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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챌린저 & 체인저] 뉴욕서 '가방끈' 늘리다가, 서울서 진짜 가방 만들어요

한예온 샤나에잇스에비뉴 대표가 서울 한남동 전시장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작품들을 놓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이 가방들은 공방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한땀한땀 온 정성을 쏟아 만들었다. 그래서 가방 하나를 만드는 데에 꼬박 2~3일이 걸린다. [김성룡 기자]


“가방 내놔.”

⑥ ‘명품백’ 꿈 이뤄가는 한예온 샤나에잇스에비뉴 대표
유학 중 전공 아닌 액세서리에 꽂혀
코치 디자이너 활동 … 창업 위해 귀국
장인들이 한땀한땀 손으로 만들어
백화점 입점에 뉴욕·이탈리아 진출



 강도가 총구를 들이댄다. 당황한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 분)가 주춤한다. “뭐라고요?” 강도가 다시 위협한다. “당신 가방 말야.” 여자가 답한다. “이거 ‘바게트백’이에요.” 가방에 신발까지 뺏긴 여자는 강도가 잽싸게 사라진 뒤 혼잣말을 한다. “요즘 도둑들은 패션을 아네.” 영화까지 제작될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던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한 장면이다. 극중이지만 목숨까지 위협받는 상황. 왜 여자는 “그냥 가방이 아니라 바게트백(펜디)”이라고까지 했을까. 도대체 가방이, 뭐길래. 지난 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패셔니스타들 사이에선 ‘핫’한 이곳 좁다란 골목 어귀 자그마한 쇼룸에서 가방에 목숨 건 또 다른 ‘캐리’같은 한 사람을 만났다. 가방 회사 차린 지 올해로 딱 3년을 맞는 한예온(35) 샤나 에잇스에비뉴 대표다.



 연대 생활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 한 패션회사에 들어갔다. 의류 회사 디자이너로 따박따박 월급주는 회사 생활이 재밌어질 무렵, 문득 “외국에서 공부를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짐을 쌌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세계적인 패션전문 대학인 FIT에 입학을 했다. 선택한 전공은 ‘이브닝 드레스’. 그런데 들어가보니 ‘액세서리 전공’이 있는 게 아닌가. 어릴 때부터 가방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푹 빠져있던 그는 행로를 바꿨다. 전공 외 수업을 들어가며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가방 스케치를 했다. 자취방 책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스케치가 쌓여갔다.



 밥벌이 기회는 우연하게 찾아왔다. 학교를 졸업할 때쯤 유명 전시회가 뉴욕에서 열렸다. 전시회장에서 뱀피, 악어피로 된 화려한 칼로스팔치 가방에 마음을 뺐겼다. 전시장에서 명함을 받아온 그는 집으로 돌아와 이력서를 써보냈다. 그렇게 가방 회사에 합류하게 되면서 가방 디자이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어 리즈 클레이본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당시 경영악화로 6개월만에 부서가 사라지면서 새 직장을 찾아야 했다. 그가 찾아간 곳은 ‘코치’였다. 코치는 뉴욕의 작은 가죽 공방에서 시작해 미국의 대표적인 명품 가방 브랜드로 성장한 회사. 코치에서 일을 하며 그는 “감탄했다”고 했다. 10년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는 가방. 이 가방을 한국기업 시몬느가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디자이너라면 다 자기 이름을 단 제품을 팔고 싶어 한다. 한국의 기술이 이렇게 뛰어나다면 나 역시 한국에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일 못하겠다는 공방 … 눈물 전략으로 설득



한예온씨의 대표작인 ‘세투치오네 오리가미 클러치’ 가방. 일본의 종이접기(오리가미) 방식을 차용한 가죽 클러치로 입소문이 크게 나면서 비닐 소재의 모조품이 돌기도 했다.
 “가죽으로 가방을 만들어 수출을 해보겠다”는 꿈을 갖고 다시 짐을 꾸렸다. 한국을 떠난 지 6년 만의 일이었다. 2012년 5월 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스스로 “순진했다”고 할 정도로 현실을 몰랐다. 그가 디자인한 가죽 가방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어주는 ‘공방’을 찾는 일은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처럼 어려웠다. 20~30년씩 가죽가방을 만든 장인들이 있는 공방을 알음알음 추천받아 찾아갔지만 거절당하기가 일쑤였다. “물량이 적다”는 이유에서였다. 회사를 차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단순히 작업실을 구해야지란 생각에서 사무실을 알아보고 다녔지만 ‘가방 수출’이란 꿈을 이루려면 회사 설립을 해야 했다.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에 들어가 회사 설립을 준비했다. 영어이름 ‘샤나’와 학교와 회사를 다니면서 매일같이 오가던 ‘8번가’를 붙여 회사 이름을 지었다.



 2013년 초. 어렵게 계약한 한 공방에 샘플을 보러 공방을 찾아갔다. 그는 건네 받은 샘플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박음질이 엉망이었다. 가죽은 한 번 박음질을 잘못하면 다시 쓸 수가 없다. 구멍이 그대로 남기 때문에 불량은 그대로 손해로 남는다. 울컥하는 마음을 내리 누르는데, 공방 대표가 “일을 못하겠다”며 발을 뺐다. 한 사장은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평소 눈물이 많은 편이지만 사업을 시작하면서 결심한 게 있었다. ‘절대로 울지 말자.’ 한 사장은 “나이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냥 항의해선 안될 것 같았다. 그땐 꼭 울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가 대성통곡한 모습을 보여준 이후론 “못하겠다”는 말이 쑥 들어갔다. 말하자면 ‘울기’도 일종의 전략이었던 셈이다.



소문 나며 동대문에 짝퉁까지 돌아다녀





 사업은 고됐다.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했다. 가죽을 이탈리아에서 수입해 원하는 색상대로 염색을 하고, 이를 디자인에 맞게 생산하도록 공방을 들락거리는 건 기본. 해외 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보따리 장사하듯이 가방을 싸들고 나가 수출을 타진하는 것도 오로지 그의 몫이다. 동분서주 끝, 뜻밖의 행운도 찾아왔다. 롯데백화점이 “신진 디자이너를 소개하겠다”며 편집숍 입점을 제안했다. 지난해 제2롯데월드 에비뉴엘, 롯데백화점 수원점 등에 ‘샤나가방’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수출길도 열렸다. 뉴욕과 이탈리아 편집숍에 진출했다. 부지런히 해외 전시회 발품을 팔며 거둔 수확이다.



 패션사업 초짜인 그에겐 매일이 좌충우돌, 위기와 도전이다. 지난해 말.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동대문에 샤나가방 짝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귀를 의심했다. 이제 겨우 사업을 시작했는데, 충격이었다. 모조품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뿌리뽑는 일은 어려웠다. 고소를 하려 해도 피해규모를 입증하는 것이 어려웠다. “연예인이 들고 다니거나, 조금 인기가 있다 싶으면 무조건 디자인을 베낀다”는 짝퉁 세계 이야기를 듣곤 낙심했다. 모조품이 돌아다닌 건 ‘세투치오네 오리가미 클러치’. 포인트 아이템인 클러치에 실용성을 살려 수납을 넉넉하게 할 수 있도록 했고, 종이접기(오리가미)에서 차용한 디자인을 쓴 독특한 이 가죽 가방이 입소문이 나면서 짝퉁까지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는 “짝퉁에 좌절도 했지만 첫 쇼룸을 열던 날, 지나가던 자매가 매장에 들어와 ‘너무 예쁘다’며 웃는 낯으로 가방 세개를 한번에 사가던 날을 떠올리면서 버텼다”고 했다.



 그에게 가방 사업은 어떤 의미일까. 한 대표는 “인생”이라고 답했다. “코치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삶은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더 시간을 끌었다간 꿈이 멀어지겠다고 생각해 시작한게 샤나가방이었다.” 가방론(論)에 가까운 이야기도 이어졌다. “가죽가방은 들고다닐 수록 흠집이 난다. 헌데 시간이 지나면 그 흠집 조차도 아름답지 않나. 가방은 든 사람의 인생을 상징한다. 때와 장소에 따라, 혹은 사람에 따라 가방 안을 채우는 물건이 다 다르다. 고객이 가방을 들어서 기분이 좋아진다면, 디자이너로서 할 일은 다 한 셈이다.”



 사업가로서의 꿈도 이야기했다. 사업 시작 3년차, 아직까지의 성적은 좋다. 매년 매출이 2배씩 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중동의 한 백화점에 가방을 공급하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받았다. 꿈꾸던 수출길이 조금씩 트이자 요즘은 꿈의 사이즈를 키웠다. 그는 “샤넬, 프라다와 같은 명품가방의 최대 소비국 중 한 곳인 우리나라가 명품 생산국이 되지 말란 법은 없지 않냐”며 “10년 뒤, 20년 뒤, 가방하면 떠오르는 한국 브랜드 중 하나가 되면 좋겠다. 반짝했다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 기억되는 명품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글=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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