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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생명의 가치는 얼마인가

2010년 미국 정부기관들은 ‘생명 가치’를 상향 조정했다. 환경보호국(EPA)은 1인당 생명 가치를 910만 달러(약 98억 원)로 680만 달러에서 30% 이상 올렸다. 식품의약국(FDA)은 500만 달러에서 790만 달러(약 85억 원)로, 교통부는 350만 달러에서 610만 달러(약 66억 원)로 대폭 올렸다. 10년 가까이 제자리에 머문 가치에 물가·임금 상승 등을 반영한 것이다.

미 정부는 ‘목숨값’을 수치화해 규제 및 정책 도입의 타당성을 따진다. 당시 EPA는 910만 달러를 기준으로 대기오염 규제안을 제출했고, FDA는 790만 달러를 제시하며 폐암 환자 사진을 담뱃갑에 싣기로 결정했다.

교통국은 차량 지붕 안전기준을 강화했다. 2005년 부시 행정부가 거부했던 안(案)이다. 매년 차량 전복사고로 약 135명이 숨지는데, 350만 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목숨값’보다 업계가 치를 비용이 더 든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안전기준을 낮춘 수정안이 만들어졌다. 생명 가치가 높아지면서 계산은 달라졌다. 기업의 비용보다 목숨값이 비싸지면서 안전기준은 강화됐다.

미 정부가 조정한 생명 가치의 근거는 경제학자인 키프 비스쿠시 밴더빌트대 교수의 연구다. 그는 1970년대부터 ‘통계적 생명 가치(statistical value of life)’를 산출했다. 근로자의 사망 확률을 줄이기 위해 고용주가 얼마를 지불할 수 있는지 계산한 수치다. 시간이 흘렀지만 2004년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비스쿠시 교수가 조사한 각국의 ‘통계적 생명 가치’를 보도했다. 일본이 1000만 달러로 1위였고, 미국(700만 달러)·스위스(600만 달러)·호주(400만 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은 100만 달러에 못 미쳤다.

생명의 가치는 얼마일까. 이 질문은 철학의 것이라 여겨지거나,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는 비판을 받기 쉽다. 하지만 비스쿠시 교수에 따르면 생명의 가치는 곧 안전에 대한 투자 비용이다.

세월호 침몰은 믿을 수 없을만큼 불행한 사고였다. 이후 관리·감독 강화 및 안전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안전에 투자하는 것보다 배·보상 등 사고 처리에 드는 비용이 적다면 어떤 제도가 있다 한들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이달 초 정부는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배·보상금 지급안(1인당 8억~11억원)을 발표했다. 이 시점에 보상을 논의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많고, 유가족들은 “자식을 잃었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냐”며 보상금보다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다. 철저한 조사는 반드시 필요하고, 유가족에겐 진심 어린 위로가 절실하다. 동시에 돈으로 배·보상을 받는 것 역시 마땅한 일이다. “돈으로 보상하는 게 정답이 아니다”는 말은 일견 옳아 보이지만,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유가족에 대한 배·보상 액수가 적절한지 차분히 논의해야 한다. 유가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또 다른 세월호를 탈 지 모르는 남은 이들을 위해서다. 그 액수가 바로 값싸게 후려쳐져 온 우리의 생명 가치이기 때문이다.


홍주희 사회부문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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