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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사랑이 지나가면

주 철 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사랑이 이만큼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봄날은 간다’. 오래전 영화 포스터(유지태·이영애 주연의 ‘봄날은 간다’)에서 읽은 문구다. 동영상 사이트에서 마지막 장면을 다시 본다. “(여) 우리 헤어지자. (남) 내가 잘할게. (여) 헤어져. (남) 너 나 사랑하니? (남 침묵 후)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남 힘없이) 헤어지자.” 마음을 바꾼 걸까, 말을 바꾼 걸까, 아니면 사랑하기에 헤어져 주는 걸까. 애초부터 서로 원하는 게 달랐던 건 아닐까.

 한국에서 동일한 제목으로 가장 많이 만들어진 대중가요는 ‘사랑’도 아니고 ‘이별’도 아니다. ‘가요무대’에서 발표한 정답은 ‘짝사랑’이다. 최근에 나온 ‘짝사랑’만 해도 2개나 된다. “그대의 표정이 너무 차가와서 나의 말은 닿기도 전에 얼어붙네.”(10㎝가 부른 ‘짝사랑’) “꽤 오래된 것만 같아 널 몰래 좋아했던 나.”(산들이 부른 ‘짝사랑’)

 “그런 가수도 있어?” 유행과 멀어졌다고 비감에 젖기엔 이르다. 세대별 맞춤 짝사랑이 즐비하니까.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고복수가 부른 ‘짝사랑’) “왜 그런지 가슴이 두근거려요 그녀만 보면 그이만 보면.”(바블껌이 부른 ‘짝사랑’)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난 아직 몰라 난 정말 몰라.”(주현미가 부른 ‘짝사랑’)

 혼자 앓다가 저절로 치유되는 짝사랑도 흔하다. 돈도 절약되고 문학적 상상력은 증대된다. 상처로 남는 짝사랑이 문제다. 사랑이라 믿었는데 상대는 사랑이 아니라고 확인해 준다. 그것도 여러 사람 앞에서. 이루지 못한 짝사랑은 허공을 떠돈다. 그 배신감은 생사의 경계를 허물기도 한다.

 대한민국을 흔드는 리스트 파문을 보며 나는 짝사랑의 대상이 부르면 어울릴 가사를 찾아냈다. 이문세가 부르고 아이유도 리메이크했던 불후의 명곡 ‘사랑이 지나가면’. “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중략)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

 『새벽빛』이라는 자서전을 낸 기업인은 새벽빛 속에서 누군가를 찾아 헤맸다. 그 장면은 고스란히 폐쇄회로TV(CCTV)에 남았다. 그리고 ‘손잡을’ 사람이라 여겼던 마지막 희망의 리스트는 마침내 ‘손볼’ 사람 명단이 적힌 원망의 리스트로 바뀌었다. 그렇게 속절없이 사랑은 지나갔다. 이제 교훈을 말할 차례다. 그는 혼동했다. 사랑은 사업이 아니었다. 가짜는 있어도 공짜는 없었다.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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