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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는 어떻게 진화했나] 콜럼버스보다 500년 앞서 아메리카에 상륙한 바이킹

그림 1 크리스티안 크로스가 그린 ‘레이프 에릭손 미국을 발견하다’, 1893년. 1000년 경 바이킹 일행이 아메리카 땅인 뉴펀들랜드를 발견하는 장면을 그렸다.
그림 1은 노르웨이 화가 크리스티안 크로스(Christian Krohg)의 작품이다, 19세기 말 노르웨이 화풍은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 옮겨가고 있었는데, 이 그림에서도 이런 이중적 화풍이 느껴진다. 그림 제목은 ‘레이프 에릭손(Leif Ericsson) 미국을 발견하다’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노란 옷의 사내가 가리키고 있는 쪽에 육지가 보인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는 역사적 순간이다.

<24> 바이킹의 탐험과 교역

에릭손은 누구일까? 그는 1000년경에 탐험대를 이끌고 그린란드를 떠나 서쪽으로 나아간 끝에 오늘날 아메리카 땅인 뉴펀들랜드에 도달한 인물이다. 그는 도착지를 빈란드(Vinland)라고 명명하였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콜럼버스가 머나먼 항해를 한 끝에 지금의 서인도제도에 도착한 해가 1492년이니, 에릭손은 그보다 5세기나 앞서서 아메리카에 상륙한 유럽인이었던 것이다.

잔인한 약탈자로 악명 높던 바이킹
에릭손과 일행은 바이킹이었다. 흰 피부에 건장한 체격을 지닌 바이킹은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민족이었다. 이들은 중세 유럽 전역을 피로 물들인 잔인한 약탈자로 악명을 떨쳤다. 원추형 투구와 위쪽이 둥글고 아래쪽이 좁은 방패가 호전적 침략자 바이킹의 상징과 같았다. 그림 1에서 이마가 넓은 이가 들고 있는 것이 이 투구이고, 배 바깥쪽으로 줄지어 걸려있는 둥근 물체들이 이 방패다. 그러나 바이킹을 치고 빠지기 스타일의 약탈자로만 봐서는 안 된다. 현대의 여러 역사가는 바이킹이 약탈만이 아니라 정복과 정착을 통한 장기적 통치에도 능했다고 말한다. 또한 이들이 전투에서 뿐 아니라 교역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고 한다. 바이킹의 실제 모습을 어떠했을까?

바이킹의 전성기는 8~11세기였다. 793년 바이킹 전사를 가득 실을 배들이 영국 북동부 린디스판을 공격했다. 그들은 수도원을 약탈하고 보물을 빼앗고 수도사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잡아갔다. 이것이 약탈자 바이킹의 본격적 시작이었다. 이후 바이킹은 영국 해안지역에 자주 출몰하였다. 그들은 재빨리 공격한 후 전리품을 챙겨 신속하게 사라지는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영국 방어체계의 취약점을 확인하자 점차 잉글랜드 북부와 동부 지역을 점령하고 정착한 후 주민들을 통치하는 길로 나아갔다. 이 지역을 데인로(Danelaw)라고 불렀다.

그림 2 영국 해안에 상륙하는 바이킹. ‘성 에드먼드의 생애’, 12세기.
그림 2는 9세기 영국 해안에 상륙하는 바이킹을 보여준다. 앞서 설명한 투구와 방패가 보인다, 이들이 탄 배는 롱쉽(longship)이라 불렸는데, 배의 양쪽 끝이 위로 솟은 날렵한 곡선형 선체가 특징적이었다. 롱쉽은 빠를 뿐만 아니라 먼바다 항해와 해안 접근에 모두 유용했다. 또 노 젓는 방향만 반대로 하면 배가 전진하는 방향을 거꾸로 바꿀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영국을 공략한 후 바이킹은 남쪽으로 눈을 돌렸다. 885년 그들은 센강을 타고 프랑스 내륙으로 들어가 파리를 포위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파리는 겨우 함락을 피했고 바이킹은 외곽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노르만(북쪽사람)이라고 불린 이들의 위세는 여전했다. 911년 프랑스 국왕은 이들에게 북부지역의 넓은 땅을 봉토로 하사함으로써 평화를 얻게 되었다. 노르만의 이름을 따서 이 지역은 노르망디 공국이라고 칭해졌다.

러시아까지 지배한 개척 정신
바이킹의 해양진출은 영국 너머 서쪽으로 계속 이어졌다. 스칸디나비아 본국에서 ‘금발 왕 하랄’이 경쟁 관계의 수장들을 제거해 간 것이 계기였다. 불안을 느낀 수장들은 지지 세력을 이끌고 새 땅을 찾아 떠났다. 870~930년 사이에 1만 명이 넘는 이주민이 노르웨이 지역을 떠나 아이슬란드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아이슬란드에서도 정착민에게 나눠줄 토지가 부족해졌고 정착민 간의 갈등이 격화되었다. 982년 아이슬란드에서 살인죄로 3년의 해외추방형을 선고받은 ‘붉은 머리 에리크’는 서쪽 바다로 더 나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수백km의 항해 끝에 그는 얼음에 뒤덮인 땅을 발견해 그곳에서 추방기간을 보냈다.

이후 그는 아이슬란드로 돌아와 자신이 발견한 섬으로 갈 이민자를 모집했다. 그가 그린란드(Greenland)라는 매력적인 이름을 붙인 때문인지 희망자가 많았다. 결국 986년 약 400명의 이민자가 그린란드에 도착해 정착생활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십여 년 후에 서쪽으로 탐험을 계속해 결국 북아메리카에 상륙한 에릭손은 바로 붉은 머리 에리크의 아들이었다.

한편 영국에서는 왕권을 놓고 잉글랜드 국왕 해럴드 고드윈슨, 노르웨이 국왕 하랄 하르드라디, 노르망디 공국의 윌리엄이 치열하게 다투었다. 해럴드는 하랄을 꺾었지만,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윌리엄에게 패배하였다. 이 시기 노르망디 공국은 이미 바이킹의 원래 색깔을 버리고 프랑스식 문화를 수용한 지 오래됐기 때문에, 1066년은 영국에 프랑스 문화가 전면적으로 퍼지는 분기점이 되었다.

서쪽과 남쪽으로 향한 바이킹이 노르웨이 출신이었다면, 동부로 떠난 바이킹은 주로 스웨덴 출신이었다. 9세기 후반 류리크(Ryurik)라는 바이킹이 러시아 서부의 노브고로트를 지배하게 된 사건을 계기로 수많은 바이킹이 키예프를 포함한 슬라브계 영토로 쏟아져 들어갔다. 이들을 루스(Rus)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러시아의 기원이 된다. 루스는 러시아의 중추적 지배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무역에 관심이 많았으므로, 강줄기들을 타고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찾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드네프르 강을 따라 흑해까지 가서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이르기도 했고, 볼가 강을 따라 카스피 해에 도착하여 이슬람 상인들과 거래하기도 했다.

그림 3 올라우스 마그누스, 『북방민족의 역사』, 1555년.
종려나무처럼 큰 키에 얼굴 붉은 사람들
그림 3은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바이킹 무역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웨덴 작가 올라우스 마그누스(Olaus Magnus)가 기술한 『북방민족의 역사』에 등장하는 그림이다. 강을 운항하다 육지를 만나면 짐을 내리고 배를 끌어올려 육상에서 운반하는 강인함을 보여준다. 한 이슬람 역사서는 이들을 ‘종려나무처럼 큰 키에 머리는 금발이고 얼굴은 붉은’ 사람들이라고 묘사했다. 바이킹은 종종 약탈을 자행하기도 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교역이 이들에게 더 중요한 활동이었다. 서유럽과 이슬람세계를 잇는 중요한 통로였던 비잔틴제국과 슬라브 지역에서 바이킹은 경제적 교류의 주체로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들은 은·비단·향신료·와인·도기 등을 구매하고 모피·주석·꿀·바다코끼리 상아 등을 판매했다. 노예도 중요한 교역품이었다. 바이킹이 없었더라면 유럽 전 지역을 단일한 무역망으로 묶는 국지적인 세계화는 달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메리카에 도착한 바이킹들은 훗날 어떻게 되었을까? 탐험대장 에릭손은 상륙한 이듬해에 고향 그린란드로 돌아갔다. 이후 이민을 희망하는 그린란드 사람들이 빈란드로 옮겨가 정착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새 정착생활은 20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그곳에 이미 살고 있던 원주민들과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아메리카는 원주민들이 살아온 터전이었지 유럽인이 ‘발견’할 대상물이 아니었다. 바이킹 이주민들은 그들이 스크라일링(못생긴 사람)이라고 부른 원주민들과의 전투에 지쳐 결국 그린란드로 철수하고 말았다. 수 세기 동안 유럽 곳곳을 호령하고 뛰어난 항해술로 아메리카에까지 도달했던 바이킹은 11세기부터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송병건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제사학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세계경제사 들어서기』(2013) 『경제사:세계화와 세게경제의 역사』(2012) 『영국 근대화의 재구성』(2008) 등 경제사 관련 다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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