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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을 전전하는 성노예

[뉴스위크] 남자들이 격리된 상태로 일하는 곳에서 번창하는 성매매 ... 요즘은 미국 농장의 어두운 구석까지 파고들어

사우샘프턴 로드를 달리는 붉은색 카마로 컨버터블에서 재닛은 조수석에 앉아 스쳐가는 풍경을 지켜봤다. 단층집에서 담배밭으로, 그 다음은 과수원이 나타났다. 재닛은 농장에서 일하려고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 갔다. 하지만 사과 따는 일이 아니었다. 그 차에 탄 재닛과 나머지 세 여성은 하이힐에다 속이 비치는 미니스커트 차림이었다. 그들은 외롭고 겁에 질렸다.

특히 앞으로 닥칠 폭력이 무척 두려웠다. 한낮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남자(그 여성들은 그를 인신매매단이 사용하는 흔한 가명인 리카르도로 알고 있었다)는 약 1시간을 달리다가 좁은 비포장도로로 방향을 틀어 싸구려 오두막이 붙어 있는 곳에 차를 세웠다. 오두막 바닥에는 매트리스가 깔려 있었다. 그 허름한 오두막은 농장 일꾼 100여 명이 기거하는 합숙소였다. 부근에 있는 큰 농가에선 일꾼들이 닭고기와 밥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멕시코,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과테말라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차에서 내린 여성 4명은 오두막 부근의 헛간으로 갔다. 일꾼들이 연장을 보관하는 곳이었다. 시멘트 바닥은 깨져 커다란 흙구덩이를 드러냈다. 그 바닥에 여성들이 누더기를 까는 동안 오전 내내 밭에서 일해 지저분하고 땀냄새가 진동하는 일꾼들은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헛간 밖에 줄을 섰다. 50명가량이 섹스를 하려고 차례를 기다렸다. 리카르도는 차 안에서 망을 봤다. 경찰이나 강도가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일꾼들은 차례로 30달러씩 내고 재닛과 동료 여성들을 욕보였다. 대다수는 오랫동안 섹스를 하지 못해 재닛을 상대로 단 몇 분만에 일을 끝냈다. 그러나 몇몇은 너무 난폭해 여성들을 보호해주는 리카르도가 없다면 재닛은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일을 목격한 적도 있다. 드라이버나 포주 없이 혼자 몸을 팔러 온 여성이었다. 일꾼들은 시신을 쓰레기장에 버렸다고 재닛이 말했다.

성매매는 남성이 지배하는 산업 부문에서 번창한다. 최근에는 미국의 농장까지 확대됐다.

해가 지자 여성들은 화대로 받은 돈 전부를 리카르도에게 주고는 다시 차를 타고 샬럿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재닛은 너무도 지쳐 그냥 쉬고 싶었지만 수백㎞ 떨어져 있는 포주에게 연락해야 했다. 고객이 몇 명이었는지 화대를 얼마나 받았는지 보고했다. 샬럿에 도착하자마자 재닛은 사창가에서 남자 고객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음날도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자신이 혐오스러워졌다.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라고 느껴졌다.

재닛은 1999년 멕시코에서 안토니오라는 남자친구의 강압에 못 이겨 매춘을 시작했다. 다음해 코요테(국경지대의 밀입국 알선자)가 재닛과 안토니오를 안내해 미국 국경을 넘게 해줬다. 그들은 뉴욕시 퀸즈에 있는 안토니오 부모집에서 지내며 사창가로 출근했다. 2주마다 한 번씩 밴 차량이 사창가에 와서 재닛과 동료 매춘부(열두 살짜리도 있었다)들을 샬럿에 데려갔다. 거기서 한 번에 1주일 이상 지내며 밤에는 사창가에서 낯선 남자들의 섹스 상대가 되고 낮에는 농장 일꾼들의 합숙소에서 몸을 팔아야 했다.

성매매는 남성이 지배하는 산업 부문에서 번창한다. 셰일가스와 석유를 채굴하는 신도시, 군기지, 그리고 최근의 여러 소송과 피해자 진술이 보여주듯이 농장 일꾼 합숙소가 대표적이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매년 인신매매단에 의해 미국으로 유입되는 성노예는 1만4500~1만7500명에 이른다.

국토안보수사국 뉴욕 지부의 제임스 T 헤이스 주니어 요원은 “매춘 인신매매단은 장사가 되는 곳으로 여성을 데려간다”고 말했다. 그들은 대도시를 근거지로 삼아 농장으로 여성을 공급한다. 주로 본부로 뉴욕 퀸즈를 선호한다. 뉴욕에는 자체적으로 고객이 많고 또 동부의 남과 북 중간 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사업 영역은 남쪽으로는 플로리다주, 북쪽으로는 버몬트주까지 뻗어 있다.


도시-농장 매춘 공급망

공무원들은 이런 도시-농장 매춘 공급망에 투입되는 여성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매년 그 수가 늘어난다고 말한다. 농촌 지역의 매춘을 연구하는 애리조나주립대 조교수 키스 V 블레처에 따르면 몇 년 전까지 만해도 여성들은 몸을 팔려고 스스로 농장 일꾼 합숙소를 찾아 갔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괜찮은 수입원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조직화되고 있다고 블레처 교수는 말했다. 여성이 생계를 위해 직접 몸을 팔기보다는 인신매매단이 대규모 국제적 사업의 일환으로 그들을 농장에 파견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포주가 남자친구를 가장해 여성을 유인한 뒤 사창가를 전전하며 몸을 팔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코요테가 여성들을 미국으로 밀입국시킨 뒤 그 비용을 뜯어내기 위해 매춘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유엔에 따르면 과거 무기와 마약을 불법으로 매매하던 범죄자들이 최근에는 여성을 주요 상품으로 삼는다. 가정폭력 피해자와 자녀들을 돕는 단체 가족안식처(Sanctuary for Families)에서 인신매매 근절을 위해 일하는 로리 코언은 “수익이 막대한 사업”이라고 했다. 밀수한 마약은 곧바로 팔리면 끝이지만 여성의 경우 “일단 밀입국시키면 몸이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계속 이용한다”고 코언은 말했다.

재닛(매춘부였을 때 사용하던 그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뉴스위크에 요청했다)은 10년 넘게 그런 식으로 매춘을 강요당한 후 완전히 탈진했다. “몸뚱이가 팔리면 더는 자신의 몸이 아니라고 느낀다.”


매춘 첫 경험

세계의 매춘 인신매매 수도로 널리 간주되는 멕시코 테난싱고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동남쪽으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다. 그곳의 인구 1만 명 중 다수가 매춘업에 종사한다. 청소년에겐 포주가 되는 것이 가족 사업에 합류한다는 의미다. 인신매매 중재법원의 토코 세리타 판사는 “테난싱고는 성매매 도시”라고 말했다. “가족이 대를 물려가며 매춘업을 한다.” 그곳 남자들은 멕시코의 다른 도시에서 여성을 모집한다. 그들은 눈에 띄는 여성과 사랑에 빠진 시늉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 다음 그들을 테난싱고로 데려가 매춘을 시킨다. 포주들은 그곳에서 여성들을 멕시코시티로 원정 보낸다. 일부는 그러다가 벌이가 더 나은 미국으로 진출한다.

재닛은 테난싱고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푸에블라에서 할머니 손에 자랐다. “어릴 땐 무척 가난했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고 재닛은 말했다. 재닛이 23세가 된 1998년 어느 날 공장 일을 마치고 귀가할 때 차 한 대가 곁에 멈췄다. “안녕? 난 리카르도야.” 차 안에서 남자가 말했다. “어디 데려다 줄까?” “됐어, 난 당신을 모르잖아.” 재닛이 말했다.

그 남자는 같이 가자고 계속 조르다가 친구로 사귀자고 말했다. 재닛은 그와 함께 집에 도착하자 친구로 사귀는 데 동의했다. 어린 딸을 둔 재닛은 가정폭력을 휘두르던 남편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새 남자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 남자가 계속 찾아왔다. “나를 아주 잘 대해줬다”고 재닛이 말했다. “푸에블라에선 여자가 남자의 차를 타면 남자는 곧바로 여자 몸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즉시 침대로 데려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는 아주 친절하고 정중했다.”

리카르도를 안 지 1년쯤 지난 1999년 7월, 재닛은 테난싱고에 있는 그의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딸아이는 할머니에게 맡겼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자 그의 이름이 리카르도가 아니라 안토니오이며, 그가 포주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의 가족은 아주 누추하게 살고 있었다. 재닛이 자란 곳보다 더 형편없었다. 안토니오 가족은 단칸방에서 지냈고 다른 방 한 칸은 가축 차지였다. 비가 오면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졌고 아이들은 맨발로 뛰어다니며 지저분한 기저귀를 들고 놀았다. 6개월 뒤 재닛은 안토니오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냥 머물렀다.

그때부터 학대가 시작됐다. 먼저 안토니오는 재닛에게 유산하도록 강제로 약을 먹였다. 몇 주 뒤 그는 재닛에게 매춘부가 되라고 했다. 처음엔 거절했다. 이전에 공장에서 괜찮은 일을 했으니 그런 일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계속 매춘을 강요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처음엔 멕시코시티의 거리에서 일했다. 당시엔 “밤낮으로 몸을 팔아야 해서 끔찍했다”고 재닛은 돌이켰다. 1년 뒤 안토니오는 재닛에게 미국에 가면 그곳에 있는 가족이 괜찮은 일자리를 찾아주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재닛은 마지못해 승낙했다. 2000년 6월 그들은 멕시코 국경을 넘어 뉴욕시 퀸즈로 갔다.


감옥과 같은 일꾼의 합숙소

미국의 농장 일꾼 약 300만 명 중 대다수가 외국 출신이다. 그 일꾼들 역시 재닛처럼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재닛처럼 서서히 망가져 간다. 미국의 중산층은 그런 일꾼들이 연방노동법에 의해 대다수 미국인이 당연시하는 특정 권리(초과근무 수당, 휴무일, 단체교섭권 등)를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거의 모른다. 노동자 권익 운동가들은 개혁을 부르짖지만 대규모 영농업체들이 그런 노력을 좌절시킨다.

계절 작물을 수확하는 농장 일꾼들은 한 번에 몇 달씩 합숙소에서 지낸다. 연중 내내 일이 있는 가축 농장에선 일꾼들이 싸구려 주택이나 이동식 주택에서 기거한다. 뉴욕 근로자 정의센터의 리넌 살가도는 일꾼들이 지내는 곳을 두고 “일반 시민은 그들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도록 지내게 돼 있다.” 일꾼들은 불법 체류자라서 농장을 거의 떠나지 않으며 감독관이나 중개상을 통해 식료품이나 의료품부터 여성까지 모든 것을 공급받는다.

따라서 그런 일꾼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근로자 정의센터의 곤살로 마르티네즈 데 베디아는 “그들은 늘 따분하고 외롭다”고 말했다. “모두가 한 시즌 내내 함께 지낸다. 전부 독신 남자다. 그곳엔 술과 마약이 아주 흔하다.”

일꾼들은 그런 억눌린 욕구를 방문하는 매춘부에게 푼다. 코언은 그래서 농장에서 성폭력이 빈번하다고 말했다. “매춘부와 섹스를 하려고 돈을 지불했다면 그 여성에게 하고 싶은 모든 행동을 할 권리를 샀다는 인식이 있다. 그런 여성이 성구매자에게 당하는 폭력은 정말 충격적이다.”

안토니오는 재닛에게 미국에서 더 나은 삶을 약속했다. 그러나 퀸즈에서 그들의 생활 여건은 끔찍했다. “식구들이 서로 포개 잠을 잤고 여성은 전부 매춘부였다”고 재닛은 말했다. 안토니오 사촌들은 가족 매춘사업의 포주로 일했다. 재닛도 몸을 팔아야 했다. 그러면서 일상의 틀이 잡혔다. 안토니오는 축구를 하고 당구를 치며 빈둥대고, 재닛은 퀸즈와 보스턴의 사창가에서 일했다.

안토니오는 농장 일꾼을 상대로 매춘을 하면 벌이가 좋다는 사실을 안 뒤 재닛을 샬럿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그곳의 골목길 끝 부근에 있는 침실 세 개짜리 흰색 단층집이 섹스에 굶주린 남성에게 외국 출신 여성을 끊임없이 공급해주는 사창가로 사용됐다. 그곳 여성들은 저녁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남성들을 상대하고 오전 11까지 곯아떨어진 뒤 다시 농장으로 가야 했다.

“내가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재닛이 말했다. “남자들은 아주 공격적이었다. 그들은 나를 움켜잡고 밀었다. 목덜미도 잡혔다. 섹스 행위도 매우 거칠었다. 난 남자들이 어서 일을 끝내기만 바랐다.” 약에 취한 남자도 많았고 어떤 남자는 화대를 내려 하지 않았다. 재닛은 그들이 콘돔을 착용하도록 하려고 애썼지만 때로는 콘돔이 찢어지거나 남자들이 스스로 벗겨내 버렸다. 재닛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유산을 했다고 말했다. 언제나 성매매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사이토텍 정을 사용했다. 늘 두려움에 억눌려 살았다. “그 남자들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런데도 안토니오는 결혼을 약속하며 재닛을 달랬다. 그는 재닛에게 매춘으로 번 돈을 멕시코로 보내고 있다며 누군가가 그 돈으로 자신들을 위해 집을 짓고 있다고 말했다. 안토니오 사촌들도 다른 여성들에게 그 비슷한 거짓말을 했다. 그들이 조금만 견디면 된다고 생각하고 말을 잘 듣게 하기 위해서였다. “포주들은 아주 영악하다”고 코언이 말했다. “그들은 여성의 약점을 알아내 이용한다. 잘 짜인 각본 같다.” 또 그들은 여성이 달아나거나 경찰에 신고하면 멕시코에 있는 가족을 해치겠다고 협박한다. 검찰에 따르면 농장 일꾼들에게 여성을 공급한 한 일당은 여성을 의도적으로 임신시켜 출산하도록 한 뒤 그 아이를 볼모로 잡기도 한다.

국토안보수사국의 제임스 헤이스 주니어는 “피해자는 매춘 인신매매 조직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여성이 스스로 피해자라고 인정하도록 설득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법집행 기관과 권익 운동가들이 아무리 도움을 줘도 일부 여성은 포주를 감싸거나 그들에게 되돌아간다.

2009년 안토니오가 속한 조직의 한 포주가 가정폭력으로 체포되자 안토니오는 멕시코로 달아났다. 그런데도 그는 전화로 재닛과 계속 연락하면서 매춘을 계속하고 돈을 부치라고 요구했다. 재닛은 딸과도 계속 연락했다. 멕시코에 있는 딸은 사고를 당해 치료비가 필요했다. 그 비용을 대기 위해 재닛은 안토니오에게 자신이 번 돈의 일부를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래서 뉴욕시의 멕시코 영사관을 찾아 조언을 구했다. 영사관 직원은 재닛의 이야기를 듣고는 가족안식처에 연락했다.

그 일로 인해 2010년부터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수사가 시작됐다. 수사관들은 그 조직의 핵심 조직원들을 색출하기 위해 감시망을 펼치고 전화, 여행, 은행거래 기록을 샅샅이 뒤졌다. 그들은 재닛의 도움으로 여성 피해자 25명을 구조했고, 포주들을 체포했으며, 멕시코에 숨어 있던 안토니오를 찾아냈다. 2012년 멕시코 당국은 안토니오를 미국으로 송환했고, 그는 지난해 6월에 형을 선고 받았다. 안토니오와 조카 3명은 전부 유죄를 인정하고 현재 15~22년 징역형을 살고 있다.

안토니오가 매춘 인신매매 조직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과정이 법원 자료에서 드러났다. 그는 여섯 살 때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으로 사망하면서 고아가 됐다. 테난싱고에 살던 삼촌 집으로 갔지만 삼촌은 그를 걸핏하면 채찍으로 때리고 굶겼다.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사랑도 받지 못했다. 친구도 없었다. 그의 변호사가 제출한 진술서를 보면 안토니오는 테난싱고에서 성년이 되면서 “매춘이 용인될 뿐 아니라 조직원들이 호사를 누리며 그 일을 자랑하는 문화”를 목격했다. 안토니오는 변호사에게 “나도 주위 사람들이 알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판사는 안토니오에게 징역 15년에 보호관찰 5년을 선고했다. 그는 성범죄자로 등록됐고, 재닛에게 120만 달러를 배상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배상금은 그가 포주로서 번 돈과 교도소 일자리 프로그램에서 버는 돈으로 충당된다. 또 매달 최소한 20달러를 당국에 납부해야 한다. 감옥에 있으면서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잊지 않도록하기 위해서다.

선고가 내려지던 날 재닛은 주요 피해자로서 브루클린 법정에 출두해 자신을 11년 동안 노예로 부린 그 남자와 드디어 대면했다. 재닛은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나를 사람이 아니라 섹스 로봇으로 취급했다. 나는 수 년 동안 소리 내지 않고 울었다. 안토니오가 내게 가한 학대의 상처를 매일 안고 살았다. 하지만 더는 침묵할 수 없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안토니오와 그의 가족이 다른 여성들을 매춘의 덫에 빠뜨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신선한 고기 왔어요”


재닛의 이야기는 뉴스위크가 들은 다른 피해자와 여러 농장 일꾼들의 말과 일치한다. 루이스 카운티의 낙농장에서 일한 한 남자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남자가 여성들을 데리고 농장에 와서는 일꾼들의 방문을 두드리며 “신선한 고기가 왔어요”라고 말한다고 돌이켰다. 뉴욕주 북부의 농장 일꾼 숙소에 일주일에 한 번씩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한 사람은 농장에 갈 때마다 몸 파는 여성을 봤으며, 일꾼들이 자신의 섹스 차례가 다 됐다며 빨리 음식을 달라고 독촉한다고 말했다. 화대는 한 번에 25~60달러다. 뉴욕주 북부의 농장에서 일한 아르투로 바스케스는 농장에서 라틴아메리카 여성만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여성도 봤다고 말했다.

매춘부 시절의 이름인 카타린으로 불러달라는 한 여성은 농장 일꾼 숙소에서 수년 동안 매춘을 강요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카타린은 13세였던 2010년 멕시코 푸에블라 부근에 있는 한 마을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교대 근무를 마친 뒤 공원 벤치에 앉아 있을 때 미래의 포주가 다가왔다고 돌이켰다. 당시 16세였던 그 남자아이는 자신을 소개했다. 카타린은 그가 잘 생겼다고 생각했다. 한 주 뒤 데이트를 시작했다. 만난 지 3주 뒤 카타린은 가족과 함께 살려고 테난싱고로 갔다. 5개월 뒤 그들은 코요테와 함께 걸어서 국경을 넘어 미국 애리조나주로 갔다. 그곳에서 밴을 타고 뉴욕 퀸즈로 이동했다. 사흘 뒤 그 남자아이가 카타린에게 매춘을 강요했다.

카타린은 롱아일랜드·델라웨어·뉴저지·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농장으로 보내졌다. 빈대가 들끓는 침대에서 하루에 남성 30~40명을 상대해야 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술에 취해 난폭했고 몇몇은 칼이나 가위로 콘돔을 찢어냈다. “때론 술이 너무 취해 제 시간에 오지 못했고 시간이 다 됐는데 일을 끝내지 못해 화를 냈다”고 카타린은 말했다. 지난해 질 감염으로 고통이 너무 심한데도 포주가 계속 일을 시키자 참지 못하고 탈출했다. 경찰은 카타린을 병원에서 치료받게 한 뒤 은신처로 안내했다. 포주는 달아났다.

안토니오 조직을 일망타진한 국토안보수사국 뉴욕 지부의 제임스 T 헤이스 주니어 요원은 집안이 대대로 이민 업무에 종사했다. 할아버지가 세관원이었고 아버지는 이민국(INS)과 세관국경보호국(CBP)에서 일했다. 브루클린 출신인 헤이스는 1990년대 중반 경찰에 몸담을 생각을 했다가 국경순찰대를 선택했다. 그 다음 로스앤젤레스로 옮겨 갱단을 단속하다가 2009년 국토안보수사국에 자리 잡았다. 현직에서 그는 인신매매 피해자 250명 이상을 구출했고 인신매매 관련 범죄로 최소한 150명을 체포했다.

근년 들어 재닛이 관련된 사건 외에도 농장 일꾼 숙소의 강압적인 매춘 여러 건이 단속됐다. 지난해 5월 멕시코인 형제가 뉴저지주에서 사창가 4곳을 운영하며 농장 매춘을 알선한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뉴욕주에서 매춘 인신매매로 무기징역형이 선고된 첫 사례였다. 나머지 조직원 15명도 기소됐다. 그 조직은 1999년부터 매춘 사업을 하면서 여성 수백 명을 팔아 넘겼다. 헤이스는 현재 인신매매 매춘 사건 수십 건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농장이든 나이트클럽이든 아파트든 인신매매 매춘을 뿌리 뽑겠다.”


“난 사랑을 원했다”

매춘 인신매매 피해자들은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재닛은 법정에서 안토니오를 대면한 지 여러 달이 지난 최근 어느 날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의 28층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붉은 셔츠에 검은 재킷을 입고 머리는 밴드로 단정히 올린 모습이었다. 전망이 좋지만 재닛은 푸에블라의 어린 시절 집을 연필로 그리는 데 열중했다. 가장 행복했고 안전하다고 느꼈던 곳이었다. 그 집에서 성장하면서 할머니로부터 사랑에 충만한 남녀 관계의 중요성을 배웠다. “난 진짜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을 원했다”고 재닛이 말했다. “그래야 관계가 영원하다.”

올해 38세인 재닛은 안토니오가 체포돼 안도하고 있지만 아직도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내 생애에서 최고의 순간들을 잃어버렸다”고 재닛은 법정에서 말했다. 인신매매 희생자에게 제공되는 특별 비자로 미국에서 사는 재닛은 최근 10대가 된 딸과 재회했다. 요즘 상담을 받고 남자친구의 도움도 받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과거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자신은 노예의 쇠고랑에서 벗어났지만 아직도 사슬에 갇혀 있는 여성 수백만 명이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안다.


글=맥스 커트너 뉴스위크 기자, 번역=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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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