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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역관·화원·의원 … 조선 르네상스의 주역들

조선의 중인들
허경진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400쪽, 1만8000원


중인(中人)은 글자 그대로 중간 계층이다. 조선시대 양반과 평민·천민 사이에 위치해 주로 전문직 관원으로 일한 전방위 지식인을 가리킨다.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며 자신의 능력을 함양하고 부를 축적했지만, 기술직과 예능인을 천하게 여기는 신분 차별 탓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불만 집단이기도 했다. 기득권을 지켜야했던 양반에 비해 몸이 가볍고 생각이 진취적이었던 중인은 외부 세력이 밀려드는 19세기 말 들어 날개를 달았다. 통역관이나 세관 직원 등으로 일하며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번역서를 내는 등 새 시대의 문화운동가로 조선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허경진(63)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현실에서 좌절했던 중인이 꿈꿨던 시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라고 본다. 정조(재위 1776~1800) 시대 화려하게 꽃핀 문화융성의 저력이 중인 손에서 나왔다고 증언한다. 한양의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살았다 해 위항인(委巷人)이라 불린 이들이 인왕산을 터전 삼아 문화공동체를 이룬 뒤 조선의 르네상스를 일궜다는 실체를 엮었다.

 요절한 천재 역관(譯官) 이언진, 일본에서 모실 정도로 조선통신사의 인기화원이었던 김명국, 전염병 마마로부터 왕실을 구한 유상, 술과 바둑이 인생의 전부였던 국수(國手) 유찬홍, 조선 후기 최고의 출판편집인 장혼 등 당대의 신지식인 모습이 생생하다.

 특히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전쟁의 시대를 평화의 시대로 돌린 조선통신사 중추세력 중인을 평가한다.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활동하는 허 교수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허 교수는 이미 엮어낸 『조선 평민 열전』과 짝을 이룬 이 중인 열전에서 여일하게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삶의 본보기를 찾았다. 나라를 살리고 이끌어가는 진정한 일꾼은 누구인가. 그 답이 조선의 중인들 일생에 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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