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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동 칼럼] 아름답지 못한 세상을 덮는 순결한 선율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의 포스터. 돼지로 변한 비행정 조종사 마르코와 지나. [스튜디오 지브리]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75)의 팬이 된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청계천에서 불법 복제한 VTR테이프를 14인치 브라운관 TV로 처음 봤으니 까마득한 옛날이다. 정품 DVD를 구입해 널따란 LCD TV로 다시 봤을 때의 감동도 오래 전 일이다. 나의 고향을 꼭 닮은 일본 농촌마을이 무대지만 밤이 되면 봉제인형 같은 토토로가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고, 푹신하게 생긴 고양이 버스가 사츠키, 메이 두 자매를 태우고 어머니가 입원한 요양원까지 바람처럼 달린다. 볼 때마다 콧날이 시큰해진다.

[an die Musik] 애니 ‘붉은 돼지’의 주제곡

하야오의 작품들은 인문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중학생 시절 『걸리버 여행기』를 읽으면서 상상했던 하늘을 나는 섬나라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창조해, 보는 내내 감탄과 당혹으로 범벅이 됐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도 매혹적이다. 나우시카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로 트로이전쟁을 마치고 지중해를 방랑하는 오디세우스를 집으로 가도록 도와주는 섬나라 공주다. 하야오는 이 캐릭터를 인류문명이 멸망한 먼 미래에 등장시켜 인간세상을 돌보게 한다.

사실적인 묘사는 감탄을 자아낸다. 그의 작품에는 여러 종류의 비행기가 등장하는데 기계적 구조와 작동 원리, 심지어 비행기술까지 알아야 그릴 수 있는 장면이 허다하다. 은퇴작품이 된 ‘바람이 분다’는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제로전투기 개발과정을 그렸다. 군국주의 찬양이라는 오해를 무릅쓰고 가미카제 특공대의 관(棺)이 된 비행기를 소재로 삼았는데, 비행기 오타쿠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가장 여러 번 본 작품은 ‘붉은 돼지’다. 묘한 제목의 이 작품에는 작가가 좋아하는 것 세 가지가 등장한다. 비행기와 이탈리아, 그리고 돼지다. 때는 1929년, 장소는 이탈리아다. 인류가 경험한 최대의 비극인 1차 대전이 끝난 지 겨우 10년인데 인간들은 다시 전쟁을 준비한다. 파시즘이 득세하고 깃발 펄럭이는 거리를 무장 퍼레이드가 지나간다. 주인공 마르코는 이탈리아 공군 파일럿 출신으로 전쟁 영웅이지만 파시즘이 싫어 마법을 걸어 돼지가 되었다. 그러나 직업은 여전히 파일럿이다. 명예와 여자, 그리고 돈을 위해 공적(空敵)과 싸우는 비행정 조종사다.

‘이웃집 토토로’의 캐릭터들.
활동무대는 아드리아해다. 파란 바다에 황금빛 낙조가 드리워지는 천국 같은 곳이다. 바다 가운데 조그만 섬이 있고 그곳에는 아담한 아드리아노 호텔과 카페가 있다. 주인은 아름다운 여인 지나, 손님 중에는 아드리아해의 무법자인 비행정 조종사들도 많다. 국가와 법률 따위 귀찮다는 무정부주의자들이지만 누구도 진짜 악당은 아니다.

영화 후반에서 돼지 마르코는 미국인 커티스와 한바탕 공중전을 벌인다. 죽음을 각오하고 맞붙지만 ‘전쟁을 벌이지는 않는다’. 마르코는 상대의 후미를 잡고도 실탄을 발사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대결은 비행기를 내려서 주먹싸움으로 마무리된다. 물론 주인공 마르코가 이겨서 해피엔드로 끝나는데, 이 장면을 보고 하야오의 말을 믿게 되었다. 제로전투기 이야기에 군국주의 찬양의 의도는 전혀 없다는….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것은 평화와 자연이다.

이 작품을 반복해서 보는 것은 멋진 음악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 노래가 흘러나온다. 영화의 첫 장면, 아드리아해 한 섬에 있는 마르코의 은밀한 아지트. 빈 와인병과 담배꽁초가 나뒹구는 테이블 위에서 낡은 라디오가 혼자 노래 부른다. 남자 음성인데 곡조를 새겨듣기 힘들만큼 흐릿하다.

마르코가 한바탕 활약을 펼치고 난 다음 석양의 하늘을 날아 카페 아드리아노로 향할 때 다시 음악이 흐른다. 이번에는 지나가 부른다. 짧은 피아노 전주에 이어 매력적인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 음색은 카푸치노 같고 선율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카페를 메운 불한당들이 순한 양이 된다. 노래가 흐르는 동안 마르코의 비행정은 둥지를 찾아드는 새처럼 카페 아드리아노로 향하고 지나는 그리운 이를 부르듯 노래를 이어간다. 음악이 끝나기 전에 마르코는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채 3분이 안 되는 이 장면을 나는 가장 좋아한다.

처음 듣고 참 좋다고 생각했지만 노래에 대해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긴 세월이 흘렀다. 영화를 위해 만들었는지, 원래 있던 곡을 사용한 것인지, 누가 불렀는지…. 재작년 한 모임에서 ‘붉은 돼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 게으른 학생 귀찮은 숙제하듯 이야기를 꺼냈다. “멋진 음악인데 누가 만든 노래인지 모르겠어요.”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가 기다린 듯 말했다. “아, ‘버찌가 익어갈 무렵(Le Temps des Cerises)’이라는 곡인데요. 샹송이죠.” 고개를 들고 새삼스레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전까지는 아는 사람이었으나 그 순간에 친구가 되었다.

친구는 ‘붉은 돼지’에서 이 노래를 사용한 이유를 따져본다. “1871년 보불전쟁 패배 후 프랑스 시민과 노동자 계급이 세운 자치정부인 파리 코뮌에 음악이 헌정된 바 있습니다. 파리 코뮌의 이상이 저항과 자유였으니 아드리아해 무정부주의자들을 그린 영화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진지한 탐구다. 그러나 유래를 몰라도 노래는 자체로 아름답다. 노랫말은 핏빛 혁명으로도, 붉은 사랑으로도 읽힌다. 요즘도 단골 카페에서 피아노 전주가 흐르면 대화를 멈추게 된다. 세상의 아름답지 못한 것들을 흰 눈처럼 덮어버리는 지나의 목소리.

‘버찌가 익어갈 무렵’을 부른 사람은 많다. 나나 무스꾸리도, 이브 몽땅도, 파리나무십자가 합창단도 불렀다. 그러나 나는 일본 가수 가토 도키코가 부른 ‘붉은 돼지’ OST가 젤 좋다. 첫 정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이렇다. ‘버찌가 익을 무렵이면/쾌활한 나이팅게일과 개똥지빠귀는/신이 나 흥겨워지고/아름다운 아가씨들의 가슴은 터질듯 부풀고/연인들의 가슴은 뜨거워진다네.’ 벚꽃은 바람에 흩어졌다. 버찌가 여물어 갈 무렵이다.


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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