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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호의 세계 책방 기행 <3> 매사추세츠 몬태규의 '북밀'] 책 속에서, 책들의 숲에서 음악회가 펼쳐진다

1834년에 지어진 오래 된 방앗간이 책방이 되었다. 곳곳에 방앗간 흔적이 남아 있다.


“인터넷서점 아마존에는 화장실이 없지만 우리 책방에는 화장실이 있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몬태규. 인구 8000명의 이 작은 도시 가운데를 소밀(Sawmill)강이 흐른다. 그 강변에 북밀(BookMill)이라는 방앗간 책방이 있다. 2007년부터 이 책방을 운영하는 시나리오 작가 수잔 실리데이는 뉴욕에서 두 시간을 달려 찾아간 나에게 아마존과 방앗간 책방의 차이가 화장실에 있다는 유쾌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이 아름다운 소밀 강변에 자전거길이 뻗어 있다. 바이커들이 떼를 지어 달리는 숲 속의 코스다. 바이커들은 방앗간 책방에 들른다.

“이 계곡을 찾는 사람들에게 우리 책방은 화장실입니다. 우리 책방 참 유용한 곳이지요? ”

한 무리의 바이커들이 훑고 지나가면 화장실을 다시 청소해야 한다.

잘나가던 시나리오 작가 출신 주인

할리우드에서 잘나가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다 방앗간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수잔 실리데이.
실리데이는 할리우드에서 30년 동안 잘나가는 시나리오 작가로 일했다. 짐 해리슨의 소설을 1994년 에드워드 즈윅이 연출한 영화 '가을의 전설' 각본을 썼다. 역시 에드워드 즈윅이 연출한 ABC 드라마 '30대(Thirty Something)'의 대본도 썼다. 버지니아 울프와 샬롯 브론테를 즐겨 읽는 시나리오 작가가 왜 화려한 할리우드를 결별했을까.

“30년을 살았지만 할리우드는 나에겐 늘 낯설었습니다. 내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문득 할리우드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2006년 이 소밀강 계곡으로 들어왔다. 1년을 머물렀다. 소밀강과 깊은 사랑에 빠졌다.

“내가 미쳤지요, 이 소밀강과 소밀강 계곡에. ”

87년 문을 연 방앗간 책방은 실리데이가 인수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의 독서편력과 문예적 지향이 책방 분위기를 새롭게 했다.

“나는 책은 좋아했지만, 책 비즈니스는 물론이고 어떤 비즈니스 경험도 없었지요. 그러나 책에 빠져들 듯이 책방 비즈니스에 빠져들었습니다. 새로운 걸 계속 배웁니다. ”

소밀강변에 자리잡은 방앗간 책방. 에어컨이 없기에 한여름엔 창문을 연다. 시원한 바람이 책방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소밀강 계곡에는 한때 27개의 방앗간이 있었다. 지금 한 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바로 1834년에 지어진 북밀이다. 이곳엔 방앗간이었던 흔적이 남아 있고,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정부는 문화재라며 함부러 고치지는 못하게 하면서도 도와주지도 않는다고 한다.

북밀이 현재 갖고 있는 책은 3만여 권. 소설과 문예비평, 역사와 인문학 책들이다. 책꽂이 일부가 비어 있다.

“천천히 채워가려고요. 꽉 채우기보다는 좀 비워놓고 싶어요. 우리 책방을 찾는 이들은 우리 책방이 갖고 있는 모든 책과 마주할 수 있을 겁니다. ”

방앗간 책방은 새삼 ‘슬로 라이프’를 생각하게 한다. ‘슬로 푸드운동’도 떠올리게 한다. 천천히 살며 생각하기, 책읽기다.

반면 아마존은 ‘패스트 라이프’를 강요한다. e북과 스마트폰은 자본주의와 기계 만능주의를 표상한다. 모든 걸 후루룩 읽게 한다. 사색하는 독서는 불가능하다. 창조적이지 않고 기억력을 감퇴시킨다.

시나리오 작가 실리데이의 방앗간 책방 북밀은 속도와 효율에 목을 매는 작금의 책 만들기, 지식생산 구조와는 전혀 다르다.

“우리 책방에는 에어컨이 없습니다. ”

한여름에는 창문을 열어놓는다. 계곡에서 바람이 쏟아져 들어온다. 숲이 말을 걸어온다.

계곡을 흐르는 강물 소리. 세상의 그 어떤 소리보다도 아름답다는 아이들의 책읽는 소리, 독서성(讀書聲)이란 말이 새삼 상기된다.
한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왔다. 창문 밖으로 숲을 내다본다. 강물 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펼친다.

나의 유토피아

“그래도 한여름에 너무 더우면 어떻게 하지요. ”
“강물로 풍덩 뛰어들지요. ”

봄·여름·가을·겨울, 꽃이 피고 녹음이 우거지고 단풍이 들고 눈이 내린다. 단풍도 단풍이지만 설경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책방이 된 방앗간, 이름만 들어도 정겹다. 찾아오는 책 마니아가 늘어난다. 그는 더 바빠진다. 바닥을 걸레질하고, 책장의 먼지를 털어야 한다. 화장실 휴지도 채워넣어야 한다.

책방에 처음 온 방문객들은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라며 감탄한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유토피아일 것이다.

“사실은 나의 유토피아입니다. ”

주변에 여러 명문대학이 있다. 스미스 대학, 애머스트 대학, 햄프셔 대학, 마운트 홀리요크 대학, 매사추세츠 대학이다. 이곳의 교수·연구자·학생들이 방앗간 책방의 주요 고객이다. 은퇴한 학자들도 찾는다. 또 뉴욕이나 보스턴에서도 찾아온다.

“비관주의자들은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책을 만들고 책읽기를 일상으로 삼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같이 먼 한국에서도 찾아오지 않습니까. 이상의 세계를 향하여 이성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니까요. ”

와서 보니 이곳은 책방이라기보다 학생들의 공부방이다. 자기 책 갖고 와서 공부하다 서가에 꽂혀 있는 이책저책을 뒤적거린다.

“우리 책방은 커뮤니티센터입니다. ”

또 현직 교수들은 강의를 하기도 한다. 퇴직한 연구자들이 학문세계와 삶을 이야기한다. 저자와의 대화가 열린다.

“책들 속에서, 책들과 함께 주말엔 음악회가 열리지요. ”

책방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주위에 카페와 갤러리, 음반숍도 생겼다.


클래식과 대중음악,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전공자들이 노래하고 피아노를 치고, 심리학 교수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한다.

노을이 내리는 강변, 계곡의 책방에서 들려오는 음악이 사람들을 신비감에 물들게 한다. 강물 소리와 책읽는 소리가 어우러지는 숲 속의 작은 책방은 분명 환상 동화책에 나올법한 이야기다.

강의와 연주는 마을공동체를 위한 봉사다. 참가자들에게는 아주 상징적인 입장료를 받는다. 장내를 정리정돈하는 경비다.

실리데이는 책방을 운영하는 한편 햄프셔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친다. 선댄스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와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초청한 영화제다.

“책방을 취미로 하느냐고 많이들 묻습니다. 하지만 책방은 내 삶이고, 북밀은 내 삶의 현장입니다. ”

직원 네 명과 함께 책방을 꾸려나간다. 글 쓸 틈도 없다.

“나처럼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아요. 책방 비즈니스는 고독한 글쓰기와는 전혀 달라요. 책방을 하면서, 나는 사람들과 생각, 그리고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책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권하고, 책에 대해 토론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

몇 권 팔리는지 묻지 마라

북밀을 찾는 애서가들이 많아지면서 이웃에 카페와 레스토랑이 생겼다. 갤러리와 음반가게도 생겼다. 책이 인간의 심성을 다듬어내고 책방이 지역을 아름답게 견인해낸다는 사실을 몬태규의 소밀 강변, 방앗간 책방 북밀이 말해주고 있다.

그러기에 책방앗간 북밀에 하루 몇 권의 책이 판매되느냐고 묻는 건 경우가 아닐 것이다. 아마 많이 팔리지도 않을 것이다. 하루에 얼마나 팔아내는지를 계산하는 건 방앗간 책방 북밀의 장르가 아닐 것이다. 그건 모든 것을 돈으로 평가하는 자본주의의 대량생산·물질만능의 발상이 아닌가.

스티븐 킹 같은 대중작가는 책을 썼다 하면 초판을 100만 권씩 찍어낸다. 책 판매를 위해 온갖 작전을 동원한다. 이렇게 많은 책을 찍어도 되는 것일까. 큰 나무들이 수없이 쓰러지겠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독일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1973년에 펴냈다. 성장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어제와 오늘 세계 자본주의의 벌거벗은 본능을 경고한다.

슈마허의 문제의식은 비즈니스를 향해 달리는 ‘거대출판’에도 해당된다. 책문화의 다원성을 구현하는 독립서점들의 존재와 의미가 더 주목받는다.

북밀의 실리데이는 몬태규 일대의 대학에서 은퇴한 연구자들이 읽던 책을 주로 구매한다. 좋은 내용의 헌책들이다.

헌책방은 책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재생시키는 리사이클링을 한다. 좋은 내용의 책을 계속 기획해서 펴내는 것이 출판사와 저자에게 주어지는 일이지만, 좋은 내용의 헌책을 리사이클링 시키는 책방의 존재가 소망스럽다. 실리데이가 책방을 하면서 얻게 된 인식이다.

뉴욕의 원로출판인 제이슨 엡스타인이 “책방 없는 문명이란 생각할 수도 없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시애틀과 뉴욕에서 각각 일하는 두 딸을 둔 실리데이는 몬태규 계곡 소밀 강변에서 책방을 하면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숲 속의 책방이 시심(詩心)을 불러일으켰을까.

“당신이 찾아낼 수 없는 곳에 숨어 있어, 당신이 필요로 하지 않는 책. ”

그가 쓴 시의 한 구절이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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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