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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기억의 숲에서 무엇을 기억할까

주철환
아주대 교수
문화콘텐츠학
기억력 좋은 사람이 입시에서 유리한 건 예나 지금이나 같다. 그러나 시험이 끝난 후 중요한 걸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리한 자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을 기억한다.



 2015년 4월. 기억하는 사람들과 기억하지 않는(못하는) 사람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라일락의 뿌리처럼 뒤엉켜 있다. 왜 하필 라일락인가. 해마다 4월이면 누군가 이 꽃을 ‘리마인드’시켜 준다. 제목은 황무지, 시인의 이름은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줄여서 T S 엘리엇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잔인하지 않은 달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유독 4월은 가장 잔인한 달(the cruelest month)이라고 시인은 지목했다.



 시인이 된 사람은 적지만 시인의 감성으로 보낸 시기는 한 번쯤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일 년에 한두 번 기차를 탔는데 그때 시인의 기분을 누렸다. 중학생 때인가 차창 풍경을 보며 시를 지었다.



“눈 덮인 작은 봉우리에 마지막 사람이 살고 있네.” 제목은 ‘무덤’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산 자들이 뒤에서 말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말도 있다. “가장 잔인한 거짓말은 종종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The cruelest lies are often told in silence).”



 지난해 4월 이후 광화문을 지날 때면 노래 하나가 자꾸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아침이슬’의 작곡가 김민기씨가 고등학생 때 만든 ‘친구’라는 노래다. 친구가 바다에 빠져 실종된 후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지었다고 한다.



 친구가 실종된 바다는 거대한 무덤처럼 보인다. 4월에 그 자리에 이방인 가족이 나타났다. “저는 오드리 헵번의 아들입니다.” 세기의 연인까지는 기억하는데 그 아들은? 그는 ‘마음’을 들고 나타났다. 그 마음은 ‘기억’이다. 그는 ‘기억의 숲’을 제안했고 드디어 착공했다. 그의 착한 마인드가 무딘 우리를 ‘리마인드’시켜 준 것이다.



 미술관·박물관은 기억의 숲이다. 예술가는 우리를 ‘리마인드’시켜 준다. 묘지 역시 기억의 숲이다. 죽은 자들은 산 자에게 묻는다. 제대로 살고 있는가?



엘리엇은 시를 ‘리듬감 있는 불평’이라고 했다. 리듬만 있고 불평은 없는지, 불평만 있고 리듬은 없는지를 되돌아보는 지금은 4월이다.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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