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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는 세상과 들리는 세상 잇는 통역사

언어가 되지 못한 소리. 지금은 스물여섯 살이 된 소녀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었던 소리는 불완전했다. 다른 부모들이 아이를 향해 박수를 치고 이름을 불러댈 때, 소녀의 부모는 양손을 눈 높이에서 좌우로 팔랑팔랑 흔들며 까르르 웃는 소리를 대신했다. 아기는 부모를 따라 입이 아닌 손으로 옹알이를 했고, 자라서는 입말을 하지 못하는 부모의 입과 귀가 되었다. “나는 9살에 은행에 전화를 해 우리 집 빚이 얼마나 있는지 부동산에 월세와 보증금을 묻고 통역을 해야만 했다”는 독백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부모의 장애를 알리고 설명해야만 했다. 들리는 세상과 들리지 않는 세상은 통역자가 필요했다.

23일 개봉하는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이길보라(25)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다. 다큐멘터리는 주인공인 청각장애인 부모 이상국(54)ㆍ길경희(50)씨만을 비추지 않는다.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건청인(정상청력자) 자녀인 이길 감독과 동생 광희(23)씨의 시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4년 전 친구로부터 들은 단어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가 단초가 됐다.

“그 단어를 듣자마자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동안 단순히 ‘우리 부모님이 장애가 있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문화가 있다는 생각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해 왔는데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였던 거죠. 이름이 있다는 건 그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방대한 자료가 축적되고 있단 뜻이잖아요.”

새로운 단어의 등장은 시야를 넓혔다. 아버지와 함께 찾은 청각장애인 세계 엑스포와 거기서 만난 미국 갤러댓대학교(Gallaudet University)는 다큐 제작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됐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세워진 갤러댓대는 공용어 자체가 수화예요. 장애인이든 비 장애인이든 모두 수화로 이야기해요. 수화를 하지 못하면 되려 장애인이 되는 거죠. 저도 미국 수화를 몰라 한마디도 할 수 없었어요.” 한국에서 부모님이 늘 겪던 일을 20여 년 만에 처음 경험한 것이다.

활짝 열린 감각은 영화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1989년 부모님의 결혼식부터 두 자녀가 커 나가는 모습이 담긴 홈 비디오는 현재의 이야기와 자연스레 맞물린다. 모든 장애인은 불쌍하고 그 자녀는 착해야 한다는 세상의 편견은 굳건했지만 이들은 두 세계를 쉼없이 오가며 이를 극복해간다. 음소거된 TV화면처럼 익숙하지 않은 화면은 감독의 일기장을 오려붙인 자막이나 풀밭을 배경으로 펼쳐진 수화로 채워진다. 손끝을 따라 펼쳐지는 풍부한 표정 덕에 오히려 화면이 부족해 보일 정도다. 처음엔 다소 어색하게 들렸던 언어가 되지 못한 소리 또한 이내 정겨워진다. 엄마 경희가 ‘애모’를 소리내 부르고 아들 광희가 손으로 따라 부르는 노래방 장면처럼 그들만이 빚어낼 수 있는 특별한 하모니 덕분이다.

지난해 장애인영화제 대상을 비롯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다큐멘터리 옥랑문화상 관객상 등 이어지는 상복은 남들보다 일찍 어른이 돼야 했던 감독의 관찰력에서 나오는 듯하다. 이미 16살 때 고등학교 자퇴 후 8개월간 떠난 동남아시아 여행을 ‘로드 스쿨러’(2008)라는 작품으로 담아낸 경험이 있다. 그때도 힌트는 새로운 단어였다. 주변인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 그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극성맞은 부모가 연상되는 ‘홈스쿨러’나 온갖 비행을 저지르는 ‘탈학교 청소년’이란 단어가 거리에서 삶을 배우는 자신에게는 맞지 않다고 판단해 ‘로드 스쿨러’라는 조어를 만들어낸 것처럼 우리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단어를 던져줄 것만 같은 기대감이랄까. 로드 스쿨러들이 모여 스스로 워크숍 일정을 짜고 코다가 연합해 비슷한 학생들을 위한 캠프를 준비하는 등 작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걸 보면 그저 헛된 꿈만은 아닐 성싶다.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KT&G 상상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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