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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말 바꾸는 정치인 넘치는 건 거짓말해도 아무 제재 없는 사회 탓

‘박심’ 향방은…‘성완종 리스트’ 파문 속에서 해외 순방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18일(한국시간) 첫 방문국인 콜롬비아에서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오른쪽)과 공식 환영식에 참석하고 있다. 양국 대통령은 이날 투자·협력방안을 논의했다. ▶관계기사 2면 박종근 기자
결국 돈과 법보다 무서운 건 말이었다. 국정 2인자를 벼랑 끝으로 내몬 건 그의 가벼운 입이었다.

‘성완종 리스트’는 현 정부의 권력 실세를 정조준했지만 민낯을 드러낸 건 한국 정치의 헤프디 헤픈 말 바꾸기였다. 그 중심엔 이완구 국무총리가 있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8인의 이름이 적힌 메모를 남겼다는 소식이 전해진 10일, 이 총리의 공식 논평은 “19대 국회 당시 1년 동안 함께 의정활동을 한 것 외에는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다”였다. ‘1년’과 ‘개인 관계 없음’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곧이어 20여 개월간 23차례 만났다는 일정표와 10여 년간 돈독한 사이였음을 보여주는 동영상·사진이 잇따라 등장하자 “심경을 털어놓고 말씀을 나눌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3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독대한 적이 없다”→“기억이 나지 않는다”→“알아보고 있다”며 바꿨다.

2012년 대선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두 차례 지원 유세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2월 인사청문회 사과 여부와 관련해서도 “사과의 의미는 국민들에게 심려를 드려서 죄송하다는 그런 말씀이지, 구체적 개별 사건에 대한 말은 아니다”고 했다.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고는, 주워 담기는커녕 또 다른 말을 덧칠해 스스로 꼬이는 형국이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3000만원을 받았든 안 받았든 이완구 총리의 정치적 생명은 치명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이 총리의 거짓 해명이 거듭되자 새정치연합은 15일 국회 본회의 보이콧을 검토했다. 하지만 “입만 열면 거짓 아닌가. 그게 더 늪에 빠뜨리는 꼴”이라며 전략을 수정했다.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도덕적 해이)에 빗대 ‘오럴 해저드(oral hazard·언어적 해이)’라는 비아냥도 이어지고 있다.

“왜 그렇게 말을 바꾸느냐”는 질타엔 엉뚱하게도 “충청도 말투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게 부정적인 여론을 더 자극했다. 임동욱 한국교통대(행정학) 교수는 “이 총리는 수십억원의 정치자금보다 훨씬 가혹한, 말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했다.

말 바꾸기 대열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있다. “재임 기간 성 전 회장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최근 “기억을 되살려 보니 2013년 11월 6일 성 전 회장을 비롯해 충청도 의원 5명과 저녁을 먹었다”고 시인했다. 홍문종 의원 역시 “단 둘이 만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최근 2년간 18회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의혹의 대상자가 되자 한결같이 “고인과 친하지 않다”며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 되레 꼬리를 밟힌 꼴이 됐다.

왜 드러날 걸 알면서도 부인부터 하는 걸까. 김원용 김앤장 미래사회연구소장은 “친분이 노출될 경우 쏟아질 낙인찍기를 우선 피하려는 방어심리”라고 분석했다. 또 “나중에 밝혀져도 거짓말을 했다는 데 대한 사회적 제재가 약하기 때문”(이준웅 서울대 교수)이라는 진단도 있다. 세련된 정치적 화법에 대한 훈련이 미숙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껏 한국 정치에서 거짓말은 필요악으로 인식되곤 했다. 정치적 수사(修辭)와 혼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위정자 말 바꾸기에 아주 신물이 난다”(인터넷 ID:Jigu)는 여론이 거세다. 이준웅 교수는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해명 과정에서 거짓말로 물러난 것”이라며 “이젠 한국 정치권에서도 거짓말을 성희롱처럼 금기시해야 할 때”라고 했다.

▶관계기사 3~7면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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