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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섭의 시대공감] 닮은 듯 다른 박정희와 리콴유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가 지난달 서거했을 때 한국에서도 추모 열기가 높았다. 언론에서도 리콴유의 인생과 싱가포르의 성공에 대해 대대적으로 다루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외국 지도자에 대해서는 굉장히 높게 평가하면서도, 한국의 지도자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박(博)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리콴유와 박정희 대통령(이하 존칭 생략)을 비교하라면 상당수의 한국인이 리콴유가 더 뛰어난 정치지도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리콴유와 박정희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서 각자의 방식으로 성공한 정치인이다. 두 사람에게 비슷한 부분도 있다. 둘 다 불굴의 의지와 지도력으로 경제기적을 일구었다. 리콴유는 영국식민지, 일본 강점기, 말레이시아 연방 축출이라는 어려운 과정을 다 겪으면서 싱가포르라는 나라의 기반을 만들어냈다. 박정희도 일제시대와 해방을 거치면서 좌익으로 몰려 사형 직전까지 갔지만 5·16을 성공시킨 뒤 한국 산업화의 토대를 닦았다.

두 사람은 서양식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함께 비판적이었다. 박정희는 ‘한국식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유신체제를 만들기도 했다. 리콴유는 언론을 강력히 통제했다. 서양에서 언론을 ‘제4부의 권력’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싱가포르와 같은 다민족 사회에서는 언론 자유가 인종분규를 일으켜 사회갈등을 조장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싱가포르에서는 주요 언론사들이 정부 소유이다. 두 사람이 일군 경제기적이 ‘권위주의적(authoritarian)’ 지도자들의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이유이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출신 성분이나 성향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리콴유는 부자 가문에서 태어나 귀족적 성향이 강했다. 싱가포르 최고의 엘리트들이 가는 라플스 컬리지(싱가포르 국립대의 전신)를 나왔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법학과를 수석 졸업했다. 장관들의 연봉도 대폭 올렸다. 최고 엘리트들의 업무효율을 높이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에어컨이 처음 들어오자마자 자신과 장관들의 방에 가장 먼저 설치했다. 리콴유는 에어컨이 인류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이라고까지 극찬했다. 상하(常夏)의 나라 싱가포르에서 긴 시간 열심히 일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반면 박정희는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가난한 사람들과 삶을 함께했다. 절약을 강조했고 사치품에 돈을 쓰지 못하도록 사치세를 도입했다. 한국이 전세계에 컬러 TV를 수출하고 있을 때에도 국내에서는 흑백TV만 팔도록 했다. 장관이나 다른 지도자들에게 희생을 강조했고 국민 사이에 위화감이 조성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그래서 한국 공무원의 연봉은 전형적인 하후상박(下厚上薄) 시스템으로 만들어졌다. 박정희 본인도 절약에 솔선수범했다. 수세식 변기 물통에 벽돌을 넣어 물을 아껴썼다.

리콴유는 자서전에서 박정희를 '금욕적 모습의 인물(ascetic-looking man)'이었다고 평가한다. 1980년 10월 박정희 서거 닷새 전에 한국에서 만났을 때이다. 말수가 적은 박 대통령은 만찬에서 자잘한 얘기(small talk)를 하지 않았고 대신 20대의 딸(박근혜 대통령)이 유창하게 영어를 하면서 대화가 흘러가게 했다고 회고한다. 박정희의 강력한 의지(strong will)와 엄숙한 단호함(grim resolve)에 감동을 받았다고도 말한다.

두 사람의 이러한 성향 차이는 싱가포르와 한국 간에 서로 다른 경제발전 모델을 택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리콴유는 분배가 나빠지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다. 다국적기업의 투자를 유치해서 성장하는 발전모델을 채택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부분도 있다. 다국적기업 지역본부 책임자나 임원들은 선진국 본사에 준하는 고임금을 받는다.

반면 현지에서 채용되는 사람들은 개발도상국 수준의 저임금에서 출발한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사람들은 인도네시아나 방글라데시에서 오는 저임금 노동자들 수준으로 임금이 떨어지는 압력을 받는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1965년 건국할 때부터 소득분배가 나쁜 수준이었고 지금까지 계속 소득 분배가 나쁜 국가군(群)에 들어간다.

반면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주의자였다. 일본을 극복하고자 했고 민족 기업을 육성했다. 이들이 수출해서 경쟁력을 갖도록 몰아붙였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최소화하고 대신 외채를 빌려썼다. 부자들이 돈을 함부로 쓰는 것에 눈을 찌푸렸다. 그 결과 한국은 경제성장에 성공했으면서도 소득분배가 괜찮은 수준으로 유지됐다. 동아시아의 경제기적을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달성한 것이라고 얘기할 때에 이 기준에 맞는 나라는 한국과 대만밖에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국내에서는 경제개발 논리에 밀려 분배가 희생됐다는 얘기가 흔히 나온다. 국제비교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한국 내에서의 추세를 봐도 경제개발 기간보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영미식 금융자본 논리에 맞춰 ‘구조조정’을 하면서 분배가 더 악화됐다. 싱가포르와의 1인당 국민소득 격차도 그 이후 더 벌어졌다. ‘구조조정’을 주도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박정희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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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