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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의 행복어사전] 16년 만큼 길었던 2시간

“먼저 가세요. 전 괜찮습니다. 후배가 1시까지 오기로 했어요.”

밤 10시 50분. 버스 막차 시간 때문에 먼저 일어서야겠다고 내가 말하자 주방장은 그러라고 했다.

그날 오후에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듀오 기획부 김상득입니다.” 사무실 전화로 온 것이라 사무적으로 받았다. 저쪽의 소리가 너무 쩌렁쩌렁해서 송수화기를 귀에 대고 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귀에서 떼자니 주위 동료들이 다 들을 것 같아 나는 송수화기를 귀에 바짝 붙였다. 소리가 작아도 알아듣기 힘들지만 너무 커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김상득씨인가요? 아저씨 맞죠?”

내게 전화를 걸어 아저씨라고 부르는 남자는 누굴까? 그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반가움이, 장난이 마치 끓는 된장찌개처럼 금방이라도 넘칠 것 같았다.

“예,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에이, 내 목소리 몰라요? 모르네. 나는 목소리 들으니까 바로 아저씨 알겠는데. 모르나 봐. 전화 끊을까요?”

아저씨는 머리 속으로 다급하게 스크롤을 올리며 몇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지만 알 수 없었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제대로 들을 수가 없어요. 누구세요?”

“아저씨랑 일본에서 함께 일했던 주방장인데 기억 못 해요? 잠깐 한국에 다니러 왔는데. 상돈씨도 같이 있어요.”

나는 바로 알아차리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반가움을 과장했다.

“아이쿠! 우리 주방장님. 알죠. 정말 반갑습니다. 하하하. 지금 어디에요?”

6시가 되자마자 나는 그들이 있다는 광화문 쪽으로 달려갔다. 정말 달려간 것은 아니고 지하철을 타고 간 것이지만. 16년 만이다. 16년 전 일본 지바 현에 있는 식당에서 함께 일했던 우리는 서울의 식당에서 만났다. 16년이나 지났는데 하나도 안 변했다고 인사를 나눴지만 거짓말이었다. 우리는 다들 변했다. 얼굴에는 주름이 몸에는 살이 꼭 16년의 세월만큼 붙어있었다. 추억은 타임머신이다. 16년 전 함께 일했던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하자 우리 세 사람은 16년 전 시간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거짓말처럼 하나도 안 변한 16년 전의 그들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마음이 여린 상돈씨는 취한 것처럼 보였다. 전작이 있는데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고 옛 이야기의 타임머신을 타니 멀미를 하는 것 같았다. 그는 화장실에 간다고 나가더니 식당이 마칠 시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10시 50분. 버스 막차 시간이다. 아무래도 나는 일어서야 했다.

“먼저 가세요. 전 괜찮습니다. 후배가 1시까지 오기로 했어요.”

“2시간이나 남았는데 어떻게 하려고요.”

“그냥 혼자 술 마시면서 기다리면 되죠. 후배가 더 빨리 오면 좋은데 부산에서 차로 올라오니까 1시에나 도착한다고 하네요. 어쩔 수 없죠.”

나는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겨우 분당에 사는 나는 11시가 늦었다고 일어서려는데 그 후배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차로 올라온다는 것 아닌가. 나는 주방장과 함께 술집으로 갔다. 누군가 그 자리에 올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그 밖의 사람들’이 되어 그를 기다린다. 기다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시간은 느리게 간다. 나는 휴대전화를 보는 척하면서 시간을 확인했다. 확인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시간은 아예 안 간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는 고작 2시간이지만 16년보다 더 긴 것 같았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내게로 오는 모든 소리는 너의 발자국 소리다.” 황지우의 시처럼 11시 이후 그 술집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은 그 후배였다.

드디어 1시가 되어 나는 물었다. “그 후배 안 와요? 지금 어디쯤 왔대요?”

주방장은 그게 무슨 주방에 주문 넣지도 않은 된장찌개를 달라고 재촉하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후배요?”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초조하게 미터기를 보다가 나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에게 했다는 농담을 떠올렸다. 스코틀랜드로 가는 기차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이 묻는다. 실례지만 저 선반 위의 꾸러미는 무엇인가요? 아, 그건 맥거핀입니다. 맥거핀이 뭐죠? 스코틀랜드 산에 사는 사자를 잡는 데 쓰는 물건이랍니다. 스코틀랜드 산에는 사자가 안 살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저건 맥거핀이 아닙니다. 사실 맥거핀이란 아무것도 아닙니다.

맥거핀은 새벽 1시에 온다는 후배였다.


김상득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에 근무하며, 일상의 소소한 웃음과 느낌이 있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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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