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Saturday] 독자 마음 '빵' 때리는 쉬운 시 … 평론가 "참신하나 울림 안 남아"

‘고민하게 돼. 우리 둘 사이.’

 SNS에 올라온 글귀 하나. ‘로맨스 영화의 한 대목인가?’ 머리를 갸우뚱하다 글 하단에 적힌 제목을 본다. 글 제목 ‘축의금’. 원조 SNS 시인이라고 불리는 하상욱(34)씨의 시다. ‘서로가 소홀했는데 덕분에 소식 듣게 돼 - 제목 『애니팡』’ ‘너인 줄 알았는데, 너라면 좋았을 걸 - 제목 『금요일 같은데 목요일』’ 등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찾아 반전 제목으로 풀어낸 그의 시는 SNS에서 급속도로 퍼졌다. 이런 시들을 엮어 출간한 책만 벌써 두 권째다.

 SNS ‘신(新)문학인’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트위터의 ‘리트윗’, 페이스북의 ‘좋아요’, 인스타그램의 ‘해시태그’ 등을 통해 빠른 속도로 번지더니, 이제 오프라인까지 점령한 모양새다. 특히 문학 중에서도 짧은 글에 함축적인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시’가 그렇다. 교보문고 시 분야 판매 순위 5위권 안에 있는 책 중 2권이 ‘SNS 시집’이다. 최대호(27)씨의 『읽어보시집』(2위)과 하상욱씨의 『서울시』(4위)다. 두 사람은 이미 ‘SNS 3대 시인’으로 불리는 SNS 스타다. 나머지 한 사람인 이환천(29)씨도 곧 『이환천의 문학살롱』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기업과 관공서에서도 SNS 문학인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대기업은 이들의 시를 이용해 광고 카피를 만들고, 지역 경찰에서는 이들에게 홍보시를 의뢰하기도 한다. 놀라운 건 SNS에 시를 올리기까지 세 사람 모두 글쓰기와 관련된 어떤 교육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씨는 그래픽 디자인 일을 하고 있었고, 최씨는 식품공학과를 졸업한 취업준비생, 이씨는 제약 회사 직장인이었다.

 이들의 성공에는 ‘공감’이라는 키워드가 있었다. 이씨의 시는 ‘효도폰 싫다, 아이폰을 달라’는 부모님, ‘주말에 미친 듯이 놀아놓고 왜 나만 탓하냐’는 월요일을 이야기하며 일반인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최씨의 시 역시 ‘거짓말쟁이! 대충하고 나온다더니 왜 이렇게 예뻐?’라며 사랑에 빠진 남자의 심정을 대변하기도 하고, ‘나도 동네 가면 친구 많은데…’하며 복학생의 마음을 후벼 파기도 한다. 최씨는 “학교 수업을 듣다 지루해서 자작시를 몇 편 써 친구들에게 보여줬더니 다들 재밌어 했다”며 “SNS에도 올렸는데 어느 순간부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윤정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들의 글은 여러 번 생각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빵’ 때리는 쉬운 글”이라며 “매일 엄청난 글들이 오가는 SNS 뉴스피드 속 독자들의 니즈(needs)를 정확히 파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것도 시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기존 문학계의 시선은 엇갈린다. 등단조차 하지 않은 아마추어의 글들이 책 판매 상위권이라는 것 자체에 일종의 ‘열패감’을 느끼기도 한다.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용희 평택대 교수는 “정통 문학계에선 방어적으로라도 대다수가 이런 글들을 문학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사실 문학의 장르적인 명제나 정의 같은 건 이미 해체됐다는 생각이 든다”며 “요즘 시대에는 문학이라는 개념에서 좀 더 확대된 ‘글쓰기’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편에선 문학적 깊이를 아쉬워하기도 한다. 강동호 문학평론가는 “진정한 명작은 한 번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봐도 마음속 울림이 남아 있는 것”이라며 “요즘 유행하는 SNS 문학들은 산뜻함과 참신함은 갖추고 있지만 그 유통기한이 길어보이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당사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이환천씨는 “이게 ‘시’가 아니라고 하면 인정하겠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시라고 하면 시고, 아니면 아닌 것”이라고 말한다. 최대호씨도 “내 글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존재의 이유는 충분하다”고 대답한다. 이윤정 평론가는 “그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딱 그 정도의 감성, 그 정도의 무게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