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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 리포트] 학교 간다고 돌 맞는 것 상상되나요, 그런 현실 세상에 알리죠





정은진 포토저널리스트 인터뷰

세계 곳곳의 분쟁 현장에는 총칼 대신 카메라를 든 이들이 있습니다. 카메라는 목숨을 지켜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약자의 비명을 세계에 알리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영문 이름 Jean Chung, 한국 이름 정은진. 세계의 유력 언론에 사진을 게재하는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입니다. 중동과 아프리카 여러 나라, 아프가니스탄 등 참혹한 전쟁터에서, 또 쓰나미·동일본대지진 등의 재난 현장에서 고통 받는 이들의 삶을 기록해온 공로로 제5회 서재필 언론문화상을 받은 그를 소년중앙이 만났습니다.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는 어떤 직업인가요.



“포토저널리스트는 사진과 저널리스트(기자 혹은 언론인)의 합성어로, 쉽게 말해 사진기자라는 뜻입니다.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는 특정 언론사에 소속돼 있지 않고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보도사진을 찍는 사람이죠. 스스로 취재 아이템을 기획해 언론매체에 기고를 하기도 하고, 언론사로부터 의뢰를 받아 사진취재를 하기도 합니다.”



―프리랜서 사진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요.



“뉴욕대학교(NYU) 졸업 후 뉴욕한국일보에서 6년간 일하면서 뉴욕 타임스와 일하고 싶다는 꿈을 항상 품고 있었어요. 또한 타임·뉴스위크 같은 세계적인 매체와 일하고픈 열망도 있었죠. 또한 창조적인 일을 하거나 자아가 강한 사람은 조직 생활을 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나의 창작물에 대한 권리, 즉 저작권과 지적재산권을 회사가 아닌 내가 소유하며 원하는 여러 곳과 일할 수 있다는 점 등의 장점 때문에 프리랜서의 길을 택했죠. 저는 분쟁지역에서 분쟁 자체를 취재하는 건 아닙니다. 그럴 능력도 없고 재능도 없어요. 분쟁의 여파로 고통받는 사람들, 특히 전쟁이 벌어졌을 때 여성의 인권 문제를 취재하길 원하죠. 그래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한편, 심층취재를 기획해 나만의 작업을 합니다.”



―전쟁을 다룬 보도사진은 많아도 여성 인권 문제는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한 이유가 뭘까요.



“1837년경 카메라가 발명된 이후 굵직한 전쟁이나 사건은 거의 대부분 백인 남성의 시각으로 기록됐어요. 카메라를 구매할 수 있는 재력,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권리와 체력을 갖춘 이들이죠. 유럽인의 경우 전 세계에 식민지를 만든 경험 때문에 영어·프랑스어만 구사하면 어느 나라든 접근하기 쉬웠던 점, 서구사회의 진취적이고 독립적이며 창의적인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고 봐요. 제가 아는 영국인 사진기자는 19살 때 혼자 이라크에 갔지만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대요. 하지만 24시간이면 지구 반대편에 갈 수 있는 지금은 누구나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시대가 됐죠.”



―김주선이라는 필명으로 얼굴을 숨기고 활동한 적도 있었는데요.



영국 가디언지에 실린 정은진씨의 사진. 탈레반 정권은 집권 당시 여성들의 교육을 전면 금지시켰으며, 그 후유증은 정권 퇴각 이후에도 이어졌다. 탈레반 퇴각 5년 후인 2006년 아프가니스탄의 13세 소녀 ‘아미나’(가운데)와 그 급우들은 카불의 한 NGO가 운영하는 문명퇴치학교에 다니면서 글을 익혔다.




“2006~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동행취재를 할 때였어요. 이전까지는 외국 신문사와만 일했는데 그때 처음 한국 신문과 일하게 됐죠. 당시 제가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걸 부모님이 모르셨기 때문에 선글라스와 철모로 얼굴을 가리고 포토샵까지 하며 신분을 숨겼어요.”



―아이를 낳다 죽은 여성, 성폭력 피해 여성, 결핵 환자 등 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남기는데 카메라를 댈 때 미안한 마음은 없나요.



정은진씨는 2007년 아프가니스탄 북부 바다흐샨 주에서 산모 사망률을 취재했다. 당시 이 지역 경찰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미안하죠. 그 미안한 마음 때문에 사진을 제대로 못 찍을 때도 있고, 차라리 사진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도 많아요. 물론 미리 인터뷰를 충분히 하고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보고 나서 찍어요. 자칫하면 사진에 악플이 달린다거나 체면을 중시해 카메라 앞에서 얼굴을 가리는 한국의 문화와는 많이 달라요.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주기를 원할 때도 있어요. 콩고에 가보면 NGO가 정말 많아요. 언론을 통해 콩고의 어려운 실상이 알려져 실질적인 도움을 받다 보니 그곳 사람들은 언론 친화적이죠. 저의 일과 여정을 축복해주는 분들도 많고요. 그럴 때는 그분들을 위해 취재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분쟁지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요.



“2001년 미주리대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포토저널리즘을 배웠어요. 그런데 진학하자마자 9·11 테러가 터졌죠. 왜 무슬림은 자기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테러를 저지를까, 서방 세계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어디에서 나오나 궁금해졌죠. 그 원인이 이스라엘이라면 거기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일을 하면서 그 답을 얻었나요.



“일단 이슬람 교도들이 서방사회에 반감을 가지게 된 계기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이에요. 역사적으로 핍박받으며 2000여 년간 떠돌아다니던 유대인들이 자금력을 바탕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곳에 국가를 세우게 된 거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갑자기 쫓겨나 가자 지구라는 아주 작은 땅에 갇혀 사는 난민이 됐고요. 거기에 중동전쟁과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로 인한 미국의 반군 지원과 아프가니스탄 퇴각 이후 내전, 이슬람 정권 장악, 걸프전쟁, 9·11 사태, 미국의 대테러 전쟁, 이라크 전쟁, 미군의 이라크 점령 등으로 이어지면서 아직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무력분쟁 중이죠.



최근에는 IS(이슬람 국가)라는 극단적인 무장 단체가 생겨나는 등 악순환이 끊이지 않고 있어요. 중동 문제는 그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해서 최악의 경우 이슬람권이 ‘공공의 적’이라 여기는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멸망한다 하더라도 과연 분쟁이 끝날 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해요.”



―IS에 가담했다고 알려진 김군 등 무장세력을 동경하는 일부 청소년들도 있는데요.



“중동에서 여자들은 집 밖에 잘 못 나가지만, 남자도 마찬가지로 교육을 못 받아요. 어린 아이들도 수레를 끌고 자동차 부품을 정비하고 빵을 팔며 일해요. 문맹률도 높고요. 마드라싸라는 무료 이슬람 학교에 가기는 해요. 마드라싸에선 코란의 가르침만 전한다고 주장하죠. 하지만 사실상 이슬람 전사를 키워내는 토대가 되는 학교예요. 중동의 소녀 못지 않게 소년들도 굉장히 피폐한 삶을 살고 있어요. IS가 선전하는 것처럼 살기 좋은 곳이 전혀 아니에요.”



―하지만 제3세계는 먼 곳의 이야기 같아요.



2008년 콩고민주공화국 고마시에 위치한 케셰로 병원 성폭력 피해 여성 병동에 있던 18세 소녀.




“우리도 과거 제3세계였어요. 쓰개치마 쓴 여성은 부르카 입은 중동의 여인과 닮았고, 곤장을 치는 형벌은 이슬람의 태형과 같은 거죠. 특히 전쟁이 나면 평화로울 때와는 처지가 달라져 여성은 가장 먼저 피해를 입어요. 저는 콩고 등에서 전쟁통에 군인에게 강간당한 여성들의 비극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활동을 해왔지만, 우리에게도 종군위안부의 역사가 있잖아요. 콩고인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면 굉장히 놀라요. 한국처럼 잘 사는 나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에 그런 역사가 있느냐는 거죠. 그만큼 공감대가 잘 형성돼요.”



―사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제 사진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건 오래 전에 깨달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큰 기쁨이죠. 이 세상에는 여러 문제가 있고 억울한 약자들이 너무나 많아요. 적어도 전시 여성의 인권, 아프리카 물 부족이나 결핵 등 후진국형 보건 문제 등은 제 힘이 닿는 한 죽을 때까지 취재해보려고 해요. 물론 해외 취재를 가려면 비용이 많이 드는데 그 예산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체력도 떨어져서 젊었을 때처럼 열정적으로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요.”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조언해 주세요.



정은진 포토저널리스트를 인터뷰한 우민영 학생기자.
“일단 돈을 벌고 싶은 분은 포토저널리스트를 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어요. 혼자 하는 작업이고 외롭고 배고픈 직업이고 사진에 온 인생을 바쳐야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해요. 지난 10년간 수많은 재난과 분쟁 현장을 취재했지만 단 한 번도 외상후 장애 스트레스 치료를 받은 적이 없어요. 프리랜서의 단점이죠. 몇 해 전에는 공황장애가 와서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들지 않고, 장거리 비행은 아예 못했어요. 그러나 내 한 몸 건사할 정도의 최소한의 돈만 필요하고 나머지는 이 세상 약자들의 아픔을 기록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사진으로 전달하고 싶은 분들은 도전하길 바랍니다. 저보다 체격조건도 좋고 머리도 좋은 젊은 세대들이 세계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활동했으면 해요.”



―소중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말씀은요.



“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이 터진 학교를 취재한 적이 있어요. 그곳에선 여학생이 학교에 가면 남학생들에게 돌팔매를 맞아요. 여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살해 위협을 받죠. 학교에서 폭탄이 터지는 건 흔한 사건이고 방화도 잦아요. 그나마 학교에 다닐 수 있으면 다행이죠. 탈레반이 장악한 지역에선 아예 불가능합니다. 교육의 권리를 위해 싸운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파키스탄의 소녀 말랄라도 탈레반에 피격돼 죽을 뻔했죠. 소중 독자들이 『나는 말랄라』를 꼭 읽기 바랍니다. 목숨 걸고 교육을 받는 아이들에 비하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글=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정은진 작가 제공, 동행취재=우민영(서울 일신여중 1)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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