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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형 지도자 되는 길

국가들이 어떤 연유로 흥망성쇠의 서로 다른 경로를 보이는가에 대해서는 동서고금의 많은 식자들이 다양한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어떤 이들은 국가가 처한 지정학적 위치가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답했다. 다른 이들은 국가가 선택하는 제도와 정책의 차이가 발전과 쇠퇴를 갈랐다고 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흐름을 보면 아놀드 토인비가 지적했듯이 창조적 소수자, 즉 지도자의 비전과 능력 여부가 그 못지 않은 중요한 결정요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불리한 지정학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가 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최고 수준의 발전과 번영을 누리게 된 것은 고 리콴유 총리의 리더십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들 간의 접촉과 교류가 증대되고 국가들의 상호의존도도 커진 21세기 국제질서에서 이제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국가이익만 추구해서는 위대한 리더십으로 평가받을 수 없게 되었다. 국가이익을 구현하면서 동시에 타국의 이해와 지지도 획득할 수 있는 비전제시와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일관되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재균형 전략’을 표방하면서 한국·일본·호주·필리핀 등 동맹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아세안이나 동아시아 정상회의와 같은 역내 다자간 기구들에 대한 적극적 관여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러한 비전을 바탕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외교는 적대국과의 사이에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미얀마·쿠바·이란 등 그간 소원하였던 국가들과의 관계를 극적으로 정상화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관여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동시에 세계 최강인 미국의 국력수준은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오바마 독트린으로 인해 미국의 글로벌 위상은 더욱 굳건해지는 느낌이다.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도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 주도 하에 국제사회와의 윈윈 외교를 적극 표명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28일 보아오 포럼의 연설에서 시 주석은 ‘아시아 운명공동체’ 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및 일대일로(一帶一路)의 구상, 그리고 한·중·일이 포함된 아시아 경제공동체의 실현구상을 표명하였다. 이 구상은 낙후된 중국 서부지역의 경제개발을 견인하겠다는 국가이익적 측면과 아울러 미국과의 직접 대결을 회피하면서 국제협력 네트워크를 확대하겠다는 국제공동이익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취임 이후 ‘국제협조주의에 기반한 적극적 평화주의’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경제부흥과 안보역할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4월 말로 예정된 미 의회 연설에서도 이 같은 입장이 표명될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일본 지도자들은 역사인식이나 영유권 문제에 관해 지나치게 국수주의적 입장을 취함으로써 오히려 이웃 국가인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요컨대 국가뿐 아니라 지역질서 전반에 대해 공생공영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21세기 지도자들의 경쟁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러한 지도자를 가진 국가는 발전이 기약되고 국제사회에서도 존경을 받게 되지만 그러하지 못한 지도자의 국가는 쇠퇴의 길을 갈 수 있다. 러시아의 승전기념 퍼레이드 등 기념비적인 행사들이 즐비한 4월 말과 5월 초, 우리의 지도자들은 어떤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던지게 될 것인가. 배타적인 국가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일대일로’와 같은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거나 ‘적대국과의 외교도 불사’하는 리더십을 보고 싶다.



박영준 일본 도쿄대 국제정치학 박사. 미국 하버드대 US-Japan 프로그램 방문학자. 주요 저서로는 『해군의 탄생과 근대 일본』『제3의 일본』『안전보장의 국제정치학』(공저), 『21세기 국제안보의 도전과 과제』 (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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