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시론] 서로 선호메뉴만 찾다 결렬된 노사정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노동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결렬됐다. 교섭시한인 3월 31일을 넘긴 뒤에도 정부는 끝까지 남아 노동계를 설득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교섭 결렬은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 이미 실패했지만 미래를 위해 교섭결렬 과정을 정리해보자.



 교섭 과정에서 드러난 노동계의 혐오메뉴는 그들이 내세운 5대 수용불가 사항으로 정리된다.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및 파견대상 업무 확대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단계적 시행 및 특별추가 연장 ▶정년 연장 및 임금피크제 의무화 ▶임금체계 개편 ▶일반 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등이다. 고용-임금-근로시간 유연화 개혁메뉴 전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일반 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컸다. 이 주제는 현장 노동조합 간부들이 자신들의 문제로 여겨 다른 주제보다 혐오도가 더 컸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노동계의 선호메뉴는 ▶최저임금 ▶비정규직 문제 ▶사회 안전망 ▶노동기본권 확대 강화였다. 이 중 최저임금과 고용보험의 실업급여 확대가 핵심 이슈였다.



 결국 이번 대타협 교섭이 타결되기 위해서는 노동계의 혐오메뉴 중 일부와 선호메뉴 중 일부를 맞교환하는 모습을 띨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왜 결렬됐을까? 몇 가지 원인을 살펴보자. 첫째, 선호메뉴의 상당 부분은 이미 정부가 언론 브리핑을 통해 발표했다. 노동계 입장에서는 혐오메뉴를 양보할 유인이 없어졌다. 예컨대 최저임금과 실업급여에 대해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수가 살아나게 하려면 올해도 최저임금을 7% 이상 올려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최저임금은 필연적으로 실업급여 인상으로 이어진다. 실업급여 상한액은 하루 기준 최고 4만3000원이며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90%인 4만710원이다. 최저임금이 급속도로 오르면 하한액이 상한액을 상회하게 돼 실업급여 상한선 또한 덩달아 오른다. 대타협을 위해서는 최저임금·실업급여 인상이 불가피했지만 문제는 너무 일찍 언론에 떠벌려졌다는 데 있다.



 둘째, 이들 사회 안전망 제도 구축은 취약계층 근로자를 위한 것이다. 이는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다는 명분은 줄 수 있어도 대기업-정규직이 주축인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핵심 사항이라기보다는 간접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사항이었다. 즉 혐오메뉴는 바로 우리 문제이고 선호메뉴는 신선도가 조금 떨어진 메뉴라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교섭 과정을 보면 정부의 고용유연화 메뉴 관철의 전략·전술이 다소 부족했다고 판단된다. 즉 노동계가 혐오하는 메뉴를 가장 선호하는 메뉴로 설정하고 최후까지 고수하다 결렬에 이른 셈이다. 일반 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혁을 위해 중요하더라도 노동계의 거부감이 워낙 커 교섭이 난관에 부닥쳤다면, 이 논의는 중기과제로 돌리고 우회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단기 현안과제로 실제 일자리 창출에 중요한 파견업종 확대와 근로시간 제도 유연화처럼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고용률 70%와 연관된 사안은 협상 테이블에서 덜 부각됐다. 이들은 일자리 창출에 단기 효과가 있는 메뉴다. 일반 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를 중장기 과제로 돌리는 사석작전(捨石作戰)을 통해 이들 일자리 창출메뉴를 교섭 테이블로 끌어 올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아무리 노사정 대타협 결렬의 책임이 정부와 재계에도 있지만 노동계가 판을 깼다는 점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정부가 논의 과정에서 부분 합의를 이룬 항목을 추진한다고 해서 2차 투쟁을 한다면 노사관계엔 불신만 남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사정위 무용론, 사회적 대화 실종으로 이어지게 된다. 가뜩이나 노동 대타협 이슈에 국민의 피로도가 높아진 상태다. 결국 청년, 비정규직, 중소기업 근로자 더 나아가 국민으로부터의 외면이라는 ‘부메랑’이 대기업-정규직 중심 노동계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국회에서 거의 논의가 정리됐고 노사정위에서 부분 합의에 이른 통상임금, 정년제, 근로시간 단축의 3대 현안만이라도 다시 만나 합의해 국회에 전달되었으면 한다. 나머지 고용유연화 과제와 사회 안전망 과제는 좀 더 시간을 갖고 노사정이 노동법·노사관계·노동경제 등 관련 학회의 독립적인 연구와 의견 수렴을 거쳐 결정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그게 교착상태의 현 국면을 타결해 갈 수 있는 길이다.



 현 상황에서 눈앞의 이해에 얽매여 협상 결렬을 선언하는 게 상수(上手)처럼 보일 수 있다. 미래도 그럴까. 천만의 말이다. 노사정위의 사회적 대화는 ‘무용지물이니 폐지하자’는 후폭풍에 휘말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현장의 조합원들도 길게 보면 자신들을 대변할 수 있는 마당을 잃어버리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어느 때보다 한국은 노사정의 긴 호흡과 안목이 절실한 교차로에 서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