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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서 자란 화가, 도시의 속살을 그려내다

서용선 화가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층고가 높은 박스형 건물에 흐린 봄날의 햇살이 들락였다. 1995년 자리잡은 이곳 작업실에서 서용선(64)은 크고 작은 캔버스에 둘러싸여 있었다. 키높이를 넘는 화폭 속 사람들이 기자를 쳐다봤다. 뉴욕의 낡은 지하철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이민자들, 감옥 같은 좁은 방에 도사린 충혈된 눈의 남자, 간체자 간판의 베이징 거리에서 웃통 벗고 선 남자, 넥타이를 조여 맨 역삼역의 남자 등. 양평에 앉아 서울·베이징·뉴욕·멜버른·베를린의 풍경을 반추하는 그는 ‘그림 인문학자’ 혹은 ‘도시 생태학자’다.



그의 도시 그림은 도시의 속도, 즉 날로 빨라진 교통 수단과 뉴스의 홍수 속에 긴장하며 몸을 맞춰 온 그의 이야기이자 도시인들의 자화상이다. 석 달 전 그림을 그리며 그는 이렇게 메모했다. “엘리베이터 타기 전에는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전철표의 전자 기호를 기계가 읽을 때까지 내 몸을 정지시켜야 한다. 내 몸은 지나가는 차량의 속도를 읽어내면서 걸어가야 한다.”



서용선은 1951년 전쟁통의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났다. 미아리 공동묘지 옆 천막집, 정릉 산동네 판잣집을 전전했다. 서울의 한 자락에서 그렇게 도시의 형성과 산업화를 지켜봤다. 유년기의 방황을 마치고 군에서 제대한 뒤 중장비 기술을 배울까 신문 광고를 뒤지다가 이중섭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서울대 미대에 진학했고, 모교의 서양화과 교수로 있다가 2008년 돌연 그만두고 양평서 그림만 그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2009)에 선정됐고, 이중섭 미술상(2014)을 수상했다. 치밀하게 짜인 화면 구조와 거친 붓터치, 강렬한 원색, 붉은 인물들-. 독특한 화풍으로 한국 대표 중견 작가로 자리잡았다. 단종의 청령포, 심청의 백령도(인당수), 지리산의 마고 할미, 6·25 전쟁 등 역사와 인물로 관심을 뻗어나갔다. 그의 역사 인물화는, 장소에 사람들이 새긴 흔적의 새김질이었다. 지하철에서, 공원에서, 낯선 도시의 빈방에서, 산에서, 들에서 스케치한 것들은 숙성돼 작품이 됐다.



태어나 자란 서울뿐 아니라 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다녀본 외국의 주요 도시에서도 그는 그리고 또 그렸다. 요즘은 태블릿에도 그리고 있다. 그에게 그림은 “세상을 다시 보는 것, 즉 세계를 자신의 주체적 정신 속에 생산해 내는 것”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을 그렇게 쉬지 않고 화폭에 담아 왔다.



“변두리서 자란 사람들은 도시의 중심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화려한 것 같고, 뭔가 문명의 중심 같은 그곳에 자기가 이루고 싶은 욕망을 투사한다”며 관찰하듯 자기 얘기를 꺼냈다. 해외 도시에 나가 한 달 이상씩 머물며 도시의 속살을 그렸다. “방 한 칸 빌려 민박하다 보면, 그곳서 살아 남으려 애쓰는 이방인들과 만나게 된다. 전세계 중심이라고 얘기되는 곳들의 속은 그렇게 이뤄져 있다. 비슷한 듯 다른 그곳에서 거리를 두고 보니, 중심엔 결국 아무것도 없더라.”



양평으로 나온 지 20년, 작업실을 늘리고 늘려 4개동이 됐다. 거기 그득한 작품 중 도시 연작 회화와 판각화·소품 등 110여 점을 17일 서울에 풀어놓는다. 서울 삼청로 금호미술관과 학고재갤러리에서 여는 ‘서용선의 도시 그리기: 유토피즘과 그 현실 사이’다. 5월 17일까지. 02-720-5114.



양평=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서용선= 1951년 서울 출생.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및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1982). 1980년대 ‘소나무’ 연작으로 데뷔한 후 수양대군의 계유정난(癸酉靖難), 6·25 등 역사적 사건부터 마고(麻姑) 신화, 도시 풍경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시선을 확장하며 역사와 사회, 궁극적으로 인간의 모습을 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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