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박정희 잘 안다" 김일성 남파 승인 … '밀사'로 자처했지만 간첩죄로 처형

황태성과 친구였던 박정희의 셋째 형 박상희.
황태성은 1961년 55세 때 남파된다. 그 이전 행적은 여러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일제시대 경기도 경찰부가 작성한 ‘감시대상 인물카드’와 신문 기사, 그리고 육군고등군법회의 파기환송심 판결문(63년 7월)을 통해서다.

 황태성은 1906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기록에 따르면 23년 경성제1고보(현 경기고) 4학년 때 ‘일본인 교장 배척운동’을 주도해 퇴학당했다. 24년 연희전문(현 연세대)에 입학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이듬해 중퇴했다. 김민하씨는 “상주 산골에서 전국 수재가 모인다는 제1고보에 들어갈 만큼 머리가 좋은 엘리트였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경북 김천으로 내려와 정착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사회운동에 뛰어들었고 독립운동을 벌였다. 27년 김천청년동맹 집행위원이 됐고, 신간회 김천지회 간부로 활동했다. 그는 26년 조선공산당(25년 결성, 28년 해체)에 입당했다. 그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등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다. 해방 직후 남로당이 부활하자 경북 조직부장을 맡았다.

 46년 10월 1일 대구 사건이 발생하자 황태성은 배후 주동자로 지목됐다. 검거를 피해 서울·개성을 거쳐 북한으로 넘어갔다. 이후 해주 인쇄소 총무국장과 상업성 지방산업관리국장 등을 거쳐 무역성 부상(52~55년)에 올랐다. 49~56년엔 노동당 중앙위원을 지냈다.

 판결문과 김민하씨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61년 5·16 직후 노동당 부위원장인 이효순(대남사업 담당)을 만났다. 그는 “박정희는 나를 따랐으며 잘 아는 사이다. 남파시켜주면 박정희와 만나 남북 협력 문제를 협의하겠다”고 건의해 당중앙위원회 승낙을 받았다. 그는 이효순과 함께 김일성을 공관에서 직접 만나기도 했다. 황태성은 8월 29일 평양을 출발해 임진강을 건너 휴전선을 넘어왔다. 검거 뒤 그는 줄곧 밀사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간첩죄로 처형됐다.

정리=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