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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10대와의 대화법

“요새 학교 다니는 것 어떠니?”
“몰라.”
“뭘 몰라?”
“모르겠으니까. 그냥 짜증 나. 몰라.”

얼굴 보기 힘든 10대 딸과 대화를 해 보려고 일요일 아침 아빠가 말을 붙여본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이렇다. 무색해진 아빠는 묵묵히 밥을 먹는다. 다음 반응은 대개 두 가지다. 용돈이라도 줘 환심을 사는 유형과 성적 문제를 파고들어 일요일 아침을 망치는 자폭 형이다. 엄마도 10대가 된 아이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재잘재잘 말 잘하던 아이의 말수가 줄어든다. 특히 과묵 형으로 바뀐 아들은 방에서 나오지 않아 생각을 통 알 수 없다.

나도 사춘기가 시작된 딸과 얘기하는 일이 무척 힘들었다. 대화의 물꼬를 터 보려고 질문을 하면 위와 같이 단답식 반응을 보이거나 피하기 일쑤였다. 나름 말하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전문가인데 내 아이의 마음과 입을 열게 하는 것은 역시 힘든 일이었다. 고민을 해본 결과, 내 방식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에게 질문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부모는 아이의 삶이 궁금하다. 그리고 학교 생활은 어떤지, 친구들과 잘 지내는지 알고 싶다. 그건 부모의 마음일 뿐, 아이는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춘기가 되면 부모는 감시를 하고, 잘못된 걸 찾아내려는 존재라 여긴다. 그래서 자기 삶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는 청소년기의 자연스런 현상이다. 알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 부모의 욕구와, 자기 세계를 확보하고 싶은 10대의 욕구는 서로 불일치하면서 소통은 엇나간다.

일러스트 강일구
10대와 대화를 하려면 질문이 아니라 내 얘기를 해야 한다.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 주는 차 안이나 밥을 먹으면서 그냥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내가 본 환자 얘기, 전공의들과 있었던 일들, 선배 교수와 있었던 소소한 긴장을 들려줬다. 처음엔 심드렁해하던 아이는 차차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빠도 힘들 때가 있고 사회생활이 꽤나 복잡하며 남한테 고개를 숙여야할 때도 있다는 것이 신기했나 보다. 내 얘기를 들은 아이는 마침내 자기 생각이나 자기 친구들과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 같이 10대 자녀에겐 부모 자신의 고민이나 삶을 얘기하는 것이 좋다. 아이는 이를 통해 사회생활을 간접 경험하고, 부모를 부모가 아닌 한 명의 또 다른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다. 할머니의 생신 모임 장소를 정하는 것 같은 가족 내 대소사를 함께 상의하는 것도 좋다. 어디서 할지, 참여범위 등에 대해 부모는 고민을 얘기하고, 아이는 의견을 내면서 자신도 발언권이 있는 사람으로 참여했다는 인식을 한다. 부모에겐 아이가 의외로 생각이 깊다는 걸 알 기회가 된다. 다만 이때 부모가 사는 얘기를 하거나 가족 일을 말하는 것이 신세한탄이나 누구를 원망하는 형태가 돼선 안 된다는 것만 조심하면 된다. 자칫 아이가 부모 마음 안 응어리의 배설구가 돼 버릴 수 있어서다.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질문보다는 부모가 자신의 일상을 들려주는 것이 10대의 아이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하고 서로 교감을 나누는 데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다. 아이는 자기를 대화상대로 인정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부모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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