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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 기자’의 고백

[뉴스위크] 비탄에 젖은 취재원의 영혼을 파고들어 특종을 올리는 일뿐이었지만…



지난 3월 말 프랑스 남부 알프스 산맥의 구조본부에 도착할 무렵엔 세계의 초대형 기사거리에 하루 정도 늦은 상황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태운 검정색 자동차 행렬이 바람처럼 지나간 뒤였다. 3월 24일 일어난 저먼윙스 항공의 4U9525편 추락 지점 근처의 참혹한 현장을 둘러보고 이미 떠나갔다. 내가 도착했을 때 100여 개의 TV 뉴스 삼각대 대다수가 주인 없이 서 있었다. 취재진은 저녁 식사를 하러 갔거나 어쩌면 독점 인터뷰를 따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불어도 못하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내가 언덕길을 구비구비 돌아나가는 차 안에서 휴대전화에 얼토당토않은 메모나 입력하고 있던 까닭이었다. 어쩌면 “눈 덮인 산봉우리들로 둘러싸인 넓고 울창한 계곡”에서 뭔가를 건져내 어떤 스토리든 엮어낼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속수무책이었다. 3월 말 프랑스 센레잘프 인근의 추락사고 같은 비극의 희생자 주위로 독수리 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할 때 어떤 기자든 모두 그렇듯이. 우리는 ‘특종’에 목을 맨다. 모든 사람이 우리 매체를 보거나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증명하려는 몸부림이다. 실제론 우리 모두 최소한 장님 코끼리 말하듯 첫 이틀 동안 진짜 정보의 게이트키퍼(gatekeepers, 뉴스의 취사선택 결정자)가 던져주는 산발적인 팩트들과 똑같은 내용을 옮겨 적을 게 뻔했다. 그중에는 더 훌륭하게 쓰거나, 카메라에 더 멋지게 비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곳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100여 명의 기자가 있었다. 따라서 나도 대형 돌발사건 현장에 얼굴을 내밀 때 대다수 기자가 하던 대로 똑같이 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다른 기자에게 물었다.



5분 동안 비행장 한쪽 끝에서 다른 쪽까지 헤매고 다녔다. 내 모국어인 영어, 또는 내가 아는 외국어인 독일어를 하는 사람이 없나 두리번거렸다. 마침내 그녀와 마주쳤다. 미국 뉴스 네트워크 소속으로 중동을 취재하는 아름다운 금발이었다. 휴대전화로 동영상 셀프 카메라를 촬영해 트위터에 올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전날 이란 핵협상을 취재하던 중 이번 비행기 추락사고가 일어나자 이곳으로 달려온 참이었다. “어떻게 돌아가는 거요?” 내가 물었다. ‘빌어먹을 비행기 추락이래요, 멍청이 같으니.’ 의당 그런 답변이 돌아오겠지 예상했다.



대신 그녀는 내게 부족한 정보를 착실히 채워줬다. 기자들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 심지어 다른 기자에게도 알려주기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대부분 이미 아침 일찍이 끝난 참이었다. 일단의 수색 헬리콥터가 추락지점에서 밤을 보낸 뒤 꼬리를 물고 착륙했을 때였다. 구조대원 중 일부가 험준한 지형에 관해 인터뷰를 했다. 그것은 내가 계획했던 기사이기도 했다. 몇몇 건장한 친구들을 붙잡고 어떻게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가망 없는 생존자 신호의 탐색 작업을 벌였는지 물을 생각이었다. 어떻게 헬리콥터에서 라펠을 타고 내려와 연기 피어 오르는 잔해 속을 파헤쳤는지 들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내가 바르셀로나에서 7시간 차를 달려 도착했을 무렵엔 이 네트워크 방송 기자를 포함해 모두가 이미 그런 기사를 작성한 뒤였다.



구조대원들이 2개의 블랙박스 중 둘째 것을 찾아냈다고 그 방송 기자가 귀띔해줬다. 이번 사건에서 단 하나의 진정한 의문에 대한 답변에 한 발 더 가까워진 셈이다. 비행기는 왜 추락했는가? 구조대원들이 시신 몇 구를 수습할 예정이었지만 지형이 너무 험했다고 그녀가 침울한 얼굴로 덧붙였다. 그녀는 마치 바게트 빵 이야기를 하듯 ‘시신’을 언급했다. 그녀는 예의 ‘정말 낭패네요’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기사를 어떻게 써 보내야 할지 아무 아이디어도 없이 낯선 곳에 서 있을 때 우리 모두가 주고받는 표정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 하곤 경찰관들이 서 있는 건너편을 응시했다.



모든 기자가 비극의 현장 주위에 둘러서서 의미 없는 독백을 한다.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근엄한 표정으로 끊임없이 머리를 끄덕이며 “야, 정말 가슴 아픈 일이잖아?”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해부된 시신을 내려다보며 검시관들이 하는 것과 같은 유의 교수대 유머(gallows humor, 심각한 상황에서의 블랙 유머)다. 그들은, 우리는 이들 망자에게는 정말 개뿔도 관심 없다. 지난 수년간 우리가 수백 건의 관련 기사를 작성했던 다른 사망자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우리는 그런 데 무감각해졌다. 그것이 우리의 일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정말 관심을 갖는 건 기사거리다. 특히 이제껏 아무도 보거나 들은 적도 없고, 희망컨대 장차 수년간 기억될 독점 기사다. 우리가 이곳을 찾은 목적은 흐느끼는 추락사고 희생자 가족과의 ‘한 방’ 있는 인터뷰다. 더 욕심을 낸다면 그 비행기가 알프스를 들이받고 폭발하는 장면을 지켜본 목격자의 가슴 아픈 증언이다. 폭스 뉴스 앵커 빌 오라일리와 NBC 앵커 브라이언 윌리엄스가 자신들의 취재 경험담을 과장한 이유는 이 같은 독점 기사에 목맸기 때문이다(그리고 어느 정도는 우리 모두가 그렇다). 우리의 가치를 입증하고 우리의 브랜드와 명성을 공고히 해주는 새 인기 동영상, 링크 또는 권위 있는 상의 확보에 혈안이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값싼 대체품들이 난무하는 저널리즘 분야에서 돋보이기 위해 발버둥 친다. 저널리즘 스쿨 입학생이 2012년까지 20년 동안 매년 증가했다. 반면 그 분야의 실제 일자리 수는 절반으로 줄었다. 이 같은 정글에 하이에나는 많아지는데 우리의 먹잇감인 영양은 줄어든다.



나는 긍지를 갖고 있는 기자다. 그리고 저널리즘은 비극의 희생자 뒤를 좇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오늘날의 초경쟁적인 뉴스 환경에서도 어느 때보다 더 설득력 있고 재미있는 장문의 탐사 보도 기사들을 만날 수 있다(게다가 공짜인 경우도 많다!). 그리고 물론 비행기 추락사고 기사에는 진정한 뉴스 가치가 있다. 전 세계 언론매체들은 3월 말 한 주 동안 안드레아 루비츠 부기장의 의학적·심리적 배경에 관한 중요한 의문을 파헤치면서 동기를 찾았다. 그리고 그 추락사고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이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떤 법규를 개정할 수 있는지 파악하려 애썼다. 희생자와 대중은 이 같은 보도를 보고 들을 만한 자격이 있다. 하지만 그런 정보는 센레잘프에서 손을 호호 불던 사람들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대신 파리의 정부 관료 그리고 독일 내에서의 추적 보도에서 나왔다.



팩트의 취재 외에도 비행기 추락에 관한 이들 기사에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진정한 가치가 있다. 사람들이 비극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쓸 때 우리는 분명 슬픔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독자와 시청자에게 생명은 소중하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이 같은 스토리의 숭고한 모색은 냉소적인 ‘한 건’주의 속에서 종종 실종된다. 슬픔에 빠진 미망인을 구슬려 기사거리를 얻어내려 할 때 기자들이 예외 없이 시도하는 수법이 있다. “남편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고 싶다”는 식의 대사다. 거기에 거짓은 없다. 나는 정말로 그런 바람을 갖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을 가슴 아프게 기억함으로써 정말로 세상에 보탬이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내가 읊조리는 이 같은 대사는 여전히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상대의 비탄에 젖은 영혼을 파고들어 좋은 기사감을 낚아 올리는 일이다. 내 자신의 경력에 날개를 다는 데 보탬이 될 만한 스토리 말이다.



내가, 우리 중 누군가가 이런 기사를 작성할 때 그것이 아무리 좋은 역할을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이에나다. 역사의 초고를 쓰고 있다고 큰소리치면서 우리 행동을 합리화하고 자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막 파헤친 무덤 속에 주둥이를 찔러 넣어 관을 이빨로 뜯어내고 부러진 뼈를 씹어먹는다. 그것이 우리의 속성이다.



‘총을 가져와’



언론계에서 나의 첫 ‘큰 기회’는 2001년 뉴스위크를 통해 찾아왔다. 미국 아이다호주 북부 산간지대의 괴짜 가족이 지역 치안당국과 말썽을 일으켰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엄마는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린 혐의로 체포된 뒤였다. 다섯 아이가 졸지에 천애의 고아가 됐지만 정부를 불신했다. 아이들을 데려다가 양육가정에 맡기려고 보안관들이 그들의 집을 찾아갔을 때였다. 맏이가 “총 가져와!”라고 소리치고는 집 안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전에 으르렁거리는 개떼 27마리를 풀어놓아 경찰들을 공격하도록 했다. 5일 간의 대치국면이 이어졌다.



내가 워싱턴주 스포캔의 신문사 스폭스먼-리뷰에 입사한 지 1년째였다. 나의 첫 풀타임 직장이었다. 이것은 내 기자경력 일생일대의 스토리였다. 당연히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군침을 흘렸다. 신문사에 출근하지 않는 날 그 뉴스를 뉴스위크 편집장에게 귀띔했다. 그는 뉴욕에서 기자 한 명을 파견했다. 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현지 가정의 대문을 두드렸다. 이 붕괴된 가정에 관해 우리가 캐낼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주워 담았다. 결국 처음으로 전국 매체에 내 이름이 올라갔다. 무엇보다도 뉴스위크의 커렌 브레슬라우 당시 서해안 지국장과 새로 인연을 맺었다. 아이들은 결국 살던 집을 떠나는 데 동의해 양육가정으로 보내졌다.



그 다음 내가 올린 큰 건은 2003년 2월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의 공중폭발 사고 때였다. 어느 토요일 아침 일찍 타임 편집자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고인이 된 우주비행사 마이클 앤더슨의 부모를 취재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들의 자택에 도착해보니 이미 한 무리의 기자들이 문 앞에 모여 있었다. 앤더슨의 부모는 거실에 모여 앉아 슬픔에 젖어 있었다. 나는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소용없는 짓이라고 판단했다. 이미 집 안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분명 앞으로도 불가능할 터였다. 그러던 중 친구이자 옛 동료가 시애틀 발 비행기에서 막 내려 현장에 도착했다. 그는 대문을 두드리면서 이런 발언을 했다. “우리를 몇 분 동안만 들어가게 해주면 이 모든 카메라에서 해방되지 않겠어요?” 마치 그들을 기자들로부터 구해주겠다는 말투였다. 마치 자신은 먹잇감을 찾는 또 다른 영리한 하이에나가 아닌 척했다.



그 뒤로 적어도 10여 차례는 더 남의 집 문 앞에서 애통해 하는 가족을 기다리는 꼴사나운 입장에 놓이게 됐다. 지역 TV 기자들은 한 주에도 여러 차례 비극을 추적한다. 나는 항상 그런 괴로운 체험을 싫어했지만 이 같은 섬뜩한 마라톤에 참여했기 때문에 고향인 오리건주 유진을 벗어나 ‘출세’할 수 있었다. 나는 수년간 프리랜서로서 수십 꼭지의 기사를 썼다. 주로 특정한 형태의 진짜 범죄를 다룬 기사였다. 식인 살인마, 캐나다 해안에 밀려 올라온 다리 한 토막, 이라크에서 참수당한 지방의 영웅 등이었다. 마침내 뉴스위크와 온라인 매체 데일리 비스트(당시 같은 회사의 매체였다)에 풀타임 기자 일자리를 얻었다. 끔찍한 스토리들을 추적해 큰 건을 올린 덕분이었다.



때로는 행운이 따랐고 때로는 비열한 술수를 쓴 적도 있었다. 지난해 여름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트라웃데일 고등학교 학생 재러드 패지트가 반 친구 한 명을 쏘아 죽인 교내 총격사건이 있었다. 당시 나는 거리를 걸어가던 일단의 십대 청소년과 마주쳤는데 그중 한 명이 피해자를 자신의 절친이라고 했다. 건수 잡았다! 길 건너편에서 만난 한 지역매체 기자는 가해자 절친의 휴대전화 번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 기자가 말하는 동안 그녀의 펼쳐진 수첩에 적힌 전화번호가 눈에 띄였다. 내가 그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척하면서 전화번호를 머리 속에 담는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아차리지 못하기만 바랐다.



3월 말 센레잘프에 늦게 도착했을 때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사방에 경쟁자들이 깔려 있는데 나는 뒤처져 있었다. 메르켈 총리와 올랑드 대통령이 빠져나가자 경찰들은 우리의 구조본부 접근을 차단하던 바리케이드를 치웠다. 나는 헬리콥터에 가까이 접근해 둘러보며 건수가 잡히기를 기대했다. 그런 행운은 따르지 않았다. 늘어난 경찰들이 내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내 앞에 선 독일 TV 보도진이 통과하지 못한다면(그들은 불어를 했다) 나도 분명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내 최대의 특종 기회’



비행기 추락 원인이 무엇이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 말고는 취재거리가 별로 많지 않았다. 추락은 8초 사이에 일어났다. 생존자는 한 명도 없었다. 잔해 더미 속에서 피를 흘리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깨어난 8세 소녀의 이야기를 전하는, 눈길을 확 끄는 어떤 스토리를 건질 확률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구조본부를 떠났다. 투숙한 호텔 주인에게 추락지점을 다녀온 현지 주민을 아는지 물었다. 그녀는 바르셀로네트의 여행사에서 근무하는 한 여성과 연결시켜줬다. 그녀를 통해 ‘높은 산’ 다큐멘터리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현지 영화제작자 올리비에 장을 알게 됐다. 그는 추락현장을, 그것도 걸어서 다녀왔다. 최초의 수색대원들이 잔해를 수색하기 위해 헬리콥터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나는 그를 인터뷰하고 그가 찍은 동영상을 봤다. 하지만 결국에는 비행기 추락현장에 접근한 최초의 민간인과의 이 ‘독점’ 인터뷰도 우리가 이미 아는 사실 이상의 대단한 정보는 없다고 판단했다.



희한하게도 가장 큰 특종 기회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찾아왔다. 비행기 추락 몇 시간 뒤 여자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다. 그녀는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희생자 중 한 명을 알고 있었다. 희생자의 여자친구가 몇 년 전 교통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여자친구의 절친이 사고로 죽고 자신은 심각한 뇌 손상과 신체적 외상을 입어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이 남자(희생자)를 만나 데이트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그녀는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 남자는 딴 세상 사람이 됐다.



내 안의 기자 본능은 슬픔에 빠져 있는 그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나와 인터뷰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라고 여자친구에게 부탁하기를 원했다. 나는 혀를 깨물었다. 사람들을 이용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를 사귄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여자친구가 나의 반사적인 반응을 이해해줄지도 알 수 없었다. 전화번호를 묻는 대신 그녀를 위로하며 기사를 머리에서 떨쳐내려 애썼다.



글=윈스턴 로스 뉴스위크 기자

번역=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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