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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그 마음 잘 알죠" 영등포역의 '선배 노숙인' 셋

영등포역 ‘선배 노숙인’들이 노숙인(뒷모습)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윤송민·이성호·이영일씨와 민재홍 옹달샘드롭인센터 사회복지사. [신인섭 기자]


매일 오후 8시 영등포역 일대에 모여 있는 노숙인들을 찾는 세 남자가 있다. 행색이 초라한 노숙인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가 대화도 하고 이따금 손도 잡는다. 술을 마시는 노숙인에겐 술도 한 잔 따라주고 함께 웃는다. 그러다가도 마지막엔 꼭 잊지 않는 말이 있다. “옛날엔 저도 그랬죠. 그래도 계속 이렇게 살 순 없잖아요. 공짜밥 먹는다고 놀지 말고 일 해요.”

윤송민·이영일·이성호씨
“내가 왕년엔 … ” 후배 푸념 듣고
“그래도 일해야지” 꾸준한 설득
“돈 모아 안정되니 그들 눈에 밟혀”
사회복지사도 “큰 역할” 고마워해



 영등포역엔 과거 노숙인이었지만 자활에 성공해 다른 노숙인을 보살피는 이른바 ‘선배 노숙인’이 있다. 매일 순찰을 돌며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상담도 해주고, 몸이 아픈 노숙인은 응급구호방에 데려다주기도 한다. 구역에 새로 온 신입 노숙인과 기존 노숙인 사이에 자리싸움이 나면 중재하고 화해시키는 일도 이들 몫이다. 영등포역의 노숙인들은 이들을 ‘선배’ 또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존댓말을 쓴다.



 영등포역에 온지 20년이 됐다는 윤송민(41)씨는 ‘선배 노숙인’ 중 최고참이다. 21살 되던 해 전라남도 여수에서 상경한 윤씨는 함께 온 친구가 돈을 훔쳐 달아나는 바람에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일자리를 얻어 모은 돈으로 지인과 장사도 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다시 영등포역에 나앉았다.



 그렇게 길에서 지낸지 10년쯤 됐을까. 어느 날 무료 급식 배식 봉사자들을 보고 문득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일용직 일을 시작한 윤씨는 조금씩 돈을 모아 쪽방을 얻었다. 결혼을 하고 딸 보배(5)양이 생기면서 희망도 커졌다. “행복하다고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다른 노숙인들이 보이더라고요. 그들도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 상담에 나섰죠.”



 10년 전 고향 경기도 부천에서 무작정 서울로 온 이영일(44)씨는 오랫동안 직업을 얻지 못해 길에서 지냈다. 이후 이씨는 건설 현장이나 이삿짐센터에서 번 돈으로 고시원에 들어갔고, 그 때 노동의 소중함을 느꼈다. “노숙인들에게 꼭 취업하라고 설득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해야 열심히 살겠다는 의지가 생기잖아요.”



 4년 전 노숙인 생활을 접은 이성호(47)씨는 배식과 상담 봉사를 함께하고 있다. 마음을 연 노숙인들이 꼭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왕년에 제가’라고 한다. 이씨는 “몇 억짜리 공장이 부도나 노숙을 하는 전직 CEO도 있고, 아들이 중소기업 회장인데도 자식에게 피해주기 싫어 연락 끊고 노숙하는 사람도 있다”며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한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들에게 선배 노숙인들은 큰 힘이 된다. 민재홍(56) 옹달샘드롭인센터 거리상담원은 “ 국가 지원을 받도록 설득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며 “노숙인 정서적 지지에 있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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