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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기 칼럼] 대통령의 사람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은 닉슨 대통령 사임으로 끝난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의 취재 비화를 생생하게 다룬 책이다.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가 1년 8개월여에 걸쳐 세기적 특종을 끈질기게 파헤치는 과정이 담긴 이 르포에는 다양한 정치인들의 군상이 등장한다.

처음엔 단순한 사무실 침입 사건에서 시작됐지만 서서히 드러나는 거대한 정치적 음모의 배후에는 ‘대통령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 책은 비열한 음모에 죄의식도 없이 집단적으로 빠져든 백악관 참모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통령의 묵인 아래 재선을 위해 불법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들의 행보는 결국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비서실장·고문·보좌관 등 35명의 참모들이 줄줄이 연루된 이 사건에서 누구 하나라도 대통령 앞에서 ‘노(No)’라고 진언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훌륭한 참모가 위대한 지도자를 만드는 것은 동서고금의 공통된 진리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모습을 보노라면 청와대의 보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이나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기 그지 없다.

지난 16일만 해도 박 대통령의 행보는 온종일 갈팡질팡했다. 세월호 유가족의 외면으로 팽목항 방파제 한 구석에서 담화문을 읽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은 초라하게 비칠 수밖에 없었다. 의전에만 얽매여 ‘대통령은 민간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되뇌이던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 뒤에서 그저 허둥대기만 했다. 급박한 국내 상황을 놔둔 채 이날 오후 출국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이런 대통령의 참모들에게 정무적 판단력까지 기대하는 건 애당초부터 무리였을까.

세월호 문제만 해도 그렇다. 진상 규명 요구가 ‘선체 인양’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불거질 때까지 청와대는 ‘대통령이 나설 일이 아니다’며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박 대통령의 입으로 ‘선체 인양을 하겠다’는 말을 직접 하게 했다. 떠밀리듯 할 바엔 진작에 선제적으로 이를 발표했더라면 정국 주도력은 훨씬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성완종 리스트’ 폭로 직후에도 박 대통령은 ‘정치개혁’이라는 어젠다를 들고 나왔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마치 남의 일 대하듯 한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이 역시 측근들이 대통령에게 진공 포장되고 살균 처리된 여론만 전달했기에 빚어진 일 아니었을까.

물론 국가 최고 지도자의 언행과 결정은 대통령 스스로 책임지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대통령 보좌진의 촉각은 대통령의 심기가 아니라 국민과의 소통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제 임기가 절반 밖에 남지 않은 박근혜 정부는 정권의 유산(legacy)으로 무엇을 남길지 진정 고민해야 할 때다. 미국의 정치 분석가 조지 레이코프는 ‘전략적 주도(strategic initiative)’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정국이 꽉 막힐수록 쟁점을 하나로 통합해 상황을 주도해나가는 정치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작금의 한국 정치는 적폐 타파, 국가개조, 4대 개혁 등으로 제각각 나뉘어 제시된 의제들을 하나로 묶는 통합된 집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성완종 리스트’는 대형 정치 스캔들로 비화될 점화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워터게이트와 여러 모로 닮은 꼴이다. 자칫 이 정권의 모든 정치적 의제를 매몰시켜버릴 수도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통령의 사람들’이 눈치만 보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대통령의 싸늘한 ‘레이저 광선’을 두려워하지 말고 현안에 대해 고언·직언·충언을 마다 않고 할 수 있는 배짱과 용기를 국민들은 요구하고 있다.
다시 묻는다. 그 많던 수석과 특보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나.


홍병기 정치 에디터 klaat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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