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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추모 기사 상상해본 적 있나요

저자: 그레고어 아이젠하우어 출판사: 책세상 가격: 1만4000원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왜 하필 자기에게 이런 재수 없는 일이 생겼는지 꼭 알아내려는 꼬마 두더지에 관한 이 이야기는 롤란트가 가장 좋아했던 동화다. 매일 저녁 어머니가 롤란트에게 읽어주었다. 그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한 무더기씩 빌려와 제일 먼저 깨끗하게 닦았다.

독일 일간지 ‘타게스 슈피겔’에 실린 추모 기사의 일부다. 국내에선 고인과 가족의 이름과 직함, 장례식장 연락처 정도가 신문 부고 기사의 전부지만 서양에선 고인의 인생사가 담긴 추모 기사를 위해 널찍한 지면을 할애한다.

어쩌면 고인은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란 문구로 시작되는 추모글을 원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허나 철학자인 저자가 추모 기사에서 굳이 이렇게 서두를 쓴 건 20대 청년 롤란트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는 희귀한 면역 결핍증 판정을 받고 1년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병을 극복하고 크고 강하고 잘생긴 남자로 성장했다. “크게 외치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다. 하루의 끝에서 ‘내일 다시 해 보자’라고 말하는 작은 음성이 용기일 때도 있다”고 읊조리던 그는 숨질 때까지 현재의 삶에 충실했다.

저자가 10여 년 동안 작성한 추모 기사의 주인공은 모두 일반인이었다. 부자는 죽어서 재산을 남기고 유명인은 숱한 일화를 남겼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기억을 남겼을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유족을 만나 그들이 어떤 책을 좋아하고, 무슨 음악을 즐겨 들었으며, 누구의 그림을 아꼈는지 물었다. 취향은 그 사람의 생각을 대변하고, 예술은 그에게 위로와 평온을 선사했을 테니 말이다.

유족들은 눈물을 쏟는 대신 침착하게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는 예쁘게 보정한 포토샵 사진이 아닌, 누가 봐도 그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는 초상화를 그려내고자 애썼다. “맞아요, 딱 그 사람이에요. 내가 사랑했던 바로 그 여잡니다” 같은 칭찬을 꿈꾸며 말이다.

죽음을 마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저자는 이 지난한 숙제를 이제 독자에게 던진다. 자신이 죽은 뒤 남의 손에 의해 왜곡된 마지막을 남기고 싶지 않다면 직접 펜을 들고 A4 3장 분량에 지금까지의 인생과 소망은 물론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했는지 적어보라고 주문한다.

나 역시 살면서 가장 막막했던 과제는 저널리즘 수업 시간에 받아든 ‘자신의 부고기사 쓰기’였다. 무언가 대단한 업적을 성취한 다음이 아닌 스물 남짓한 당시 시점에서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하는 게 가장 뜻깊을까 고민했다. 덕분에 사고사의 가능성을 줄이고자 운전과 수영을 생존을 위한 버킷리스트에 집어넣을 수 있었고, 나를 ‘커다란 미소를 가진 반짝이는 아이’로 기억하겠다는 친구의 말에 새삼 감격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저자는 인생에서 만났던 가장 중요한 것을 끄집어내기 위해 10가지 물음을 던진다. 왜 사는가, 나는 행복한가, 나는 아름다운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무엇을 해야 하나, 누구를 위해 해야 하나, 신은 있는가, 내 수호천사는 누구인가, 죽어서도 살 수 있을까 등등.

물론 답은 주지 않는다. 하루에 30분은 산책을 하라든가 나체로 거울 앞에 서 보라든가 하는 소소한 힌트를 줄 뿐이다. 하지만 일평생 바닥 없는 욕망을 채우는 데 급급했다면 이제 한번쯤 삶을 되돌아보며 중간 정산을 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시도일 터다.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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