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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삶의 마지막 순간, 누구와 보내고 싶나

독일 베를린 추모공원 천사상. 독일 작가 그레고어 아이젠하우어는 “인간이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좋은 기억”이라고 말한다. [사진 책세상]

내 인생의 결산 보고서
그레고어 아이젠하우어 지음
배명자 옮김, 책세상
312쪽, 1만4000원


다짜고짜 묻겠다. 당신의 삶은 이제부터 한 시간 후 끝난다. 생의 마지막 한 시간을 당신은 누구와 보내고 싶은가?

 평온한 주말 아침부터 이 무슨 우울한 가정이냐고? 이야기를 좀 들어 보시라. 저자는 10여 년간 독일 일간지 타게스 슈피겔에 추모기사를 쓰는 작가로 일했다. 죽은 이들의 인생을 간결하게 요약하는 부고(訃告) 기사 말이다. 하지만 세상사람들이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인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만 크고 작은 추억을 남기고 떠난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 신문사로부터 유족의 연락처를 받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A4용지 2~3장에 고인의 생애를 요약하는, 그런 일.

 쉬웠을 리가 있나. 슬픔으로 오열하는 유족들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는 일은 고역이었다. 이런 저런 기억을 풀어놓으면서도 ‘당신이 그에 대해 뭘 알겠어’라는 눈길을 던지는 이들이 많았다. 스스로도 미심쩍었다. 살아있을 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의 삶을 내가 과연 잘 쓸 수 있을까. 자전거로 출근하던 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여자, 에이즈로 죽은 동성애자, 술에 취한 채 쓰러져 시궁창에서 발견된 남자…. 이런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그려야 하나.

 꾸미지 않기로 했다. 아름답게 보정하지 않고 최대한 ‘생얼’을 담아내려 했다. 단, 한가지를 찾으려 애썼다. ‘모든 사람에게는 특별함이 있다. 그 사람만의 포인트.’ 우울증에 시달리다 18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남자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 “그는 성공했다. 아무리 봐도 그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 오직 하나, 살아갈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18층에서 뛰어내리려면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할까.” 유족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직접 쓰는 것이 더 나았겠네요.” 하지만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그는 이런 사람이었어요!” 감탄하는 이들도 있었다. 젊은 시절을 마약에 취해 살았지만, 남자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후 마약을 단호히 끊은 한 여자의 삶에서 그는 ‘자기 연민의 늪에서 스스로 빠져나온 용기’를 읽는다. “그녀는 삶을 허비하는 것이 더 영웅답다고, 삶은 허무하고 무의미하다고 속삭이는 사탄과 싸워 이겼다.”

 책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죽음을 접하며 저자가 떠올린 질문을 정리한 것이다. 왜 사는가, 나는 행복한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무엇을 해야 하나, 신은 있는가 등이다. 대략 뻔하면서도 당혹스러운 질문들. 저자는 자신이 찾은 대답을 짧게 던지며 시작한다. 왜 사는가. “이 문제는 통과!” 나는 아름다운가? “그렇다.” 무엇을 해야 하나? “아무것도, 일단 아무것도 하지 말라.” 장난 같은 답안이다. 저자가 진지하지 않은 이유는 이렇다. “영화도 문학도 철학도 실제 삶을 대체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직접 살아 고유한 대답을 찾아야 한다.” 그러니 알아서 생각하라. 제발 게으름 좀 피우지 말고!

 대신 곳곳에 자신의 경험과 독서에서 얻은 힌트를 숨겨놓는다. 그가 부고를 쓴 사람 중엔 어릴 적부터 수많은 질병과 싸우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남자가 있었다. 죽음이 깊게 드리운 삶이었지만 그는 늘 평온하고 즐거워보였다. 유족들이 건넨 수첩에는 죽은 이가 남긴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크게 외치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다. 하루의 끝에서 ‘내일 다시 해보자’라고 말하는 작은 음성이 용기일 때도 있다.” 그는 용기가 있었기에 행복할 수 있었다. 저자의 어머니는 50년간 꾸준히 복권을 샀다. 하지만 투자한 돈 이상을 벌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어머니가 얻은 수익은 내가 계산한 수치 이상이었다. 어머니는 매주 백만장자가 되기 일보 직전까지 갔고, 지금도 여전히 아슬아슬하게 빗나간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행복이다.” 너무 뻔하게 들리겠지만,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이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알겠나. 알기는 개뿔. 혹시 아까부터 말투가 거슬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는가. 사과한다. 저자의 문체를 흉내 낸 것뿐이다. 저자는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성공하지 못한’ 작가이자 철학자다. 『골프: 실패학 강의10』 『영원한 2인자』 같은 책들을 썼다. 웃어야 할 지점을 정확히 찾기 힘든 (아마도) 독일식 유머를 섞어가며, 툭툭 내던지듯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덕분에 어둡고 무거워지기 쉬운 이야기가 술술 넘어가니, 이 책이 가진 강점이랄 수도 있겠다.

 그리하여 결론이다. 글을 마치며 저자는 당신 인생의 결산 보고서, 즉 A4 세 장짜리 추모기사를 당장 써 보라고 말한다. 솔직하고 짧게.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이것이 죽음과 대면하는 방법이다. 왜 당장 해야만 하느냐고? 처음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자. 생의 마지막 한 시간을 당신은 누구와 보내겠는가. “죽음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으므로, 우리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이 질문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S BOX] 괴테의 유언 “방을 밝혀라”

『내 인생의 결산 보고서』에서 저자가 던지는 또 하나의 질문이 있다. 당신은 생의 마지막에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전쟁에서 자주 죽을 고비를 넘겼던 독일 작가 에른스트 윙거는 마지막 유언을 수집했다고 한다. 죽음의 순간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이니 다른 말보다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수집한 유언에 따르면 대문호 괴테의 마지막 말은 이거였다. “방을 더 환하게 밝혀줘.” 실증주의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는 죽음을 앞두고 “이 얼마나 막대한 손실인가”라고 말했다. 저자는 이렇게 덧붙인다. “농담이었기를 바란다. 설마 진심으로 자신의 죽음을 손실이라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유명인들은 대개 삶의 마지막에 후세에 길이 전해질 굉장한 말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저자가 일반인들의 수많은 죽음을 접하며 들은 가장 멋진 유언은 전혀 유명하지 않았던, 증손자 열 명, 고손자 한 명을 두고 세상을 떠난 할머니 헤르타 두비츠키의 유언이었다.

 ‘그녀는 죽음을 바라보며 살지 않았다.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음이 임박했을 때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갈 땐 조용히 가야 해.” “아이들을 잘 보살펴라!”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러고는, “불을 꺼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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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