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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냄새를 가리고 싶을 땐 …

어느 새부터인가 마누라의 구박이 심해졌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평소 칠칠치 못한 행동의 지적과 질타에 익숙해져 있으니까. 나름의 방어법을 안다. 한쪽 귀로 듣고 흘려버리는 게 상책이다.

최근 구박의 내용이 하나 더해졌다. 내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구취제거를 위해 수시로 이도 닦았다. 열심히 목욕도 했다. 그래도 냄새가 난다면 나이 탓이다. 나이 든 남자들 몸에서 풍기는 냄새가 역겹다던 여자들의 말을 떠올렸다. 함께 사는 마누라가 느낄 정도라면 심각하다.

마누라는 참아줄 수 있을지 모른다. 구박도 견뎌내면 된다. 일상의 인간관계는 어쩌란 말인가.

입장 바꿔 생각해봤다. 냄새나는 영감이라면 나 또한 곁에 있기 싫다. 자각으로 상태의 진단은 분명해졌다. 나 혼자 겪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폼 나게 보였던 선배들 또한 말 못할 고민으로 전전긍긍했을지 모른다. 사람 사는 일은 누구도 예외없는 과정의 반복이 숙명이다.

아내의 비수… “당신 몸에서 냄새 나”
대처와 변화는 자각으로부터 비롯된다. 마누라의 비수와 같은 말 한마디가 현재를 돌아보게 했다. 씻어도 해결되지 않는 냄새의 근원은 분명하다. 원인을 알았다면 해결 방안도 있을 것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통의 수용단계가 있다. 충격이 먼저다. 이어서 그럴 리 없다는 부정이 따른다.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생겼느냐는 원망과 분노도 생긴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체념의 우울함이 찾아온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비로소 인정과 수용의 단계로 들어선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극복의 행동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냄새는 냄새로 없애야 사라진다. 기름때를 녹이는 비누도 기름으로 만들어지지 않던가. 몸의 악취를 향기로 바꾸면 된다. 향기, 향기…. 내 삶에 진지하게 끼어든 적 없는 향기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향기에의 관심은 오래전부터다. 좋은 향의 끌림은 본능적인 것이기도 하다. 유혹의 바탕엔 언제나 향이 깔려있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후각의 자극은 무엇보다 강렬하게 사람을 이끈다.

전라북도 부안군에 띠배놀이로 유명한 위도가 있다. 전국을 떠돌던 시절 사진 찍기 위해 이곳을 몇 번 찾았다. 6월 하순 안개 자욱한 숲 속에서 풍기던 꽃향기를 우연히 맡게 됐다. ‘홀렸다’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숲, 가시덤불을 헤쳐서라도 향의 근원을 찾고 싶었다.

향은 온 숲을 휘감아 돌만큼 은근하고 풍성했다. 바람을 타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향의 자극은 겪어보지 못한 아름다움이었다. 반나절을 숲 속에서 헤맸다. 발밑에 핀 꿀풀과 관목인 연분홍 백리향 꽃을 발견했을 땐 이미 주위가 어둑해졌다. 이 조그만 꽃이 풍겼던 향의 유혹은 30대 청년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생생하고 강렬한 백리향의 향기는 지워지지 않는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페트릭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가 있다. 천재적 후각을 타고난 주인공이 처녀 열세 명을 죽여서까지 만들고 싶었던 향수의 이야기다. 광기와 집념의 청년이 만든 향은 세상마저 지배할 힘을 갖추게 된다. 기상천외한 내용의 충격은 오랫동안 남는다. 향수 한 방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장미 꽃잎이 필요한지 알았다. 연금술사마냥 후각 충족을 위해 온갖 짓을 벌이는 조향사의 존재도 공감했다. 몸에서 나는 악취를 가리기 위해 비롯된 유럽의 향수문화다. 고급 향수의 환상이 깨져도 할 수 없다. 모든 물건은 필요해서 만들어진다. 제 몸의 악취를 향기로 바꾸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처절하고 집요하다.

유명 쇼핑 호스트 유난희와 알고 지낸 지 오래됐다. 그녀의 세련된 패션과 우아한 몸짓은 나이를 잊게 할 만하다. 멋진 여인의 체취에 반응을 보였다고 흠이 되지 않을 것이다. 몇 년 전 곁을 스칠 때 풍겼던 향은 고혹했다. 익숙한 향이 아니다. 들풀의 싱그런 감촉을 머금은 자연의 냄새다.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넙죽 무슨 향수를 쓰느냐고 물었다. 온갖 명품을 섭렵한 그녀의 선택은 뭔가 달랐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도 친숙함이 이어졌다. 여전히 똑같은 향기가 풍긴 기억의 환기 때문이다.

향기란 순간의 아름다움은 지속 시간이 너무 짧아 애닯다. 사라져버려 더욱 강렬한 향의 매료는 감각의 극점을 향해 치닫는다. 아무나 갖지 못하는 침향을 피워놓고 사는 이들도 보았다. 그윽한 침향이 삶의 공간에 침투되어 아름다움을 지속하고 싶은 속내일 것이다. 향이란 기대와 설렘을 불러일으킨다. 적어도 악취의 서글픔을 가리고 싶은 진심만큼의 양이다.

기억에 선명한 백리향과 소설 『향수』에 등장하는 상상의 향도 좋다. 쇼핑 호스트의 향수와 침향의 그윽함도 끌어들이고 싶었다. 남사스럽게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 일은 하지 못한다. ‘기생 오라비’ 같은 아저씨란 경멸을 참아낼 뱃심이 없는 탓이다. 몸의 체취가 향수의 향을 누른다면…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적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해 끼칠 짓은 하지 말고 살아야 인간의 도리다. 대신 공간을 채우는 향으로 몸의 체취를 가려보기로 했다.

숲 속에 있는 듯한 자연의 향
머릿속에 그리던 향을 찾아냈다. 영국 런던에서 만드는 ‘조말론’이다. 조향사 조말론의 이름을 브랜드로 삼았다. 향수하면 우선 떠올리게 되는 프랑스의 제품들은 짙은 향 일색이란 선입견을 지우지 못했다. 조말론은 코를 찌르는 자극 대신 부드러움으로 다가온다. 숲을 감싸안은 꽃향기 혹은 들판의 싱그러움이 적절하게 섞인 자연의 향에 가깝다. 온 대지가 꽃으로 뒤덮인 7월의 몽골벌판을 말 타고 달리면 스치는 허브 향 같기도 하다.

유난희의 최근 저서 『여자가 사랑하는 명품』에도 조말론이 등장한다. 남편이 허락 없이 자신의 향수를 슬금슬금 쓴다는 조말론이다.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선호되는 중립적 조향이라 할 만하다. 향수뿐 아니라 향초와 실내용 디퓨져(diffuser), 목욕용 로션 같은 다양한 향기관련 제품을 만들고 있다. 생활공간을 향으로 채우는 선택은 널렸다.

향기가 행복한 삶을 이끌어줄 해법이라도 되는 것일까. 버스 정류장에조차 향수 광고가 붙어있다. 이전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젠 마음이 변했다. 공항 면세점에서 산 조말론 향수는 마누라에게 준다. 내 몫은 디퓨져다. 작업실 비원을 좀 더 향기나는 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구체적 노력이다.

좋은 향이 풍기는 방에서 일하는 기분이 근사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엊그제 본 화사하게 핀 매화꽃의 그윽한 향이 그대로 옮겨진 듯 했다. 여기에 더한 향초의 불빛으로 안정의 고요함이 몸으로 전이되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향기의 효능은 생각보다 컸다. 기억의 체험은 눈앞의 기억으로 바뀌는 중이다. 아침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방안엔 향기가 가득하다. 혹시 묻어있을지 모르는 내 몸의 악취는 가려져야 마땅하다. 조말론의 향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면 가야 할 곳은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윤광준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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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