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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디자인을 넘다-조항수 다음카카오 부사장

‘카카오’라는 브랜드의 초콜릿색 말풍선, 그리고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서도 눈길을 잡는 노란 바탕. 자연에 없는 추상적 기호 말풍선으로 대화와 소통을 상징한 카카오톡은 국민 모바일 메신저로 자리잡았다. 조항수 다음카카오 부사장을 말풍선 속에 넣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조항수 다음카카오 부사장

 

빼는 게 그의 일이다. 한 발 물러서서 두 발 나아간달까. 조항수(40) 다음카카오 부사장 얘기다. 3년 전 카카오에 합류해 카카오톡 앱 아이콘에서 ‘KAKAO’라는 브랜드를 포함한 디자인 요소들을 지우고 갈색 말풍선 안에 ‘TALK’라는 단어만 남겼다. 음표가 들어간 말풍선(카카오뮤직), 플레이 버튼의 삼각형을 닮은 ‘P’(카카오페이지), 도로 모양의 ‘T’(카카오택시)도 그가 디자인에서 추구하는 일관성을 보여준다.

추상화된 기호로 모바일 영토를 넓혀 가는 그를 최근 판교의 다음카카오 수도권 통합본부에서 만났다. 직위에 관계 없이 서로 영어 이름을 부르는 이 회사에서 그는 ‘한스’로 통한다. 역할은 카카오 디자인 부문 총괄이자 다음카카오의 마케팅 총괄 겸 브랜드 팀장. 밖에서는 그를 부사장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10월 다음과 합병한 후 직원 수 200여 명이던 카카오는 3500여 명(자회사 포함) 규모 회사가 됐다. 그의 삶과 작품 세계는 '추상' '뺄셈' '애어른'이란 키워드로 요약된다.



# 1. 추상



“말풍선은 현실에 없는 기호다. 초기 메신저들이 입술ㆍ전화기 등 구체적 사물을 아이콘으로 삼은 것과 다르다. 대화ㆍ소통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기호로 만든 것이 서비스 확장에 주효했다. 이후의 카카오 서비스에도 추상화된 상징들을 주로 사용했다.”

230여 개국 1억7000만 명(카카오톡 누적 가입자)의 스마트폰ㆍ컴퓨터에 깔려 있는 노란 말풍선에 대한 설명이다. 자연에는 없던 인간이 만든 추상적 기호들로 모바일 시장을 잡았다.



조 부사장은 2012년 6월 카카오에 합류했다. 카톡 채팅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모티콘 ‘카카오프렌즈’가 그의 기획. 토끼옷을 입은 단무지 ‘무지’, 작은 발을 감추려 오리발을 신은 소심한 오리 ‘튜브’ 등 현실에는 없지만 개성이 뚜력한 캐릭터를 내놓았다. “김범수 의장은 캐릭터가 못생겼다고 싫어했지만 반대는 안 했다.” 배경화면 서비스, 인형ㆍ쿠션, 캐릭터빵ㆍ치약 등 채팅방 밖으로 나온 이모티콘은 돈 되는 효자 상품이 됐다.



# 2. 뺄셈

그에게 디자인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것.” 2008년 디자인센터장으로 NHN에 합류했을 때 처음 맡은 미션은 독서 캠페인 ‘책 읽는 스타벅스’의 폐지였다. 없애는 대신 명사들의 책 소개 시리즈 ‘지식인의 서재’를 만들었다. “검색 결과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게 네이버의 중요한 브랜드 미션이었다. 지식인들에게 영감을 준 책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는 일이 베스트셀러 위주의 도서 소비 패턴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제로 ‘지식인의 서재’를 통해 박찬욱 감독, 가수 이적이 소개한 『관촌수필』이 때아닌 품절 사태를 빚기도 했다.

카톡의 노란 말풍선을 처음 만든 이는 이 회사 디자이너 김철유씨다. 조 부사장은 카카오 합류 후 말풍선에서 ‘TALK’ 외에 다른 디자인 요소를 걷어냈다. 카메라 모양이던 카카오스토리(모바일 SNS)의 아이콘은 작은 따옴표 혹은 아포스트로피(‘)로 바꾸며 ’나의 이야기‘를 표방했다. 지난해 다음카카오 합병 후 내놓은 통합 CI에서도 그의 뺄셈 미학이 두드러진다. 흰 바탕에 먹색(차콜그레이) 로고를 내놓았다. 새로 개발한 카카오서체로 만든 소문자 로고로, 글자 외에 다른 디자인 요소는 뺐다. “다음과 카카오가 주인공이라면 다음카카오까지 ‘나도 있어요’ 할 필요는 없다. 두 브랜드를 잘 받춰주면서 혁신ㆍ젊음이라는 장기지향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소문자로 사명을 표기했다.”



# 3. 애어른

1975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화랑(당시로서는 표구사)을 운영했다. 집에 호랑이ㆍ대나무 그림이 많았다. 계원예고 재학 중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으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 빨리 시작됐다. 1994년 서울대 산업디자인과에 진학했다. 인터넷의 보급과 대중문화의 만개를 경험한 세대다. 재학 중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며 가수 성진우ㆍ주영훈ㆍ임상아의 앨범 재킷을 만들었다. 졸업 전에 디자인 회사(디픽셀)를 창업했다. 웹디자인 수요도 많을 때였다. 홈페이지ㆍCI를 새로 만들어 달라는 고객들에게 “로고만 바꾼다고 브랜드가 바뀌지 않는다”고 설득하며 스스로도 브랜드 관리에 눈떴다. 32세에 결혼해 초등생 두 딸의 아빠이기도 하니, 남들보다 앞자리에서 줄곧 달려온 셈이다. “디자인은 브랜드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신중한 사람들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끼, 타고난 감각은 덜 믿는 편이다.” 그의 꿈은 오래 갈 IT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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