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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5년 단임 대통령제의 고질병 ? 정권 레임덕 막으려다 '자살골'


2009년 5월 23일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불과 1년3개월여 전까지만 해도 국가원수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 수사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지만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쪽은 MB(이명박 당시 대통령) 정부였다. 전 정권에 대한 사정(司正)을 통해 국정 주도권을 되찾으려 했던 구상이 완전히 헝클어졌다. 수사는 중단되고 노 전 대통령 지지층을 중심으로 “전임 대통령을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비판이 날로 거세지면서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은 이듬해 6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대패했다. 누군가 피날레를 ‘해피 엔딩’으로 집필한 사정 시나리오가 있었다면, 당초 시나리오와는 정반대로 ‘새드 엔딩’이 돼 버린 거다.

 당시 정치권 인사들 사이에선 “사정은 늘 역풍이 따르고 부메랑이 더 무섭다는 걸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한 탓”이란 평가가 나왔다.

 이번 박근혜 정부의 사정 수사도 양상이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목숨을 끊으며 남긴 리스트가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놓은 가운데 최근 새누리당의 고위 당직자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이건 사정을 시작도 해 보기 전에 부메랑이 온 거다. 아예 전 정권에 대한 사정이 아니라 현 정권에 대한 사정이 있을 거라고 예고하는 편이 나았다.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했는지….”

 박근혜 정부는 집권 3년차로 접어든 지난달 대대적 사정을 예고했다. 사정의 주제 중 눈에 띄는 게 MB 정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원외교 비리였다. 첫 번째 수사 대상으로 떠오른 경남기업은 지난해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뗀 성 전 회장이 대주주였다. 검찰 수사는 순조로워 보였지만 지난 8일 성 전 회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원외교 비리와 관련된 내용을 찾다가 찾지 못하니 (나에 대한) 별건 수사를 하고 있다”고 강력 반발하면서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9일 성 전 회장의 자살로 상황이 급반전했다. 박근혜 정부 1~3대 대통령 비서실장의 이름과 이완구 국무총리, 친박계 실세들의 이름이 적힌 ‘성완종 리스트’는 검찰 수사의 물길을 확 바꿔 놓았다. MB 정부 자원외교와 관련된 주요 인사들이 거론도 되기 전에 현 정권 핵심 인물들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사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부메랑부터 왔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특히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사정 정국의 테이프를 끊었던 이 총리가 정치 공세의 타깃이 되고 말았다. 새누리당 내에선 “자살골도 이런 자살골이 없다”며 “엉터리 사정 정국을 끌어온 청와대 민정라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일부 의원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퇴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사정에 역풍과 부메랑이 따른다는 사실은 역대 정부에서 이미 충분히 입증됐다. 대부분 집권 초반 사정 드라이브를 걸어 효과를 본 뒤 권력이 흔들릴 조짐을 보이는 중·후반에 다시 기획사정에 나섰다가 역풍을 맞는 코스를 밟았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집권 초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속전속결로 숙청하고 슬롯머신 수사 등을 통해 대선 당시 반대편에 있던 박철언 민자당 의원을 구속시키면서 권력을 강화했다. 집권 3년차에 이뤄진 전직 대통령 비자금 수사와 ‘역사 바로 세우기’ 수사도 성공적이었다.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시키며 한때 하락세를 보이던 YS의 지지율은 60%대로 올라섰고, 이듬해 총선에서도 여당(신한국당)은 승리했다. 그러나 집권 말인 97년 1월 YS의 지시로 시작된 ‘한보 비리’ 수사는 넉 달 뒤 YS의 차남 현철씨를 구속시키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면서 결말이 났다.

 당시 한보그룹이 5조원의 부채를 안고 부도를 내자 YS는 “이참에 (한보그룹을 비호해 특혜 대출을 도운) 구태 정치인들을 손보겠다”며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전·현 정부 실세들이 줄줄이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여론은 “현철씨가 한보 사태의 배후”라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YS는 결국 당시 김기수 검찰총장에게 “혐의가 없으면 찾아서라도 현철이를 구속하라”는 지시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현철씨에겐 한보 사태와 무관한 ‘정치자금에 대한 조세포탈’ 혐의가 적용됐다. 정치자금을 받고도 세금을 안 냈다는 이례적인 법리가 적용되면서 대통령 아들이 구속된 것이다.

 김대중(DJ) 정부 초반에는 98년 8월 ‘세풍(稅風)’사건이 있었다. 97년 15대 대통령선거 당시, 이석희 국세청 차장 등이 23개 대기업에서 166억3000만원을 한나라당 대선자금으로 불법 모금한 사건이다. 검찰의 정치권 사정으로 시작된 세풍 수사로 인해 대선에서 패한 한나라당은 다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DJ 정부는 곧 옷 로비사건을 만나 상황이 역전되고 말았다. 99년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남편의 구명을 위해 고위층 인사의 부인에게 고가의 옷으로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세풍 수사가 옷 로비사건을 초래한 건 아니지만 사정 수사가 집권세력의 반대 진영을 결집시킨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역풍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DJ 정부는 중·후반 터진 일련의 게이트로 더욱 흔들렸다. 벤처 거품이 빠지면서 불거진 정현준·진승현 게이트와 이용호·최규선 게이트가 줄줄이 터지며 결국 차남인 홍업씨와 3남인 홍걸씨가 구속됐다. 2002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여당(새천년민주당)이 참패했고, 2003년 이뤄진 나라종금 대출 재수사 땐 장남인 홍일씨가 불구속 기소됐다.

 노무현 정부의 사정은 대선자금 수사가 대표적이다. 2003년 시작된 SK 비자금 수사는 당시 대통령의 측근인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구속으로 이어졌고, 전면적인 대선자금 수사의 기폭제가 됐다. 초반엔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최 비서관에 이어 안희정 현 충남지사 등이 구속되면서 여권이 수세에 몰리는 듯했으나 곧 한나라당이 ‘차떼기’로 치명타를 입었다. 이에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고 나서 결국 국회에서 탄핵안을 통과시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탄핵안 통과가 다시 역풍을 불러 2004년 총선에서 노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달성한다. 선거 결과는 여권의 승리로 끝났지만 정권 초반의 사정이 대통령 탄핵안 통과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기록을 남겼고, 진영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MB 정부는 2008년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촉발된 ‘촛불 정국’에 놀란 뒤 사정 드라이브를 걸었다. ‘박연차 게이트’로 불린 태광실업에 대한 수사가 대표적이었다. 당시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후견인이었다. 그러나 이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이어지면서 MB 정부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사정의 후유증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MB 정부는 말기에 친형인 이상득(SD) 의원(불법 정치자금 수수), 최측근인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등에 연루돼 구속됐다.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정치권엔 “사정의 역풍은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그런 걸 알면서도 왜 기획사정에 나서는 걸까. 전문가들은 “5년 단임제 대통령제의 특성상 2~3년차만 돼도 레임덕이 오는 만큼 정국의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대 강원택(정치학) 교수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사정이 부메랑에 시달린 건 ‘상황’과 ‘정당성’이 서로 어긋났기 때문”이라며 “자기 세력의 비리를 먼저 엄격히 쳐내고 국민이 정당하다고 인정해야 부메랑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S BOX] “사정기관, 비리정보 미리 축적 … 권력 ‘신호’ 오면 즉시 수사”

“이명박(MB) 정부 초기에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바로 그날 범죄정보를 수집하는 한 개 부서에서 내놓은 자료만 30㎝가 넘었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퇴직 검찰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범죄정보 보고서는 기껏해야 A4 용지 1~2장이다. 그런데 한 부서의 보고서만 그 정도라면 검찰 전체가 수집한 전 정권의 비리 관련 정보가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면 일종의 ‘신호’가 온다고 했다. 정권마다 반복하는 ‘사정 드라이브’가 그것이다. “MB 정부 초기에 ‘국방예산을 늘려 달라’는 요구가 나오자 이 대통령이 ‘국방 비리만 없으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자 검찰은 방위산업 비리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에도 누적돼 있던 전 정권의 방산 비리 관련 보고서가 쏟아져 나왔다.”

 -미리 수사해 놓는 대상을 푼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의 자료가 있다고 보면 된다. 이번에도 이완구 총리가 부패와 관련한 언급을 한 직후에 경남기업이 나왔다. 미리 갖고 있던 수사 자료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정을 시작할 때 어떤 기준으로 수사착수 대상을 정하나.

 “정권의 변화에 따라 (입맛에 맞는 수사를) 미리 준비해 놓는다. 말하자면 알아서 기는 거다. 검찰뿐 아니라 사정기관이 다 그렇다.”

 -수사 대상 선정 시 권력 눈치 본다는 뜻인가.

 “그렇다. 중요한 자료는 이미 다 누적이 돼 있다. 권력이 바뀌고 누가 어떤 말을 하면 사정기관에서는 바로 즉시 수사를 시작할 수 있다.”

강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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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