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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현금밸브 열자 저평가된 KOSPI로 ‘머니 무브’

자료: 한국은행,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 한국거래소, 한국감정원, 금융감독원
코스피(KOSPI) 지수가 9거래일 연속 2100선 위에서 고공비행하고 있다. 연초 대비 30% 이상 오르면서 투자자들 사이엔 환호성이 울려퍼진다. ‘증시는 실물 경제의 거울’이라는 공식에 대입하면 이같은 탄성은 수출이나 생산 현장 곳곳에서 흘러나와야 정상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23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직전 분기보다 0.8% 증가하는데 그쳤다. 4개 분기 연속 0%대의 저성장 국면이 이어졌다. 기업의 채산성도 나빠졌다. 지난해 한국 기업들은 1000원을 팔아 43원을 남겼다. 한국은행이 집계를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벌이가 신통찮았다. 증시의 환호성과 산업 현장의 비명 사이엔 어떤 괴리가 있는 것일까. 실물 경제는 곰(Bear Market)의 형상인데 거울 속에선 왜 황소(Bull Market)로 나타나는 것일까. 위로 솟은 황소의 뿔처럼 주가는 오름세를 계속 탈 수 있을까.

저성장 허덕인다는데 증시 왜 펄펄 끓나

정기예금 뭉칫돈, 고수익 자산으로
증시 전문가들은 최근 활황 장세를 ‘머니 무브’로 설명한다. 시중 자금이 은행 예금 같은 안전 자산에서 증시와 부동산 같은 고위험·고수익 자산으로 이동하는 현상이다.

머니 무브의 동력 두 축은 저금리와 유동성 과잉이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금리 1% 시대가 현실이 되면서 은행에서 빠져나온 돈이 증시로 유입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돈값이 떨어져 자산 증식 효과가 사라진 뭉칫돈이 높은 수익을 찾아 이동을 시작했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해 8월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 내린 이후 최근까지 줄어든 은행 정기예금은 7조 6209억원이나 됐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달 한국은행 통계를 분석해 낸 자료를 보면, 올해 1~2월 두 달 동안에는 특히 12조5000억원의 뭉칫돈이 정기예금에서 빠져나갔다.

미국과 유럽이 양적완화(EQ)를 통해 열어 놓은 현금 밸브도 외국인 자금 유입을 부추기고 있다. 올 들어 증시로 유입된 외국인 자금은 7조1000억원. 이달 들어서만 무려 3조9000억원 순매수를 기록했다. 외국인은 보통 4~5조 원가량 매수한 후 다시 매도에 나서는 매매 패턴을 반복해왔지만, 최근 매수세는 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외국인이 매수에 나선 2월부터는 코스피가 11.3% 오르며 증시 상승세를 주도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글로벌 마켓에 넘치는 현금이 주로 미국과 일본으로 흘러들어갔는데 올해는 돈이 넘치다 보니 그동안 소외됐던 신흥국으로도 돈이 유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간 한국 증시는 신흥국 가운데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왔다. 이달 1일 발표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 지수에 따르면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률(PER)은 10.1배를 나타냈다. 작년 연말 9.8배에 비하면 소폭 상승했지만 주요국 증시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비교 대상 46개국 가운데 한국 증시보다 PER가 낮은 곳은 중국(10.0배)·그리스(9.7배)·아르헨티나(9.7배)·러시아(5.1배) 등 7곳뿐이다. PER는 주가를 주당순이익(EPS)으로 나눈 비율로, 이 수치가 낮을수록 기업실적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달 들어 외국인 자금이 유입된 배경엔 한국 증시의 밸류에이션이 한 몫을 한 셈이다. 송민규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글로벌 유동성이 밸류에이션 매력이 부각된 코스피 시장에 집중적으로 유입되면서 개별기업 실적이나 기타 악재에도 지수를 계속 밀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스피·코스닥 사이에도 미묘한 차이
국내로 들어온 외국인의 뭉칫돈의 흐름은 코스피와 코스닥(KOSDAQ) 사이에서도 미묘하게 갈린다. 최근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은 15거래일 연속 매수세를 이어가는 등 상승세를 주도했다. 올 들어 코스피 시장에서만 7조원 이상을 사들였다. 반면 코스닥시장에서는 지속적으로 팔고 있다. 연초부터 팔자세를 유지하며 3800억원 이상 순매도했다.

황소장의 모습이 얼마나 이어질지에 대해선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김학균 팀장은 “5월 중순까지 외국인의 순매수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김영일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 안에 2250수준까지는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다만 코스피 지수 자체가 워낙 빨리 올라왔기 때문에 숨 고르기를 거치며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증시 변수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중국의 경기 부진, 그리스발 유럽 시장 불안 등을 꼽고 있다. 김학균 팀장은 “당분간은 조정이 있더라도 지수가 크게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는 시기에 변곡점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는 4·6·7·9·10·12월에 예정돼 있다. 이 중 Fed의장이 기자회견을 하는 FOMC 회의는 6·9·12월이다.

전문가들은 Fed의장이 기자회견을 하는 달에 기준금리를 올리는 관례를 감안해 6월 FOMC 회의 때 9월 금리 인상에 대해 언급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6월 FOMC 회의 이후에 달러가 재차 강세로 돌아서면서 신흥국 시장을 압박할 수 있다는 얘기다.

5월부터는 외국인 수급에 부정적인 이벤트도 대기하고 있다. 5월에는 중국 본토 A시장(상하이+선전)의 MSCI 신흥국 지수 편입 여부가 결정된다. 상하이와 선전의 A시장 규모는 코스피 시가총액의 6.3배인 7762조원에 달한다. MSCI 신흥국 지수 내에서 한국의 파이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성장동력→소비·투자 촉진’ 선순환 시급
현재 한국 증시에 유동성을 불어넣는 주요 주체가 외국계라는 점, 그리고 외국계는 미국과 유럽자금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 변수는 한국에도 얼마든지 ‘폭탄’이 될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체 외국인 비중에서 미국계가 38.5%, 174조200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계는 29%인 131조2000억원을 갖고 있다. 안병국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그리스 문제는 그리스 국채만기가 도래하는 5월 중순까지 계속될 이슈여서 한국 증시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증시가 유동성 장세에서 벗어나 체력을 다지며 상승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새로운 성장동력→소비·투자 촉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황소의 얼굴로 나타난 곰이 아니라, 몸집과 얼굴이 황소의 모습을 띌 수 있도록 근본적 변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성완종 파문 등 내치에 발목이 잡히면서 노동·공공·교육·금융 등 4대 부문 개혁이 벽에 부딪혀 있고 새로운 경제정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며 “경제 당국은 추가경정예산 편성 같은 임시방편이 아니라 국회에 계류된 경제 관련 법안을 조기에 통과시키고 서비스·수도권 규제 완화 같은 장기적 대책에서 경제 회생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희·김경미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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