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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돈과 탐욕이 부른 성완종의 비극

이철호
논설실장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패딩 상의와 정장 바지 차림에 구두를 신고 북한산에 올랐다. 경향신문 기자와 통화를 한 뒤 주머니에 56자 메모지를 넣고 목을 맸다. 현장의 휴대전화 두 대는 덮개가 열린 채 전원이 켜져 있었다. 위치 추적을 통해 반드시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알려달라는 의도가 묻어난다.



 그의 예감대로 ‘성완종 리스트’는 여권을 쑥대밭으로 만든 핵폭탄이 됐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초상집 분위기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입장은 극적으로 반전됐다. 검찰이 경남기업에 손을 댄 지난달 20일엔 “‘MB맨’인 성완종 수사가 생색내기에 그쳐선 안 된다”며 “성역 없이 조사하라”고 다그쳤다. 그러더니 어제는 “성완종을 두 번 죽일 수 없다”며 “리스트 규명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돌아섰다.



 정치권은 그의 ‘배신감’이 극단적 선택을 불렀다고 보는 듯하다. 하지만 성씨와 오래 거래해 온 금융권 시각은 다르다. 근본 원인을 ‘돈’에서 찾는다. 가장 돈을 많이 물린 수출입은행 측은 “경남기업은 경제나 시장 논리보다 항상 정치권-금융당국을 앞세우는 불편한 관계였다”고 기억했다. 주거래은행인 신한은행 측도 “자본이 잠식됐는데도 자료 제출 요구는 무시하고 돈만 요구해 온 지저분한 거래선”이라며 혀를 찼다. 법정관리를 앞두고 경남기업이 뒷짐을 지자 은근히 추가 대출을 압박하던 금융당국은 난감해졌고, 거래 은행들마저 당혹스러운 처지였다고 한다.



 경남기업의 몰락을 베트남 하노이에 지은 ‘랜드마크 72’에서 찾는 분석이 적지 않다. 1조2000억원을 쏟아 부은 늪이었다. 준공 2~3년 뒤에야 신규 분양이 몰리는 베트남 특유의 관행에다 인터콘티넨털 호텔과의 입주 협상이 너무 오래 끌며 발목을 잡은 것이다. 유동성 위기에 몰린 성씨는 뒤늦게 랜드마크 72 매각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9000억원에 매수 희망자가 나타났지만 “손해 보고 팔 수 없다”고 욕심을 부려 골든타임을 놓쳤다.



 오히려 경남기업 몰락의 근본 원인은 건설 경기 침체가 결정타였다. 경남기업도 국내외에 무리하게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벌였다. 성씨가 행담도 비리에 연루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나마 도급 순위 20위 이내의 다른 업체들은 대기업 계열사라 버틸 언덕이 있었다. 그런 방풍막이 없는 경남기업과 쌍용건설은 연 7~8%의 고금리를 감당 못해 나란히 워크아웃으로 갔다. “나는 MB정부의 피해자”라는 성씨의 주장도 절반이 틀린 말이다. 그나마 4대 강 사업 덕분에 인공호흡기를 달았기 때문이다. 4대 강 특수가 사라지자 경남기업은 2013년부터 순손실 2000억원대의 뇌사에 빠졌다.



 정치권 인맥을 동원해 두 차례 특별사면을 받고 워크아웃을 졸업했던 성씨는 이번에도 필사적으로 구명운동을 펼쳤다. 김무성·이병기·서청원·이완구 등이 모두 그의 전화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고 그의 마당발은 통하지 않았다. “좋은 변호사 써서 검찰 조사 잘 받으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결국 그는 경영권을 내놓았고, 담보로 맡긴 지분까지 매각되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 막판에는 “돈이 없어 변호사 비용도 동생들이 대고 있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성씨가 남긴 판도라 상자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 힘들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나 그의 메모는 국민 정서상 엄청난 파괴력을 갖고 있다. 성씨는 자살 직전 비자금 전달자를 접촉하는 등 비밀 병기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겨눈 표적이 현 정권 핵심 실세들인 만큼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파헤칠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특검으로 가자”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다. 이미 ‘부패 사정’의 기획수사가 성씨의 ‘표적 저주’라는 부메랑을 불렀다. 그의 메모가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을 초래할지, 아니면 그의 통화 녹취록처럼 “꼭 좀 보도해 우리 사회를 맑게 해줄”지 지켜볼 대목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성씨의 비극은 돈과 탐욕이 부른 이 시대의 막장 드라마라는 사실이다. 지난 연말 방영된 드라마 ‘펀치’가 무색해질 정도다. 아랍의 격언에도 ‘돈이면 다 된다고 여기는 사람은 돈 때문에 망한다’고 했다.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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