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영혼을 향한 대화를 원한다면 키스하라!

[월간중앙] 정여울, 그림을 읽다 / 키스, 닿을 수 없는 존재와의 만남

입을 맞추는 행위는 모든 사랑의 표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숭고하다. 작별의 순간에 연인은 키스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교환하고 간직한다. 프란치스코 헤이즈, <키스>(1859)


카프카는 속삭인다. 어떤 사람이 비수처럼 느껴질 때, 날카로운 것으로 당신의 마음을 마구 휘젓고 가슴을 에이게 한다면, 당신은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입 맞추는 연인들의 표정은 행복해 보일 때도 있지만 때로는 비탄에 잠겨 있을 때도 많다.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아름다운 입맞춤의 표정은 하나같이 깊은 슬픔을 담고 있거나 미지의 존재를 향한 신비로운 호기심을 담고 있다. 키스는 그 몸짓의 주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은밀한 감정의 메신저다. 귀가 아닌 입술에 전해지는 귓속말이 바로 키스이므로.

서로를 깊게 포옹하며 마치 이것이 마지막 키스인 듯 절절한 기운을 뿜어내는 이 두 커플의 모습은 은밀한 격정을 품고 있다. 비밀스러운 사랑을 나누는 듯한 두 연인은 이제 막 안타까운 작별의 키스를 나누는 듯 보인다. 남자의 한쪽 다리는 계단 위에 다급한 듯 살짝 걸쳐져 있는데, 그는 급히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서 차마 그냥 갈 수 없어 그녀에게 입을 맞추는 것처럼 보인다. 어두운 건물 안을 온몸으로 환하게 밝히는 여인의 하늘빛 드레스는 남자의 어둡고 거칠어 보이는 의상에 대비되어 더욱 현란하게 빛난다. 화려한 비단 드레스를 단정하게 갖춰 입은 여인의 모습과 대비되는 남성의 모습은 어딘가 불안한 방랑자의 기운을 뿜어낸다. 두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신분의 격차가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곧 멀리 떠날 것만 같은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그런 남자를 눈이 부신 듯 형형하게 바라보는 여인의 눈빛은 꿈을 꾸는 듯 신비롭고 애절하다. 이루어지기 어렵기에 더욱 절절한 사랑의 징표는 이 안타깝고 아름다운 키스로 형상화된다. 왼쪽 화면 아래 미하게 보이는 인간의 형상은 이들의 비밀스러운 사랑이 곧 들킬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아슬아슬하게 암시하고 있다.

호위무사와 공주의 애절한 작별의 키스

계단에서 마주친 여인의 팔에 입맞추는 호위무사와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린 여인의 표정에 슬픔이 묻어난다. 중세 덴마크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랑 이야기를 그려 더 애틋하다. 프레드릭 윌리엄 버튼, <탑 계단에서의 밀회>(1864)


헬레릴과 힐데브란트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은 그림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 중 하나다. 두 연인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키스를 나누는 듯 안타까운 몸짓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그림은 중세 덴마크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랑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자신을 지켜주는 호위무사 힐데브란트와 사랑에 빠진 힐레릴 공주의 아버지는 딸의 러브스토리를 알아챈 후 분노하고, 아버지는 딸의 비밀스러운 연인을 죽이려 한다. 이 장면은 이제 죽음을 앞둔 호위무사가 공주에게 마지막 작별의 키스를 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직접 입맞춤을 하지 못하고 그녀의 팔에 키스하는 호위무사의 모습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연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러워 서로의 얼굴조차 쳐다보지 못하는 두 사람. 공주의 호위무사 힐데브란트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하지만 비장함과 당당함이 함께 느껴진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공주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 듯하다. 필사적으로 사랑했으므로 어떤 후회도 없어 보이는 남자와 달리, 공주의 모습은 슬픔으로 무너져 내린다. 이토록 사랑하는 이를 구할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공주는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다. 이 안타까움 속에서도 두 사람의 몸짓은 지극히 아름답다. 공주의 푸른 드레스는 드넓은 바다가 지닌 가장 해맑고 눈부신 기운만을 모은 듯 완벽한 모습으로 물결친다. 그녀의 기다란 치맛자락은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화면 전체를 생동감 있게 물들인다. 그들이 겪어온 그 모든 사랑의 역사를 압축하는 듯한 이 푸른 드레스는, 꺼져감에도 불구하고 빼앗길 수 없는 사랑의 순수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키스를 일컬어 소크라테스는 “마음을 빼앗는 가장 힘세고 위대한 도둑”이라 했다. 프레드릭 레이튼의 <신혼부부>는 그 위력적인 키스의 마력을 화사한 색감과 따스한 질감으로 담아냈다. 신부가 마음껏 기댈 수 있도록 든든한 기둥처럼 버티고 있는 신랑의 모습, 눈을 뜨고도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 표정으로 남편에게 한껏 기대고 있는 신부의 모습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이 그림은 격정적인 키스를 그린 것이 아니기에 더욱 오래 눈길을 끈다. 이 작품에는 필사적으로 사랑을 구하는 자의 격정이 아니라, 행복을 이미 품 안에 가득 넣은 자의 평화가 깃들어 있다. 이마나 볼, 입술이 아닌 손등에 키스를 하는 자세는 여성을 ‘열정의 대상’이 아닌 ‘존중의 대상’으로 대하는 마음가짐을 보여준다. 순간의 열정을 넘어 영원한 존중의 대상으로 승화하는 여인의 표정은 나른하고도 우아하다. 열정적인 키스가 사랑의 클라이맥스를 표현하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면, 이렇듯 평화로운 키스는 느리고 잔잔하게 지속되는 사랑만이 간직할 수 있는 ‘영원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달콤하고, 눈부시고, 따뜻한 그 무엇의 소통

1. 둥지를 받쳐든 여인이 아기 새에게 입을 맞추는 순간 자연이 이들을 축복하듯 나팔꽃으로 합창한다. 콩스탕 몽탈, <둥지>(1893) / 2. 비참한 결말을 예지하듯 기진맥진한 여인을 떠받친 채 키스하는 남성의 모습이 절박하고 아슬아슬하다. 까미유 클로델, <사쿤탈라>(1888)


키스의 정서에는 달콤한 행복만이 깃들지는 않는다. 영원한 이별의 키스에는 그 어떤 미소나 행복도 끼어들 틈이 없다. 까미유 클로델의 <사쿤탈라>를 보고있으면, 버림받음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이 느껴진다. 여인은 자신이 지닌 모든 열정을 불살라 사랑했지만 이제 기진맥진한 듯 쓰러져가고 있고, 남자는 쓰러지려는 그녀를 안타깝게 받아 안으면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자신들의 위태위태한 사랑을 지탱하려 한다. 인도문학을 각색한 작가 칼리다사의 희곡 작품인 <사쿤탈라>에서 여주인공은 왕에게 버림받고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낸다. 희곡에서 사쿤탈라는 자신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잊은 왕에게 버림받지만 나중에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됨으로써 사랑을 되찾게 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까미유 끌로델은 다시는 로댕에게 되돌아갈 수 없었다. 이 작품에서는 로댕의 아내에게 심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로댕을 향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녀의 끊임없는 불안이 감지된다. 언젠가는 비참하게 버려지게 될 것을 예감했던 그녀의 비극적인 사랑은 안타까운 키스의 몸짓으로 형상화된다. 이 작품에서 키스는 단순한 접촉이 아니라 쓰러지려는 그녀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무게중심이다. 남자의 애틋한 키스가 바닥에 허물어지려는 그녀의 아슬아슬한 육체를 절박하게 떠받쳐주고 있다. 키스는 마치 놀이기구 시소의 중심처럼 여인의 무게와 남자의 무게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일구어낸다. 사랑의 절정에 다다른 순간, 사랑의 비극적 결말을 예감하는 여인의 뼈아픈 공포가 느껴진다. 사랑의 슬픔을 온몸으로 깨닫는 순간, 키스는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는 ‘몸으로 쓴 편지’가 되어 연인의 가슴을 도려낸다.

남녀 간의 사랑뿐 아니라 동물과 인간 사이에도 아름다운 입맞춤의 순간이 있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순간의 아름다움은 언제 보아도 가슴 뿌듯하다. 이제 세상에 나온 지 며칠 되지 않아 보이는 새끼 새들의 여린 부리를 향해 삐죽이 입술을 내미는 여인의 사랑스러운 옆모습은 자연과 인간이 한데 어우러지는 작은 축제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다. 여인의 알록달록한 옷 색깔은 마치 작은 꽃밭을 연상시키는데, 그리하여 이 작품은 ‘인간과 새들’의 키스이기도 하지만, 꽃들과 새들의 키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들이 강아지에게 입맞춤하는 순간, 여인이 사랑의 증표로 받은 꽃다발에 키스하는 순간, 우산으로 가리지 않고 온몸으로 비를 맞는 순간. 그 모든 순간은 인간과 자연의 내밀한 키스를 축복한다.

작가 랭스턴 휴즈는 빗방울이 인간에게 달콤한 키스를 선물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표현한다. “빗방울이 당신에게 키스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빗물이 은빛으로 방울지며 당신의 이마를 때리도록 내버려 두어라. 빗방울이 당신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도록 내버려 두어라.” ‘사람과 사람’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끼리’의 입맞춤은 이렇듯 사랑의 대상 자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행복’에 대한 지극한 예찬과 축복의 정서를 머금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때로는 달콤한 키스가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치명적인 유혹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키스는 인생 전체를 무너뜨려버린다고. 뱀파이어의 키스야말로 가장 치명적이면서도 매혹적인 키스일 것이다. 매혹적인 이성의 모습으로 나타난 뱀파이어가 인간에게 달콤한 키스를 하는 순간, 인간은 죽음도 삶도 아닌 저주의 시공간에 진입하게 된다. 뱀파이어의 키스로 인해 불멸의 존재가 되는 순간, 오히려 ‘필멸의 존재’인 인간을 질투하게 되는 역설. 흡혈귀의 비극은 곧 인간 존재의 욕망이 지닌 본질적 모순을 드러낸다. 필멸의 존재일 때는 불멸의 존재를 열망하지만, 막상 그토록 원하는 불멸의 존재가 되자 ‘죽을 수 있는 존재’의 찰나성을 그리워하고 동경하며 질투한다. 불멸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타인의 피를 빨아먹을 수 있을 정도의 잔혹성을 대가로 한다는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불멸의 존재가 되려다가 오히려 명을 재촉한 진시황의 비극처럼, 너무 커다란 것을 욕망하는 인간은 분명 그 욕망에 비례하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브랑쿠시는 키스를 형상화한 수많은 조각 작품을 남겼는데, 그의 작품들은 점점 키스의 형상을 과감하게 기하학적으로 추상화시킨다. 인물의 생김새와 미세한 표정 등은 거의 생략된 채, ‘키스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그 무엇’만을 남겨놓은 느낌이다. ‘누가’ 키스하는지보다 ‘키스란 무엇인가’를 형상화한 것 같은 작품이다. 브랑쿠시에게 키스란 무엇보다도 ‘포옹’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토실토실한 두 팔로 서로를 부서질 듯 껴안고 있는 두 사람은 ‘둘’이긴 하나 이미 ‘하나’로 용해되고 있는 중이다. 브랑쿠시의 키스에는 ‘코’가 보이지 않는다. 영화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나>에서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은 키스를 할 때 코를 어떻게 해야 할지 언제나 궁금했다고 고백한다. ‘코의 위치’야 말로 키스의 장애물인 것이다. 그런데 브랑쿠시의 키스는 ‘코 따위는 없어져도 좋다’는 듯이, 두 남녀의 코의 흔적이 아예 사라지고 없다. 3차원의 공간에 두 사람의 코를 입체적으로 만들었다면 저토록 혼연일체가 된, 3차원인데도 불구하고 2차원의 납작한 느낌을 주는 유머러스한 키스의 장면이 연출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황홀경의 순간

1. 키스는 행복과 평화로운 일상을 표현하는 언어가 되기도 한다. 갓 결혼한 남녀의 평화로운 키스는 잔잔한 사랑과 행복을 일깨운다. 프레드릭 레이튼, <신혼부부>(1881) / 2. 키스할 때 필요한 건 상대를 응시할 눈과 상대를 꼭 휘감을 팔, 그리고 입술뿐이다. 완벽히 하나를 이루는 데 있어 코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일 뿐이다. 콘스탄틴 브랑쿠시, <키스2>(1908)


브랑코시는 코라는 장애물을 과감히 제거함으로써, 키스할 때는 코가 존재한다는 사실자체를 잊어버리는 두 연인의, 서로를 향한 완벽한 몰입을 형상화해냈다. 코가 없어도 좋다. 코가 어디로 도망갔는지도 모른 채로 서로의 존재에 완벽히 몰입하고 있는 두 사람으로 인해 ‘키스란 무엇인가’라는 대답은 완성된다. ‘코’로 상징되는 자존심이 사라진 공간에는 오직 사랑의 들숨과 날숨만이 남는다. 숨을 쉬는 장소로서의 생물학적 필요성마저 제거됨으로써 숨 막힐 듯한(breathless), 또는 숨소리마저 빼앗겨버릴 듯한 (breathtaking) 열정의 시간은 완성된다. 숨 쉴 틈도 없이 서로에게 완전히 몰입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코는 물론 서로의 입체적인 몸의 형상조차 납작하게 만들 만큼 강력하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키스하는 동안 ‘내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 자체가 사라져버린 황홀경의 상태를 본다.

키스보다 더 좋은 유일한 순간은 키스를 나누기 직전이라는 말이 있다. 그가 그녀의 얼굴을 눈부시게 바라보며 그녀를 숨막히게 만드는 바로 그 순간. 연인들의 감정은 절정에 달한다. 클림트의 <사랑>은 바로 이 순간 최고조로 달아오른 설렘과 열정의 온도와 빛깔을 그림 가득 담았다. 주변이 온통 어둠으로 휩싸이고 이 순간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듯한 행복한 착시효과. 사실 세상은 그들을 보고 있다. 천사 같은 미소를 띤 에로스도, 그들의 사랑을 질투하는 듯한 악마도 그들을 보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그들을 보고 있지만, 그들의 눈망울에는 오직 서로의 얼굴만이 그득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은 ‘그 밖의 사람들’이 되어버리고, 오직 그 사람만이 커다랗게 도드라져 보인다.

눈을 감고 키스를 기다리는 여인의 몸짓은 키스가 시작되기 전의 황홀경을 드러낸다. 그런 여인의 사랑스러운 표정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에는 망설임과 도취, 냉정한 관찰과 통제의 욕망이 동시에 느껴진다. 여인은 투명하고 순정하게 키스를 갈망하지만, 남자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뒤얽혀있는지도 모른다.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연인들, 사랑을 둘러싼 그 수천 년의 동상이몽이 바로 사랑의 본질이라고 증언하는 것 같은 작품이다. 황금빛이지만 절제되고 차분한 느낌을 주는 프레임에 장식된 분홍색 장미 덩굴은 ‘영원히 간직해두고 싶은 순간’을 포착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소망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분홍색 장미꽃은 언젠가는 시들 것이다. 이 순간은 아마 그들의 사랑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일 것이다. 이 순간이 지나면, 그들의 사랑은 어쩌면 내리막길을 향해 치닫게 될지도 모른다. 열정을 원동력으로 한 낭만적 사랑은 그렇게 ‘필멸의 운명’을 대가로 한다. 불꽃처럼 타오르다가 연기처럼 사라져갈 사랑은 연인들에게 축복이자 저주가 된다.

샤갈의 그림에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을 제공해준 영원한 뮤즈, 아내 벨라를 향한 그의 사랑이 담뿍 담겨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일 뿐 아니라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다가온다. 그녀와 함께 한다면 그는 무중력의 세계를 둥둥 떠다니는 천사의 영혼처럼 자유로워진다. 그녀와 함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뭉클한 자신감이 그림 전체에 그득하다. 그는 키스를 그리면서 그 몸짓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완전한 행복’의 이상향을 그렸다. 목을 활처럼 길게 뒤로 구부려 사랑하는 여인에게 키스를 하는 남자는 이미 피터팬처럼 자연스럽게 허공을 날고 있다. 방금 음식을 먹다 만 듯한 식탁, 화사한 꽃무늬 패브릭, 앙증맞은 의자, 새빨간 양탄자 하나하나가 그들이 나눠온 행복의 빛깔과 실루엣을 드러낸다. 이것은 결코 ‘헛된 환상’이 아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낭만적 환상이 지극한 현실이다.

낭만적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마법

입 맞추기 직전의 연인에게 동경과 질투 어린 천사와 악마의 시선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모든 감각과 의식은 오로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다. 구스타브 클림트, <사랑>(1895)


벨라가 십대 시절에 만나 사랑에 빠졌던 두 사람은 30년이나 해로하며 사랑과 결혼의 완벽한 일치라는 꿈같은 이상을 실현했다. 벨라와 샤갈이 결혼하기 몇 주 전에 그려진 이 그림은 그들이 나눌 행복의 이상을 완벽하게 예언하는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가장 지배적인 색감이 검은색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화면의 정중앙을 지배하고 있는 두 주인공이 모두 새까만 의상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은 전혀 어둡지 않다. 온갖 정열적인 빛깔들이 총출동한 이 그림의 주된 색깔은 그리하여 ‘검은색’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빛깔이다. 이 그림의 모든 디테일에서는 구석구석 사랑의 은총이 흘러넘치는 것만 같다.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둘만의 조촐한 식사만으로도 이미 지고의 행복에 다다른 두 사람의 표정은 주변환경과 완벽한 혼연일체를 이루며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행복의 빛깔로 물들인다. 세상살이의 피곤함, 먹고 살기의 힘겨움, 인간관계의 복잡함이 우리를 아래로 잡아끄는 ‘마음의 중력’이라면, 이 그림은 그런 아픔의 중력으로부터 해방되어 행복의 나라로 떠오르는 두 사람의 환희와 희열로 가득하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키스신을 꼽는다면 언제나 다섯 손가락 안에 뽑힐 만한 이 숨막히는 걸작은 열정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른 연인들의 애절한 사랑을 표현한다. 몽환적이면서도 처절한 느낌을 주는 이 경이로운 입맞춤의 광경은 그 압도적인 스케일로 인해 관람객을 더욱 강렬하게 흡입한다. 처음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보았을 때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싶은 기분을 간신히 참아야 했다. 정말로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기 때문이다. 사진도 찍을 수 없고 삼엄한 경호의 기운이 감도는 그림이었기에 이 작품 주변에는 긴장감이 가득했지만, 누구나 이 그림 앞에서는 될 수 있는 한 오래 서있고 싶어 했다. 이 그림 하나를 보기 위해 비엔나를 방문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클림트의 <키스>는 기대를 뛰어넘는 스펙터클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타인의 존재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몸짓

1. 허공을 날아 아내에게 키스를 하는 남자와 알록달록한 집안의 풍경은 샤갈이 그의 아내 벨라와 함께 꿈꾸던 ‘완전한 행복’의 이상향이다. 마르크 샤갈, <생일>(1915) / 2. 황홀경에 도취된 여인의 표정은 보는 이에 따라 달리 해석이 가능한 키스하는 순간의 거의 모든 감정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키스신 중 하나로 꼽힌다.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1908


지상에서의 마지막 키스의 희열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듯한 여인의 꿈꾸는 듯한 표정은 신비로운 슬픔을 자아낸다. 이 순간의 무한한 열광을 위해 아낌없이, 거의 광기에 가까운 낭비의 정신으로 금빛 물감이 흩뿌려진 화면을 오랫동안 응시하면, 황금의 도가니에 푹 빠져 익사할 것만 같은 두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이 더욱 실감나게 펼쳐진다. 벼랑 끝에 서 무릎을 꿇고 서 있는 듯한 아슬아슬한 포즈는 두 연인의 사랑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이 장면 뒤에는 더욱 비극적인 결과가 기다릴 것만 같은 슬픈 예감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 비극적인 사랑에 어떤 후회도 없어 보이는 그녀의 해맑은 환희의 표정은, 저절로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라는 문구를 떠올리게 만든다. 신부의 머리장식처럼 화사한 꽃을 꽂고 있는 그녀의 머리 주변에는 마치 광배처럼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이 순간이 생의 마지막일지라도 그 어떤 후회도 없는 듯한 두 사람의 몸짓에는 단호한 비장미마저 서려 있다.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는 첫 키스의 잊을 수 없는 순간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가 등장한다. “첫 키스를 하는 순간, 나는 내 안에 무언가가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방황하던 주인공 골드문트를 녹아내리게 한 첫 키스는 그를 집요하게 괴롭히던 그 무언가를 허물어뜨린다. 그의 모든 그리움, 모든 꿈, 그리고 감미로운 고통이 첫 키스로 인해 깨어난다. 첫 키스는 그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잠자고 있었던 모든 비밀을 흔들어 깨웠다. 이렇듯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세상 모든 것이 이전과는 달라 보이는 키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마법에 걸린 듯 환상적으로 보이는 그런 키스를 꿈꾼다. 키스는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존재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몸짓이다.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향한 첫 발자국일지라도. 그것이 달콤한 휴식이 아닌 끊임없는 고통을 향한 입장권일지라도. 사랑에 빠진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키스에 깃든 불멸의 아름다움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예술적 영감의 보물창고다. 누군가 당신에게 아무 말 없이 키스한다면, 그는 당신의 귀가 아니라 당신의 영혼에 말을 걸고 싶어하는 것이다.


정여울 1976년생. 문학평론가. 서울대 독문과 및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마침. 2004년 ‘문학동네’로 등단. 저서로는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잘 있지 말아요> <마음의 서재> <시네필다이어리>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등이 있다. 제3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했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