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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 조선 장인정신의 극치

나전화조어해문문갑(부분)
나전화조어해문문갑, 조선 19세기, 88.6×31.0×42.1㎝ 전형적인 두껍답이문 문갑과 달리 위와 아래에 서랍이 있고, 중앙에는 개방형 공간이 마련돼 있다. 모란, 철쭉, 국화 등이 가득 꾸며져 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목공예품이 있다. 아무 장식 없이 틀만 잡아놓아 백골 혹은 목심이라고 불린다. 사각상자, 문함, 패물함, 빗접, 경대, 연초합, 필통, 문갑, 반짇고리, 사각반, 이층농, 이층장, 반닫이장 등 종류도 다양하다.

여기에 옻칠을 한 것을 칠기(漆器)라고 부른다. 보통 검은 색인 흑칠(黑漆)을 많이 하지만 궁중에서는 붉은 주분을 넣어 칠한 주칠(朱漆)을 선호했다. 이 목심칠기에 전복 껍데기를 오려내 붙이거나 박아넣은 것을 나전(螺鈿)이라 한다. 사군자·모란·십장생·용·봉황·호랑이·박쥐 같은 문양과 기쁠 희(喜)자 같은 길상문자 장식이 형용하기 힘든 오묘한 빛을 낸다.

나전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색다른 장식 기법도 등장했다. 바다거북 등껍질을 이용한 대모(玳瑁), 상어 가죽을 사용하는 어피(魚皮)다. 얇게 켜 낸 소뿔로 화려하게 채색하는 화각(華角)도 빼놓을 수 없다. 이쯤 되면 가히 종합예술이다.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이 신사분관에서 열고 있는 ‘조선의 나전-오색찬란’(6월 30일까지)은 조선 나전칠기의 현란한 아름다움을 본격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자리다. 4월 말까지 열리는 1부에서는 나전칠기의 정수를 느끼게 하기 위해 호림박물관 소장품은 물론 국립중앙박물관·국립고궁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서울역사박물관·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 등 다른 기관 소장품까지 빌려와 밀도를 높였다. 5월 초부터 시작되는 2부 전시에서는 이층농 같이 스케일이 큰 작품들이 박물관 소장품 위주로 전시된다.

이칠용(69) 사단법인 한국공예예술가협회 회장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새삼 느낀 우리 나전칠기의 아름다움에 관해 글을 보내왔다.

나전포도문옷상자(부분), 소나무로 만든 상자에 굵은 베 헝겊을 바른 다음 나전으로 무늬를 넣었다. 풍성한 포도송이와 줄기를 끊음질을 이용해 표현했지만 균열을 찾아볼 수 없다. 크기로 보아 관복을 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1일 오후 서울 도산대로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전시관 2, 3층에는 적막이 흘렀다. 침묵과 고요 속에 묻혀 있노라니 마치 외딴 섬 동굴 속에 와 있는 기분이다.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깊고 으스스한 동굴에는 으레 금은보화가 가득 숨겨진 ‘보물창고’가 있다. 그렇지! 난 지금 보물창고에 와 있는 거다.

전시관 안에는 400~500년 동안 내면적 아름다움과 고혹적인 순수함을 감춰온 보물들이 서로를 시샘하듯 뽐내고 앉아 있다. 어느 것에 먼저 눈길을 줘야 할지 망설여질 정도다.

‘코리아 머더 오브 펄(Korea Mother-of-pearl)’이라는 말이 있다. 펄은 진주요 진주는 곧 보석이다. 이 ‘진주 보석의 어머니’라는 말은 ‘나전칠기’에 붙여진 위대한 닉네임이다. 우리가 스스로 붙인 게 아니라 서양인들이 붙여준 명칭이기에 더욱 뜻 깊다.

한국인들은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저팬(japan)’의 뜻이 일본뿐 아니라 ‘옻칠을 하다: 옻칠의 나라’라는 의미인 것을. ‘차이나(china)’라고 하면 중국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곧 ‘도자기의 나라’를 의미한다는 것을.

서양인들은 15~16세기의 동양 삼국 중 한국을 나전칠기, 일본을 칠기, 중국을 도자기의 나라로 알고 있었다. 이 소중한 역사적 기록이자 의미를 우리네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면서 문화진흥, 문화융성, 문화 선진국을 읊조리고 있는 것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하여 지금 난 수백 년 동안 잠자고 있는 ‘진주 보석의 어머니’들로 가득한 보물창고에 들어와 있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전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정신적 희열이 충만해지는 바로 이곳에.

유럽에선 국보급 극찬, 한국에선 여전히 홀대
고려시대 제작된 나전칠기를 비롯해 조선의 나전칠기는 세계 경매 시장에서 엄청난 가격으로 세인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특히 영국·프랑스·독일·덴마크·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동양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는 국보급 보물로 극찬받고 있다.

그에 비해 정작 대한민국에서는 홀대를 받거나 무시당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그저 ‘자개장농’이나 ‘옻닭집’에 대해선 잘 알고 있어도 기원전 2~3세기부터 옻칠을 사용했고, 고구려 벽화가 옻칠로 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제작된 ‘경함’의 가격이 수백억 원을 호가 할 수 있다는데 대해선 너무나 무관심하다. 왜 그럴까. 너무 많이 보아서 그럴까. 아니면 이미 잘 알고 있는데 구태여 뭘 더 논하려고 하느냐 하는 의미일까.

전시장 2층과 3층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작품’들을 보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일본과 중국의 침략 전쟁과 일제 강점기 본격적인 민족 말살정책에도 이렇게들 살아남아 있어 고맙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건 그렇고 이왕 보물창고에 들어왔으니 서서히 보물사냥이나 해볼까. 우선 ‘나전국화모란매화문상자’나 ‘나전포도문옷상자’ ‘나전산수문함’을 보자. 균형과 구도가 얼마나 정확하고 멋이 있는가. 당시에 콤파스나 분도기, 제도기 등이 없었는데도 이렇게 균형을 잘 맞췄다는 것은 정말 놀랄만한 일 아닌가.

이는 조선의 장인들이 기하학, 응용미술 분야에 능했다는 증거다. 우리네 선조들, 특히 배움이 없었던 서민들 중에서 이토록 뛰어난 예술적 감각과 탁월한 예지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인이 나왔고 그런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자세히 볼 것은 ‘나전산수문함’이다. 조개 껍질을 얇게 잘라 판판하게 만든 뒤 거두를 이용해 좁고 길게 잘라냈다. 그리고 밑그림도 없이 사대문 안 양반촌(기와집)을 세우고 좌·우·아래·위로 높고 낮은 산과 나무를 배열했다. 그 간결함과 단순하면서도 군더더기 하나 없는 표현이라니. 미술 교육을 제대로 받을 리 없던 당시 상황에서 타고난 예술가적 기질이 있지 않고서야 애시당초 가능한 일이 아니다.

기록에 의하면 궁중과 중앙관청의 기물을 제작하기 위해 경공장을, 지방관서엔 외공장을 두어 6300여 명의 각종 기능을 가진 장인들을 관리했다. 그 중에 자개장, 칠장, 연마장, 유칠장 등 나전칠기 공예품을 만드는 부서가 있었다. 이곳에서 기초 교육을 시켰는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기물과 그 기물에 시문한 문양들을 보면 거의 같은 것들이 없다. 어딘가 모르게 조금씩 다르다. 이런 작품을 보면서 당시에는 장인들에게 나름의 창작 역량을 허용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변화무쌍한 장인들의 표현력
어디 이뿐인가. 나전칠기 작품 속 문양을 보면 당시 장인들은 상당히 수준 높은 애정 표현과 행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한 쌍의 새를 표현할 때도 아래 위로 비스듬히 서로 희롱하는 자세하며, 학이나 사슴도 어느 일정한 방향이 아닌 은근히 머리를 맞대며 서로를 탐닉하는 눈초리가 그렇다. ‘나전화조문빗접’에서 연꽃잎 사이의 오리가 서로를 애타게 부르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문양을 볼 때 조선시대 서민들은 마음속으로나마 여유 있는 애정, 사랑의 문화를 마음껏 발산시켰다고 볼 수 있다.

‘나전칠보수복문빗접’의 간결한 문양을 보라. 청순하고 단아한, 마치 수양버들과도 같은 여인네의 숨결이 들리는 듯 하지 않는가.

그런가 하면 ‘나전귀갑화어문경대’는 천판에 천도복숭아와 아래엔 쌍학문을 넣었다. 또 옆 면 물속으로 다산을 상징하는 잉어와 남성의 강렬함을 표현하는 바위와 매화 나무에서는 풍만한 중년여성의 복잡한 내면이 느껴진다. 조선시대 여성들이 매일매일 마주하며 대하는 좌식경대(즉 애장품)인 만큼 사용하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주문 제작된 것이 아닌가 짐작케 한다.

옻칠 바탕 위에 자개 대신 바다거북의 등 껍질인 대모를 사용한 것을 보면 남방지역과의 교류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쇠뿔을 잘라 얇게 펴서 제작한 화각 공예품 역시 흥미롭다. 소를 잡으면 가죽과 고기는 먹고 뼈와 뿔은 버려지기 일쑤인데 이것을 공예품에 활용했다는 것은 당시 장인들이 얼마나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특히 각종 함 천판과 면판을 기역자로 찍어 부착한 장석은 그 모양의 화려함도 대단하거니와 백골의 균열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장인의 기술적 예지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면의 면판이나 서랍 등에 사용된 단아하면서 앙증맞은, 그러면서 우아함까지 내포한 백동장식 역시 조선시대 목·나전·칠공예의 예술적 가치를 한층 더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의 나전을 보면 끊음질 기법과 줄음질 기법 나아가 타발법, 타찰법 등 자개를 활용하기 위한 각종 기법이 다채롭게 사용됐다. ‘나전희문옷상자’와 ‘나전봉황화당초문함’, ‘나전모란당초문함’ 등에 넓은 전복패 자체를 그대로 부착해 기교를 부린 것은 이를 만든 장인의 과감한 몸부림 속 도전정신과 예술적 소양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상징적 예술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억눌려 살았던 조선시대 장인들의 삶과 의식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는 곳이 바로 이 같은 나전칠기 공예문화가 아닌가 싶다.



● 호림박물관은
호림(湖林) 윤장섭(93) 선생이 출연한 유물과 기금을 토대로 1982년 10월 개관한 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간송미술관과 함께 국내 3대 사립 박물관으로 꼽힌다. 토기·도자기·백자·전적·회화·금속공예품 등을 망라한 유물 1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분청사기박지연어문편병(국보 제179호)·백자청화매죽문호(국보 222호)·금동탄생불(보물 808호)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 신림동 신림본관과 신사동 호림아트센터 내 신사분관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호림박물관
글 이칠용 사단법인 한국공예예술가협회 회장 kcaa08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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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