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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 특별수사팀 독립성 필수…맹탕 수사 땐 또 黑歷史 갇힐 것

“일단 판단을 내리면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는 않는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널 만큼 업무처리가 신중하고 꼼꼼해 김진태 검찰총장이 특별수사팀을 맡길 적임자로 판단한 것 같다.”

익명을 원한 전직 검찰 고위간부는 17일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경남기업 관련 의혹 특별수사팀을 이끌고 있는 문무일(54·대전지검장·사법연수원 18기) 팀장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검찰 안팎에선 문 특별수사팀장에 대해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수 있는 인물이란 평이다. 지난해 12월 이른바 ‘땅콩회항’ 수사팀 관계자는 “당시 문무일 (서울서부지검) 지검장이 ‘위법행위에 대해 사법의 잣대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떠올렸다.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에 착수한 검찰에는 긴장감이 팽배하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거론된 인물들이 이완구 국무총리와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등 살아 있는 권력 실세인 데다 성 전 회장의 금품 로비 대상에 야권 인사도 거명되는 등 '리스트 파문’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어서다. 특별수사팀이 어떤 결과를 내놓더라도 여야의 입장이 다른 데다 국민이 신뢰하지 않으면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역대 정부 특별수사팀의 흑역사(黑歷史)가 재연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특별수사팀, 진실 규명 번번이 실패
김 검찰총장은 성 전 회장의 ‘55자(字) 메모’가 공개된 지 이틀 만에 특별수사팀 구성을 지시했다. 검찰은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사건이 발생하면 독립된 특별수사팀을 꾸려 가동했다. 특별수사팀이 구성될 때마다 검찰 수장들은 “법과 원칙에 따라 흔들림 없이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역대 특별수사팀이 모두 제대로 된 성과를 낸 것은 아니다.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도 논란이 계속돼 특별검사가 재수사하거나, 사고나 잡음 때문에 책임자가 직(職)을 내놓는 일도 있었다.

과거에는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에 대해 검찰이 ‘특별수사본부’라는 이름을 붙였다. 1995년 출범한 ‘12·12,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는 당시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을 주도했다. 문무일 지검장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 등과 함께 특별수사본부에 투입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기소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특별수사본부나 특별수사팀은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별검사제가 도입되면서 정치권과 국민은 검찰의 수사 결과를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마다 검찰 수사→특검 재수사가 공식처럼 돼 버렸다.

99년 사상 첫 특검이 발동된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의 술자리 발언이 논란이 되자 검찰은 서울지검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해 수사에 나섰고, ‘자기 식구’인 진 공안부장을 주범으로 지목해 구속기소했다. 하지만 재수사에 나선 강원일 특별검사팀은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의 단독 범행이라는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검찰로선 상처만 남긴 특별수사본부였다.


세월호·국정원 수사팀도 상처
검찰은 2001년 이용호 게이트 사건 때 ‘검찰 내 비호세력을 색출하겠다’며 특별감찰본부를 꾸렸지만 수사는 특검으로 이어졌다. 2003년 양길승 당시 청와대 제1부속실장 몰래카메라 사건이 터졌을 때도 청주지검에 특별수사팀을 구성했지만 여야 정치권은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을 발동시켰다. 당시 김도훈 청주지검 검사가 몰카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나 구속 기소됐다.

가장 최근에 꾸려진 특별수사팀은 지난해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인천지검에 만들어진 ‘세월호 특별수사팀’이다.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병언씨 일가의 비리를 수사하기 위해 출범한 특별수사팀 역시 말로(末路)가 좋지 않았다. 검찰은 검거 전담반까지 가동해 도주한 유씨의 뒤를 쫓았지만 3개월 만에 변사체로 발견됐다. 검찰 최고의 특수수사 전문가로 불렸던 최재경 당시 인천지검장은 책임을 지고 검찰을 떠났다.

2013년에도 검찰 특별수사팀은 수모를 당했다.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은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특별수사팀을 가동했지만 혼외자(婚外子) 파문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이후에는 사상 초유의 ‘항명사태’가 터졌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선거법 위반혐의 적용, 국정원 직원 수사 등을 놓고 당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이 정면 충돌한 것이다. 조 전 지검장과 윤 전 팀장은 TV로 생중계된 국정감사장에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2월 항소심 재판부는 원 전 원장에게 적용된 선거법 위반혐의에 대해 1심 판결을 뒤집고 유죄판결을 내렸다.


검찰의 위기, 명운 걸어야
역대 특별수사팀의 ‘타율’이 들쭉날쭉했다는 점에서 우려와 기대가 엇갈린다. 특별수사팀에 참여하고 있는 한 검사는 “팀이 꾸려진 지 72시간 만에 15군데를 압수수색했고 수천 쪽 분량의 문서를 확보했다”며 “모든 의혹을 해소하겠다는 의지만큼은 확실하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겠지만 국민이 만족할 수 있을지는…”이라고 했다.

검찰 내부에선 이번 특별수사팀을 2013년 폐지된 대검 중앙수사부의 부활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과거 특별수사팀이 특정 지방검찰청 산하에 꾸려졌던 것과 달리 이번 특별수사팀은 사실상 검찰총장 직할부대로 활동한다는 점에서다.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특별수사팀의 경우 가동 초기에는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에게 직보(直報)하는 체제였지만 채 전 총장의 퇴진 이후 서울중앙지검장의 지휘를 받으면서 분란이 일었다.

경남기업 특별수사팀은 외견상 대검 반부패부의 지휘를 받도록 돼 있지만 사실상 중수부처럼 검찰총장의 직접 지휘를 받고 있다. 윤갑근 대검 반부패부장은 문무일 특별수사팀장보다 사법연수원 한 기수 후배다. 반부패부는 이번 수사에서 수사지원 업무에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체계를 간소화함으로써 수사의 신속성과 정확성을 기하겠다는 김 총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대검 관계자는 “김 검찰총장이 문 수사팀장에게 전권을 주고 중요 사안에 대해선 직접 보고를 받으며 챙기고 있다”며 “검찰의 명운(命運)이 걸린 중차대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보고체계가 수사팀장→검찰총장→법무부 장관→국무총리 순서로 돼 있어 수사의 독립성에 문제가 있다”며 "철저한 독립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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