리가 작았는데 학원에 와서 큰 목소리로 말하는 법을 배웠다”며 “말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학원에 오는 아이들 중엔 반장 선거나 교내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학원에서 말하기를 배우는 아이들도 있다.



이 학원 원혜정 부원장은 집에서 할 수 있는 말하기 교육으로 책 한 권을 정해 매일 한 페이지씩 또박또박 읽는 훈련을 해보라고 조언했다. 책의 내용을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눠 발표해보는 훈련을 해보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말하기 연습은 집에서 이뤄진다. 아이들의 언어 표현에 문제가 있다면 부모의 언어표현을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원 부원장은 “아이는 부모의 언어습관을 물려받기 때문에 평소에 가족 간 의사소통에 주의해야 한다“며 ”엄마 아빠가 먼저 고운말 바른말을 쓰고,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는 말하기를 하는게 첫 번째 말하기 교육이 된다“고 말했다.  



연애를 위해 학원을 다니는 이들도 있다. 이성에게 다가가기 위해 어떤 눈빛을 보내야 하는지, 상대방의 마음을 열기 위해선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등을 강의한다.



같은 날 오후 신논현역의 한 사설 강의실에서 열린 연애스피치 수업 현장. 한 달 80만원에 가까운 만만치 않은 수강료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이들이 모여있었다. 수업은 대화 이끄는 법, 유머 활용 등의 내용이었다. 맘에 드는 이성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할지에 대해 모의 실전 훈련도 했다. 퍼시드 연애아카데미의 곽현호 대표는 “연애 스피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용기”라고 강조했다. 상대방으로부터 거부를 당할까 두려워 접근 자체를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연스런 대화를 끌어내기 위해 나이, 배경, 관심사를 얘기하며 상호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도 했다.



이처럼 다양해지는 스피치 강의와 더불어 서점가에서도 관련 서적에 대한 인기가 높다. 특히 대화와 화술에 대한 책은 전반적인 출판 불황에도 불구하고 종류와 판매량이 늘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대화와 화술’ 관련 도서는 2010년 7만2294건에서 지난해 11만2082권으로 판매량이 늘었다.







국내 말하기 교육 시초가 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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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하기는 화려한 언변보다 내용 우선

가족이나 친구 간 의사소통 개선부터 시작

먼저 잘 듣고 상대의 입장과 감정 배려해야






말하기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좋은 말하기는 ‘기술’보다 ‘내용’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성준 JTBC 아나운서 팀장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사회적 검증’이 강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말을 잘한다는 건 결국 신뢰감을 준다는 뜻“이라며 “말만 현란하게 하는 ‘이미지 포장’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하기 기술만 강조하다가는 자칫 과대 포장을 하게 되고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와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을 잘하기 위해선 우선 잘 들어야 한다. 문현경 한국스피치협회 원장은 “말을 잘하려면 먼저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경청이 중요하다”며 “상대방의 입장과 감정을 배려하지 않으면 효과적인 말하기가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개그맨 출신으로 스피치 강사로 활동 중인 권영찬(45)씨는 “우선 내 가족과 내 주위 사람과 의사소통을 잘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교에서부터 말하기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 때까지 말하기 교육을 통해 자신을 잘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서양과 달리 한국인들은 사회인이 될 때까지 말하기에 대한 교육을 거의 받지 않아 상호 간에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여기엔 말보다 글을 중시했던 동양 문화의 전통, 70~80년대까지 이어졌던 수직적 군사문화의 영향도 있다. 동양은 상하, 근신, 선후배 문화 때문에 수평적인 토론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게 익숙하지 않다. 70년대엔 각 학교마다 웅변대회가 성행했지만 웅변의 주제는 거의 ‘반공과 애국’이었다. 문현경 한국스피치협회 원장은 “설득이 아닌 선동, 대화가 아닌 지시가 당시 말하기의 주요한 기능이었다”고 말했다.



김영석 연세대 교수는 97년 외환위기는 말하기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계기였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유능한 인재들이 세계적인 협상 무대에서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미국 돈을 빌리면서 미국 사람을 고용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말을 잘하는 게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는 한국의 풍토가 낳은 결과였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화·정보화의 물결 속에 말하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손석희는 어떻게 말하나



『손석희가 말하는 법』을 쓴 부경복 변호사는 책에서 “우리는 말 잘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며 “말 잘하는 사람은 30을 일하고도 100처럼 전달하지만 말 못하는 사람은 100을 일하고도 30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협업이 중요해지면서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하고, 다른 이들의 생각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필요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말 잘하는 사람으로 아나운서 손석희를 꼽은 그는 “손석희는 상대방과 싸우지 않는다. 상대방이 손석희가 제시한 ‘생각’과 싸우게 한다. 이를 통해 손석희 자신은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객관적으로 상대방의 허점을 지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서로 다른 생각들은 관대하게 수용하는 태도가 손석희가 말을 잘 할 수 있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부 변호사는 “주입식 교육을 받은 우리는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능력을 배우지 못했고, 상대방이 내 오류를 지적하는 걸 접하지 못한 탓에 토론이 인신공격으로 끝나버리곤 한다”며 “손석희는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반대 주장을 하는 사람은 근거를 갖고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사고의 틀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올바른 말하기는 개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말은 삶의 기본적인 요소이며 사회가 복잡해지고 각종 도구들이 발전할수록 인간과 인간의 소통은 더욱 중요해진다. 김경희 서울문화예술대 상담코칭심리학과 교수는 “자기 주장을 하고 자기 표현을 하는 건 자신에 대한 긍지를 높이고 건강한 삶을 일구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또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리고 긍정적인 관계를 맺어가기 위해 효과적인 말하기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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